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이 이천 사고의 원인인가

후진국형 '안전불감 시스템'을 고쳐야

검토 완료

임춘택(tigerim)등록 2008.01.09 08:26
1. '안전 불감증'으로만 치부하면 대형 사고는 반복돼

새해 벽두에 발생한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사건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참사다.
"만약 내가 그 사고현장에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해보면 숨이 막혀온다.
우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

이번 사고가 인재(人災)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사고 원인을 '안전 불감증'으로 치부하는 것은 재고해봐야 한다. 비단 이번 사례뿐이 아니다. 그 동안 발생했던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의 원인을 안전의식 문제로 보고 사고책임자 색출과 처벌, 피해자 보상, 안전교육 등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온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 

왜 동일한 유형의 화재사고가 10년 전 부산에서도 발생했고 14년 전 나주에서 발생했는가를 근본적으로 밝히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 다른 나라 사례에서 교훈을 찾으면

물론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에서도 대형 참사는 발생한다. 하지만, 사고예방과 사고대응 시스템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안전한 작업 절차에 능숙한 현장감독의 지시가 절대적이고, 이를 어긴 개인이나 회사가 치러야할 대가가 가혹하다. 또한 사람이 모이는 학교나 병원, 관공서, 회사에서는 매년 몇 차례씩 화재대피훈련을 하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전이 효율이나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유치원에서부터 가르치고 있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 풍토가 정착해 있다.

이번에 이천시가 현장에도 안 가보고 형식적인 준공검사를 내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필요시 안전담당 공무원을 현장에 파견까지 하고 있다. 기업 활동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노동자와 일반 국민의 안전까지 일방적으로 위임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고발생시 대응시스템인데,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대통령이나 의회 소속, 또는 왕립으로 사고조사위원회가 구성이 되어 활동한다.

이러한 조사위원회의 활동범위는 우리 경찰이 하는 단순한 발화원인 조사나 안전수칙과 법규 위반여부 조사, 사고책임자 색출 등을 훨씬 초월한다.
관련 법규와 안전수칙이 비현실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는지 검토하고, 사고의 근본원인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한다. 또한 사건 배후의 부정부패 문제를 심층 조사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제시한다.

예컨대 오늘날의 영국 경찰이 있기까지, 1970~1980년대에 발생한 대대적인 경찰부패 스캔들과 고문에 의한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왕립조사위원회(Royal Commission)의 활동이 결정적이었다. 이 위원회는 2년여에 걸친 철저한 조사 끝에 경찰 부정부패의 원인이 경찰관 개인보다는 경찰조직 자체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경찰관의 광범위한 재량을 제한하는 법(Police and Criminal Evidence Act)이 제정되고 기소를 전담하는 기관(Crown Prosecution Service)이 새로 설립되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지 이틀 만에 사고지역을 모두 청소해 근본원인을 조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원인 분석이 끝날 때까지 몇 달이라도 이 지역을 폐쇄하고 조사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3. 우리나라는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피해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노출돼있어

잠시 숨을 돌려, 우리 나라가 얼마나 극심한 ‘사고 왕국’인지 살펴보자.
2006년기준 산업재해자는 89,911명, 사망자는 2,454명이다. 교통사고로는 부상자가  340,578명, 사망자가 6,651명 발생했다. 즉 산업재해와 교통사고로만 매년 약 43만 명이 부상당하고 9천 명 정도가 사망한다.

이 수준이라면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 80년간 3,440만 명이 부상하고 72만 명이 사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 말해, 우리 국민은 평생을 살면서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3명중 2명꼴로 다치고 1가구당 3인 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20가구 중 1가구 꼴로 가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만연된 위험이 이렇게 심각한 상태에서, 이번 화재사고가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사고소식이 외신뉴스를 장식하는 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 된다고해도 선진국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전이 중요한 항공우주분야에서는 만일에 있을지 모를 고장에 대비하여 이중안전(dual safety) 장치를 하고, 인명이 관련된 경우에는 필요시 삼중안전(triple safety)을 고려해 설계한다.

이번 사고의 경우에 1차적인 안전장치인 현장 감독 지정이나 스프링클러 작동도 되지 않았다. 이제 귀중한 생명에 관한 우리사회의 안전장치를 2중, 3중으로 만드는 현실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4. 우리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각종 행정규제와 법․제도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면 좋지만, 이번 사고에서도 거듭 확인되었듯이 현장에서 이런 장치는 종종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국가적으로 권위있는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활약한다면,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바꾸는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조사위원회는 명망있는 과학기술인, 법조인, 의료인, 회계사 등 각 분야의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하고 필요한 예산과 조직을 지원해주되, 조사 결과를 대통령 또는 국회에 직접 보고하는 형태로 운영하면 된다.  

이러한 제도 도입과 더불어, 국민생활과 산업분야의 안전에 대한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후진국 수준의 '안전불감 시스템'을 청산해야 한다.

KAIST 항공우주 전문교수 임춘택 (전자공학박사, 전 청와대 안보정책실 행정관)

덧붙이는 글 전자신문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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