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라노이드 파크'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신생아는 하루 24시간 중 3/2를 잔다고 한다. 그야말로 그 작은 몸 던져 잠에 몰입해 주며 본능에 충실한 시기를 보낸다. 그리고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면시간도 줄어든다. 그만큼 활동이 많아지니 수면시간이 따라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밤에는 숙면 취해주며 내일을 위한 재생, 회복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양 어깨에 들러붙어 있는 불곰이 목까지 압박의 수위를 올릴 지 시간문제이다. 또 자는 동안에 낮에 피 터지게 공부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저장된다. 나날이 변형되어가는 트랜스포머적 입시제도를 제대로 기억해 두려면 하루에도 몇 번이라도 잠을 청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잠이란 곧 죽음의 시간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 에서 이 치명적인 잠에 빠진 알렉스를 만나게 되었다.
알렉스는 소위 말하는 좀 불량한 아이들이 모여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곳을 드나들게 된다. 그러나 타보기는커녕 스케이트 보더들의 화려한 실력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할 뿐 어린 그에게는 그곳을 찾는 용기만으로도 대단해 보인다. 그저 조금만이라도 스케이트보드를 능숙하게 타는 것만이 나름의 목표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치 않게 경비원을 죽이고 만다. 머릿속으로는 경찰서로 향했어야 하지만 손은 이미 흉기가 되어버린 스케이트보드를 강물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날의 일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경찰이 내민 사건 당시의 사진이 쓸려 나간 것 같은 기억을 송두리째 끌어 올려 버리듯이 침묵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침묵은 무거운 압박이 되어 알렉스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털어 놓고 싶어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금기가 몸에 싹을 내린 것이다. 밝은 태양 아래 멀쩡히 걸어 다녀도 이는 몸이 살아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 이후로 삶의 감각 또한 정지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는 헤어나지 못하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된 것이다. 어제의 따사로운 태양이 오늘은 몸을 삽시간에 불태워 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은 꿈속을 헤매듯이 부옇게 흩어지며 멀어져만 간다. 알렉스는 말하는 대신 종이에 한 자씩 적어 내려가며 자신을 털어내고자 한다. 빽빽이 적어 내려가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 쏟아낸 글자들이 불타 사라지더라도 깊게 새겨진 기억마저 도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파라노이드 파크’ 는 알렉스의 내면을 그대로 따라가며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 펼쳐놓는다. 특히 몇 마디의 대사보다 알렉스의 무표정은 관객들의 가슴에 묵직한 파문을 일으킨다. 어린 알렉스에게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위해 많은 용기가 필요하듯이 악몽에서 깨어나 멋지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자신의 모습이 현실이 되느냐는 마느냐는 그의 몫으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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