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60% vs 25%의 수수께끼

반노가 아니라 극노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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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dwdhkim)등록 2007.12.14 17:25

투표 당일 지지율 격차는 분명히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 1주일을 앞둔 시점까지 보수 후보들의 지지율 합계 60%, 민주개혁진보 후보들의 지지율 합계 20~25%는 여간 당혹스러운 사태가 아니다. 사실 당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현상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보수를 대표하는 두 후보의 도덕적, 명분적, 정책적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이 현상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라고 하는데, 보수 세력 못지않게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와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워온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저조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참여정부의 실정과 현실정치의 추태로부터 자유롭고, 나아가 참여정부를 실패 정부, 무능 정부라 몰아붙이는 문국현 후보의 지지율도 별무신통이라는 것이다.


셋째, 참여정부의 성과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가지수, 수출증가율, 외환보유고, 정경유착 발본색원, 검찰, 경찰, 국세청, 정보기관, 신문방송, 야당, 지방정부 등에 대한 정략적 통제(공작정치)의 폐절, 선거를 의식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시장왜곡) 거부, 정부(행정)의 투명화/정보화/시스템화, 지방에 대한 재정할당 증대와 균형발전 노력, 정권 말기의 측근과 친인척 비리 거의 전무 등등.

 

이전 정부와 비교할 때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성과가 정말 많다. 어쩌면 이승만, 박정희, 장면,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중에서 임기 말 성적(여론 지지율)이 가장 좋은 대통령이 노무현 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언론과 야당의 활동이 지금처럼 자유로웠다면 박정희조차 현재 노무현 지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넷째, 유력한 반대세력의 비판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이다. 반미친북좌파니 신자유주의를 과도하게 수용했니 하지만 실사구시 해보면 오히려 비판자들이 정치적 색맹이 아닌지 의심해야 할 것이다.

 

양극화? 수치를 시 계열로 보면 가장 결정적인 책임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세력이고, 최근 몇 년간 갑자기 많이 악화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느끼는 양극화는 심각하니 양극화는 심각한 것이다. 비교대상이 중국, 인도, 멕시코, 미국이 아니라 유럽, 일본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동안 반대세력이 이를 해결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무엇을 내놨는지 알 수 없다. 부동산 문제는 명명백백한 잘못이지만, 사전에 이를 경고하고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은 사람은 학자, 연구자 중에는 극소수 있지만 정당과 정치인 중에서는 전혀 없다.

 

물 엎지르고 나서 수습책 내놓는 것은 누가 못하겠는가? 무능하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눈으로 보면 정치권과 언론과 지식사회 전체가 도토리 키 재기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는 순서로 매를 많이 맞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섯째,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성과와 한계가 오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제 명백해진 몇몇 오류(실정)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 비난 세력들이 다 우물우물거린다는 것이다. 양극화, 비정규직, 일자리, 복지, 사교육비, 한미FTA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의 원인 진단과 솔루션(비정규직 법 철폐 등)이 과연 합리적이냐고 물었을 때 이들이 제대로 된 답을 내놓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현안에 대한 진단과 솔루션이 국민들의 분노, 감동, 기대를 갖게 했다면 지지율이 이렇게 저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언론 환경도 결코 보수 독점이 아닌 상황에서 이들의 저조한 지지율은 국민과 언론과 인지도의 문제가 아니라 진단과 솔루션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민생문제, 경제성장률, 사교육비, 국가부채, 지방분권, 공공부문의 규모와 권능(규제와 촉진권)에 대한 한나라당의 원인 진단과 솔루션 역시 많은 전문가들의 검증을 결코 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10년간 입법권과 지방자치단체의 상당 부분을 쥐고 있으면서 보여주었던 한나라당의 행태는 감히 민생, 경제, 국가부채, 지방분권, 공공부문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 vs 25 구도는 현실이고, 그나마 25에서도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지지 옹호하는 후보는 거의 없다. 오히려 반노를 통한 차별화를 못해서 안달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마법에 걸린 나라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여전히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것은 25에 속한 후보들과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을 압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돌리는 민주개혁진보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노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민주개혁진보를 고창해온 세력의 빛나는 성공신화의 이면에 길고 짙게 드리운 그늘을 직시하면 풀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무현과 참여정부와 관련된 수수께끼를 근 4년이 걸려 겨우 풀었다고 생각했다. 올 5월에 출간한 책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에서 그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의관과 역사적감각의 오류라고 정리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10%쯤 부족한 답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둘러싼 기묘한 현상과 다양한 비판들을 하나로 꿸 수 있는 간명한 모델을 만들지 못하여, 장님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서는 코끼리의 전체상을 그려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눈은 흐리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힘센 장사(壯士).


이 간명한 모델은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빈혈로 눈이 흐려 피아(불의와 정의)와 지형과 때를 잘 파악하지 못하지만, 착하고 부지런하고 힘도 세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자기 확신도 강한 장사(壯士)’이다. 이는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이 아니라 이 시대 민주개혁진보 세력과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진보좌파적 가치를 추구해 온 세력 전반에게도 해당된다. 이 반대 편을 이끌어 온 지도자들(특히 이승만과 박정희)은 착한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한때나마 국제정치적, 사회역적 지형과 흐름 정확히 읽어 건국과 산업화를 이루었다. 물론 말기에는 제대로 읽지 못해서 비명에 갔다. 

 

본래 눈이 흐린 장사(壯士)가 力拔山氣蓋世의 힘으로 不義를 응징하다 보면 주먹이 빗나가 엉뚱한 놈(正義)이 얻어맞기도 하고, 엉뚱한 각도에서 가격하는 경우가 많다. 두더지 잡기나 풍선효과를 연출할 가능성도 많다. 힘이 세고 부지런한 만큼 폐악도 크다. 더욱이 장사가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을 훨씬 많이 행하였다 하더라도, 자기 정당성을 강변하면 할수록 그늘에서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람들은 미운 감정이 점증할 수 밖에 없다.

 

흰옷에 묻은 얼룩


본래 흰 옷에 묻은 작은 얼룩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도덕성을 자기 정당성의 주요한 배경으로 삼는 사람이 작은 도덕적 결함이 발각된다면 그 결함이 훨씬 두드러져 보인다. 인간적 매력은 급감하고, 표리부동에 따른 혐오감이 급증한다. 이처럼 수출, 주가, 거시경제 좋다고 자랑하면 내수, 서민, 지방경제의 어려움을 피부로 절감하는 사람이 더욱 분통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비록 소비심리를 살아나게 하여 내수, 서민, 지방 경제를 조금이라도 살리려는 의도라 할 지라도…… 또한 과정.절차의 합리성과 원칙.상식.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이 몰상식이 판치는 현실을 방치하고, 분권, 자율, 시장존중의 이름아래 합법적 약탈판을 미필적 고의로 연출한다면 고귀한 가치를 부르짖는 행태가 더욱 한심하고, 무능하고, 밉게 보인다. 나아가 오만과 독선에 사로 잡힌 듯이 보이고(과정.절차, 원칙.상식의 중요성을 설파할 테니…), 추진력도 방향감각도 없어 보이고 민생에 둔감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민생(사회경제적) 문제에서는 둔감.온건해 보이면서, 정치적 문화적으로는 급진적이고 요란스러워 보인 것이 결정적이다.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 분양가 원가 공개 반대, 양극화 책임론, 주류 언론과의 전쟁, 정부 부처의 기자실 통폐합 시도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민들이 미치도록 가려운 데를 정책으로도 말로도 긁어주지 못하면서,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와 정신이 시급하고 정당하다고 강변한 것은 오로지 노대통령 혼자서 책임져야 할 오류이다.

 

불의한 법.제도의 준수의 고통
본래 법 자체가 불의한 상황에서 준법(단속)의 기치를 높이 들면 민초들은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이는 네티즌 1300여명을 입건하고 6만5천 건의 인터넷 게시물을 삭제한 공직선거법 93조1항이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을 정치적 미숙아로 규정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강제하여 대통령의 입을 막아 버린 공직선거법 9조1항도 마찬가지다. ‘성 매매방지법’에 입각한 철저한 단속과 과태료 안낸 차 끌어가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노블레스와 사회적 강자들이 원칙과 상식을 짓밟는 도적떼라면 과감한 분권과 자율은 대체로 도적떼의 과감한 약탈의 자유를 확대할 뿐이다. 종금사, 은행, 토건족, 지방자치단체에게 준 자율은 외환위기, 카드대란, 부동산 대란, 공무원 증원과 매관매직 사태를 가져왔다. 국가 시스템 자체가 불합리하게 설계되어(예컨대 검찰, 법원, 헌재, 국회, 지방정부 등에 대한 민주적 통제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통령의 탈법적, 변칙적 권능에 의해 겨우 굴러가는 상황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파해버리면 주(周)왕실 쇠퇴 이후 나타난 춘추전국시대 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탈세, 소득 축소 신고를 전제로 책정한 높은 세율과 연금보험료를 그대로 두고서, 탈세와 소득 축소 신고를 원천 봉쇄하면 높은 세율의 고통이 매우 커지게 되어있다. 카드 사용 확산 등으로 소득이 대거 드러난 전문직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치고, 부동산 관련 세금의 고통이 만만치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노무현의 개혁에는 이런 류의 개혁이 많다.

 

흐린 눈으로 70%, 입으로 30%
요컨대 노대통령, 참여정부, 민주개혁진보세력은 흐린 눈으로 인해 국민의 매를 70%쯤 벌었고, 따뜻한 위로의 말에 인색하고, 형편없는 언론의 왜곡에 맞서느라 자기 정당성을 강변하는 입으로 30%쯤 벌었다고 할 수 있다. 이 30%와 관련해서는 노대통령의 책임이 결정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70%다. 이는 노대통령 못지 않게 통합신당의 중진들과 민주노동당, 자칭 진보지식인과 진보언론, 시민사회지도자 등 민주개혁진보세력 전반이 상당한 책임이 있다. 반노를 해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1987년의 가치와 정신의 구현자
사실 노대통령은 말은 좀 거칠게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1987년(참여, 민주, 탈권위, 민중, 민족, 상식, 도덕성 중시)과 1997년(시장존중, 능동적 세계화, 사회안전망 강화)의 가치와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고 실천하였다. 이 가치에는 자유주의적 가치도 있고(이는 신자유주의 시비의 원천이다), 사민주의적 가치도 있고(이는 좌파시비의 원천이다), '제3의 길'적(사회투자국가론적) 가치도 있다. 하지만 주된 것은 사실 상식적, 민주주의적 기본 가치이다. 반칙과 특권 철폐, 탈권위주의, 탈지역주의, 대통령과 권력기관에 대한 도덕적 신뢰(최도술 사건에서 재신임을 공언하고, 과거사 청산 작업을 추진하였다), 의회존중과 민주적 절차.과정의 존중, 시장존중(분양원가 공개 거부, 대형유통체인의 지방확산 및 24시간 영업 규제 거부), 대북포용, 협력적 자주국방, 공정과 투명, 원칙과 신뢰,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쇼맨쉽과 마키아벨리즘(표리부동,이율배반)거부 등은 대체로 386과 민주개혁진보 세력은 물론 보수언론과 보수 정당도 이구동성으로 부르짖는 가치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말로만 이런 가치를 부르짖을 뿐이었다. 노대통령이라고 정략적 의도가 없었을 리 만무하지만(대연정 제안 등) 다른 정치인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촌놈’ 특유의 우직함(진정성)을 확실히 보여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부르짖는 멋들어진 가치 -하지만 좋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과 편안함이야말로 국민들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지만 소리 높여 떠들지는 않았다-를 진정성을 가지고 때론 대통령직을 걸고 구현하려고 한 것, 바로 이것이 노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이자 자부심과 오만/독선 시비의 원천이다. 동시에 오류의 원천이기도 하다.

 

역사적 감각의 문제
노대통령과 386과 민주개혁진보 세력이 추구한 가치들은 불의한 현실을 획기적으로 개혁하기도 했다. 동시에 한국 현실과 충돌하여 의도와 다르게 숱한 폐악을 양산하기도 하였다. 특히 자유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현실과 심하게 충돌하였다. 삼성, 검찰, 유력 정당의 행태에서 잘 드러나듯이 자유주의적, 상식적 가치가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너무나 몰상식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가장 결정적인 전략적 오류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종합적 통찰력(역사적 감각)이 흐릿하여 고귀한 가치의 우선순위와 강약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것이다. 좋은 의도(가치)를 나쁜 결과로 되갚는, 정치인과 학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몰상식한 한국사회의 깊은 속살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와 보수 기득권 집단과 공공부문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합법화, 제도화된 불의를 먼저 바로 잡지 않고, 다시 말해 하드웨어 개혁을 먼저 하지 않고-이는 탄핵 총선 이후에 해당된다. 그 전에는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총체로서의 문화(소프트웨어)와 이를 주도하는 언론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전략적 오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칼로 일어난 자는 (환경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여 계속 칼을 휘두르다가) 칼로 망한다’는 교훈처럼, 1987년과 2002년이 상징하는 가치로 일어난 자가 그 작동조건과 우선순위의 변화를 초래하는 거대한 역사적 상황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선이 유력시되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이 역사적 전환기(1987년, 1997년 뿐만 아니라 1948년/53년과 1961년을 넘어서야 하는 대전환기)를 주도할 능력이 없다는데 한국민의 불행이 있다.

 

얄팍한 반대.비판자들
노대통령은 때론 품격 없는 말이나 염장을 지르는 말을 좀 하긴 했지만 적어도 상식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오만하고 독선적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은 노대통령의 신념, 판단, 고집이 현실이나 때와 불화했기 때문이지, 그것이 완전히 시대착오적이지도 않았고,  이율배반적이지도 표리부동하지도 않았다. 물론 협소한 정략적 술수는 아니었다. 예컨대 (서민경제는 어려워도) 거시경제가 조중동의 저주와 달리 괜찮다 말, 양극화를 만든 책임이 없다는 말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을 때려서 차별화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가치,정책의 우선순위및 강약에서는 노무현과 큰 차이가 없었고, 대안 솔루션은 시원치 않았다. 반면에 문제제기 하는 방식은 노무현과 달리 매우 얄팍하고 앞뒤가 맞지 않고 주로 뒷북이었다. 서민 생활과 별 상관 없고, 시급히 요구되는 구조개혁과도 별 상관없는 거의 사문화된 국가보안법 문제를 최상위 과제(Agenda)로 끌어 올린 자들이 누구인가? 별 것도 아닌 NEIS(교육정보시스템) 문제, 천성산 도룡뇽 문제, 부안방폐장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거나 악화시킨자들이 누구인가? 미군기지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비정규직법을 철폐하는 것이 과연 비정규직을 위하는 솔루션인가? 오류가 명명백백한 부동산 문제 관련 대안을 제외하면 참여정부 보다 확실히 나은 대안을 제출 한 것이 있는가?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헌법, 선거법, 공무원연금법, 국민연금법, 공공부문의 특권(철밥통)과 방만함, 자격증 소지자의 과도한 처우(금밥통), 전임교수와 대학의 노비들인 시간강사 문제, 사교육 광풍, 청년실업 등을 개혁할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출한 적이 있는가? 열린우리당 탈당과 해체 명분과 실제는 어떤가? 대통합신당 창당 명분은 과연 충족되었는가? 몇몇 유력 주자의 한미FTA에 대한 처신은 어떤가? 한마디로 민주개혁진보를 대표한다는 정치인들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성과를 딛고, 매력은 계승.발전시키고, 오류는 넘어서야 하는데 오히려 성과는 부정하고, 노무현의 매력(자기희생, 진정성, 학습능력)도 계승.발전시키지 못하고, 오류는 제대로 시정하지 않았으니 아무리 노대통령을 때려도 저조한 노대통령 지지율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개혁진보의 모두의 책임
본래 개혁의 성과는 당연시 되고 폐악은 뭇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정상적인 대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노대통령이 많은 희생을 이루면서 이룬 빛나는 성과는 태곳적부터 존재하는 공기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한편 자율화된 언론과 발달된 정보화 환경은 제왕적 대통령의 통치로부터 벗어난 소영주(권력기관)들의 권력 다툼과 검찰/언론의 대통령 때리기와 치부 드러내기 등을 초래하여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무능을 실제 이상으로 부각시키기 십상이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대통합신당은 어렵게 이룬 성과는 제대로 광고.마케팅하지 못하였다. 진보언론은 개혁의 폐악을 과도하게 대안 없이 부각시켰다. 이는 노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 주로 자유주의적 가치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가치의 파괴 성만 예의 주시하는 왼쪽 눈만 가지고 있다 보니 자유주의, 사민주의 이전에 존재하는 주권재민의 원칙이나 상식이 뒷골목에서 강간당하는 것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였다. 민주주의를 다수결과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로 협소하게 해석하여 사법고시를 합격한 전문가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법원, 검찰, 헌법재판소 등)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를 생각도 못한 것, 공공부문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제대로 만들지 않은 것 등이 그 일례다. 이는 개혁중의 개혁인 헌법과 선거법 개혁에 대한 무관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정과제의 잘못된 우선순위’ 혹은 ‘하드웨어 개혁의 방기’는 노대통령 못지 않게 통합신당의 중진들, 민주노동당,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들에게도 책임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노무현과 60 vs 25의 수수께끼를 푼 결과 도출되는 몇 가지 교훈을 얘기하려 한다.
1. 60 vs 25 상황을 연출한 가장 큰 요인은 노대통령의 말과 통치행태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민주개혁진보가 1987년과 1997년과 2002년에 창조한 빛나는 성공 신화의 그늘에 대한 반감이다. (이 그늘에 대한 상술은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본래 깨끗한 손으로 가려운 데를 긁기를 원한다. 하지만 미치도록 가려움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손이 그 곳을 긁어줄 것 같지가 않으면 지저분한 손이라도 긁어주는 손을 원한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아무리 후져 보여도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 있는 손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적으로 그들의 대표상품인 ‘줄푸세’와 ‘선택.집중 전략과 추진력’은 분명히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민주개혁진보가 해결하지 못하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 할 것 같은 이미지를 주고 있다. 따라서 민주개혁진보가 정권을 넘보려면 보수의 합리적 핵심을 흡수하면서 약점을 보완하고, 전통적 강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참여정부의 성과는 높이사고, 한계는 두둔하고, 오류는 가열차게 비판하되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1987년과 1997년과 2002년을 넘어 설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 반노가 아니라 극노를 해야 한다. 정당한 비판과 부당한 비판으로 피투성이가 된 참여정부를 껴안아야 한다. 참여정부는 실패정부도 무능정도도 아니라고! 그래야 찍을 후보가 없어서 헤메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  

 

2. 한국 사회는 만성적 빈혈 사회다. 연탄가스 중독사회다. 한국 사회의 벌거벗은 속살을 만지는 민초들의 감각과 지혜라는 산소와 영양이 국가경영을 주도하는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실물과 이론이 따로 놀고, 전문 분야간 장벽이 너무 높다. 실물은 정치인,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몰상식하고, 불합리하며, 지식사회는 구조적으로 게으르다. 또한 종합적 통찰력을 가져야 할 정치(정당), 언론, 지식사회가 너무나 후진적이어서 가치, 정책의 우선순위와 강약을 정확하게 설정하기가 구조적으로 너무나 어렵다.

 

3. 한국 사회는 대통령의 정치적 도살장이다. 한국사회는 획기적인 개혁 솔루션을 내기에 너무나 복잡하고, 이해관계자의 전투성은 높고, 비판의 칼은 날카롭고,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높고, 솔루션을 만들  주체(정당, 언론, 인문사회학을 다루는 지식사회)는 너무나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신감과 실망감에 이를 바득바득 갈지만, 그래도 노무현은 이승만 이후 총 9명의 최고 통치자 중에서 임기 말 최고 지지율(30% 내외)을 기록하고 있다. 게 중 나으니 봐주자는 얘기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가경영이 구조적으로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4. 한국 사회의 성장과 통합의 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솔루션은 없다. ‘무적의 강철 검’은 없다. (이는 주요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고 하는 소리다) 그런 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현실에 너무 무지한 것이다. 과거에는 조선노동당과 주체사상이 무적의 강철 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최근 다단계가 그런 이미지를 주어 일확천금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을 부나방처럼 빨아들였다. 사실 노대통령도 지도자의 높은 도덕성을 무적의 강철 검으로 여긴 흔적이 역력하다. 국가경영을 마키아벨리즘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할 일종의 ‘엔지니어링’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대통령, 국회, 정당, 정부기관 등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확립되고 집권세력의 철학, 원칙이 분명하면 상당부분 해결 될 수 있다고 본 듯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참여정부의 비서실과 내각에 지식사회가 인정하는 ‘선수’들보다 대통령의 가정교사 출신들,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 한 측근들, 능력은 미심쩍지만 깨끗한 것이 분명한 사람들로 주로 채웠을 것이다.

 

5. 한국 현존 정치집단 중에서 1948체제부터 1997체제까지를 총체적으로 개편할 수 있는 우선순위와 강약이 정확한 가치,비전,전략,정책 패키지를 가진 미래세력은 없다. 화강함 투성이 북한산 생태계에서 궁궐을 지을 거목이 자라지 못하듯이, 구조적 빈혈에 걸린 한국 정치생태계에서는 그런 미래세력이 금방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칭 메시아 내지 미래 세력이 있다면 아직 현실도 자기 주제도 모르는 미숙아들이라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무시=오만으로부터 허황된 기대와 전망이 나온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날로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겸손해야 한다. 미래세력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숱한 좌절로부터 쌓인 경험과 지혜로서 만들어나가야 한다. –끝-

덧붙이는 글 | 김대호는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희망한국프로젝트'(백산서당, 공저) 저자이자 한국공평연구소장이다.

2007.12.14 17:2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김대호는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희망한국프로젝트'(백산서당, 공저) 저자이자 한국공평연구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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