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올림픽과 베이징

현대도시로 비상하는 올림픽 도시 베이징

검토 완료

정무형(drmhchung)등록 2008.01.12 19:17

1.현대도시 베이징

2001년 7월 13일 모스크바의 계무역센터에서 열린 제112차 IOC 총회에서 중국의 베이징시는 2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여 2008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된다. 연이어 2002년 8월에는 WTO 에 극적으로 가입함으로써 아시아의 거대 잠용 중국이 급부상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올림픽을 반년 앞둔 베이징시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각종 체육시설뿐 아니라 공항, 지하철, 로텔, 컨벤션 등 관광교통 통신시설, 각종 문화시설까지 확장하면서 급격히 현대도시로의 부활을 거듭하고 있다. 

 

2. 베이징 올림픽 유치의 의미

여기에서 2001년 7월 13일 자정을 넘어서까지 중국전역을 흥분시킨 뉴스를 소개해보자.

"중국의 베이징(北京)이 2008년 제29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13일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린 제112차 IOC 총회의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2차투표에서 105명의 참석 위원 중 과반수인 56표를 얻은 베이징이 개최지로 선정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 투표는 베이징과 토론토(캐나다) 파리(프랑스) 오사카(일본) 이스탄불(터키) 등 5개 후보도시를 놓고  총회 참석 위원 119명 중 유치 신청국 소속 IOC위원 13명과 투표권이 없는 사마란치 위원장을 제외한 105명의 IOC위원이 참가한 가운데 전자식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됐다.

 

1차 투표에서 베이징이 44표, 토론토가 20표, 이스탄불이 17표, 파리가 15표, 오사카가 6표를 얻어 과반수를 얻은 도시가 나오지 않았다. 이어 최하위인 오사카가 제외된 가운데 치른 2차투표에서 베이징이 56표, 토론토가 22표, 파리가 18표, 이스탄불이 9표를 기록함으로써 과반수를 넘어선 베이징이 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결정됐다.


이로써 중국은 일본(1964년 도쿄), 한국(1988년 서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베이징은 2000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호주 시드니에 2표차로 아깝게 패한 바 있다. 그 뒤 99년부터 베이징올림픽유치위원회가 ‘새로운 베이징, 위대한 올림픽’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녹색 테이블의 마녀"라고 불리는 세계 탁구여왕 덩야핑과 올림픽 체조 2관왕인 양링을 내세워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벌인 결과 끝내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하는 감격을 누리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 유치는 여러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외교및 정치ㆍ군사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국제 사회가 공인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1987년 천안문(天安門) 사태의 초강경 진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인권탄압국가로 지탄을 받아왔었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1993년 두 표 차로 호주에 올림픽 개최지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 바 있다. 이외에도 티베트 자치독립 문제,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탄압, 반체제 인사와 해외언론 탄압 등 인권 및 민주주의와 관련한 각종 우려가 끊이지 않았고 중국의 올림픽 유치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의 이미지는 향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야심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지난해부터는 베이징의 대기 오염이 극심하여 각종 올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의 기록경신에 큰 장애가 될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올림픽 준비당국은 선수촌을 한국에 설치할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베이징은 가정용 연료를 석탄에서 가스로 대체하고 오염과 관련된 공장을 폐쇄하거나 이전하는등 많은 노력을 기울려 오고 있다고 한다.

2008.01.11 10:32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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