북한 동포들과의 위험한 교류(?)

중국에서 만남 북한 동포들과의 좌충우돌 유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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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재(just2348)등록 2007.12.11 17:45
임현재 기자는 안동대학교에 재학중입니다.

이곳은 중국 무한시에 위치한 화중과기대학교다. 교류학생으로 이곳에서 1년간의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유학생활이다 보니 같은 반 친구들 역시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끌게 하는 건 단연 북한 학생들이다.   

 

북한 유학생들과의 인사도 범법?

 

유학 전 북한은 내게 친근하고 우호적인 우리 동포들이 사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국에서의 예상치 못한 만남은 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국가보안법,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다. 다음으로 어릴 적 반공교육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해 그들에 대해 막역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갖게 했다. 그래서 일까? 일상생활 중 북한 동포들을 마주칠 때면 시선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인사말은 건네야하는 건지?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실제로 다른 외국 학생들과 달리 북한 동포들과 엘리베이터 같이 탈 때면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유학생 기숙사는 7층 건물로 남북한 학생들의 방배치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곳 관리인은 남북의 특수한 상황을 알고 있는지, 북한 동포들은 7층을 이용하고 우리나라 학생들은 7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을 사용한다. 그래서 인지 7층은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곳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곳을 지나가 봤다. 물론 여느 복도와 다를 것 없었지만 방문에 붙여진 인공기를 본 순간 왠지 모를 거부감과 두려움에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한편으론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유인 즉 “오늘을 사는 우리사회의 젊은이라면 적어도 지금의 남북관계나, 진부한 사상문제에 대해 발전적이고 유연해야 되는 것 아니던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북한 동포와 같은 반 친구가 되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동안 오고가며 마주쳤던 북한 동포들과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3명, 30대 후반이며 북한에서 각각 교수, 의사라고 한다. 나이가 많기에 우리나라 학생들 사이에서 그들을 ‘북한 아저씨’라 부른다. 북한 아저씨들은 중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국비장학생 제도를 통해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전해들은 얘기지만 매월 1천위엔이 조금 넘는 생활비가 지급되며 식사는 대부분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재밌는 건 북한 동포들 역시 이곳에서 손수 김치를 담가 먹는다고 해 그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말을 건네게 됐다. 과제나 시험, 수업과 관련된 여러 얘기들을 나누는 것은 이젠 일상적인 게 됐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북한 아저씨들의 수업태도다. 교수라는 직업과 가르치는 중국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예절을 잘 지킨다. 학기 초 선생님과의 사소한 대화에도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수업 전과 후 빠짐없이 인사말을 전한다.  

 

“북한 대학생들 취업 어렵지 않아”

 

대부분 회화 위주의 수업이다 보니 학생들은 자국의 문화․사회 등을 발표할 기회가 많다. 선생님들은 남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따금 남북한 양국의 상황을 비교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 이때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하고자 하는 얘기를 조금 더 덧붙일 것인가, 뺄 것인가? 전자의 경우 우리나라가 잘 살고 있음을 말하고 싶어서 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 북한 동포들과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하나의 배려 일 것이다. 반면 북한 동포들의 경우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의견 교환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정치적인 성격이 짙은 내용을 논하게 되면 교실 안의 분위기는 차갑고 무겁게 바뀐다. 한번은 각 나라에 취업문제에 대한 발표시간이었다. 한국, 일본, 독일 학생 순으로 자국의 취업사정을 얘기했다. 드디어 북한 아저씨들의 답변 시간이 됐다. 왠지 모르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나 역시 귀를 기울였다. 북한 아저씨는 “취업은 어렵지 않으며, 학생들의 전공에 맞춰 국가에서 알맞은 직업을 부여한다”는 취지로 북한 사회의 취업을 얘기했다. 내용은 일반적이었으나 금기시 할 것만 같은 북한사회의 상황을 직접 듣게 돼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북한 동포들의 취미, 배구

 

쉬는 시간, 비교적 한국 학생들이 많은 터라 이 시간이면 교실은 왈자지껄하다. 젊은 학생들의 수다, 장난 등이 그들에게도 신기하고 재밌는지 간간히 보며 미소 짓는다. 한편, 북한 아저씨들에게도 외국 학생들은 신기한 것 같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아직 서툰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비교적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발견한 북한 동포들의 취미는 바로 배구다. 수업이 끝난 오후 시간이면 기숙사 앞마당에서 4명씩 편을 이뤄 배구를 한다. 그 모습이 인상적 것이 북한 특유의 어투로 경기를 중 발생하는 시비를 가리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며 절로 웃음이 나온다. 북한 동포들과 3개월 가까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다보니 우리나라 학생들과 많이 친숙해 졌다. 교실 밖에서 마주칠 때도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인사말을 전한다. 하지만 남북한 사람들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때의 인사는 아직 무리가 있다. 이는 누가 시켜서 외면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서로를 모른 체하게 된다. 아마도 서로에게 불필요한 오해로 인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안타까운 우리 민족의 현실이다.

 

통일, 정신적․물리적 걸림돌 제거해야

 

이처럼 유학생활 중 만난 북한 아저씨를 통해 오늘날 남북한이 처해 있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비록 남북이 처해있는 사회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생김새와 언어 등에서 오는 정서적 친근감은 부인할 수 없었다. 많은 외국인 친구들은 남북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나눠져 있는지 조차 모른 채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북한의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혼동하여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다. 이럴 때면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기에 이따금 위 우리 현실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평소 통일에 대한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막연한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2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처음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북한 그리고 북한 사람들과의 위험한 교류를 통해 서로의 막고 있는 정신적, 물리적 걸림돌만 제거 된다면 우리 민족이 통일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2007.12.08 13:3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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