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특전사에 지원했는가 (2)

검토 완료

최경호(ggoma7)등록 2008.01.21 09:14

저녁 7시 30분, 가장 싼 3등실에 실려 제주도로 향했다. 배가 부산항을 떠나 얼마나 갔을까, 검은 물감을 온 세상에 뿌려 놓은 듯이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었다. 출렁이는 파도 소리에 몸을 싣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나의 삶을 가만히 되새겨 보았다.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는 사이에 배는 어느덧 제주항에 도착했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태양은 잔잔한 파도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아침햇살로 내 눈을 자극했다. 힘든 리포트를 끝내고 겉표지를 만드는 기분으로 지도를 폈다. 타원형의 섬 제주도가 마치 전투훈련장처럼 느껴졌다.

 

컵라면을 먹고 나서 제주항 근처에서 자전거를, 깎고 깎아서 만천 원에 3일 빌렸다. 12번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제주를 돌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밤새 달려서라도 내일 아침 성산 일출봉에서 일출을 보리라는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제주도 외곽의 4분의 3을 달려야 하는 엄청난 거리이지만 자신이 있었다. 잘 이어진 자전거 전용도로가 세계적인 관광도시임을 실감케 했다. 여름을 갓 넘긴 햇살은 부드러웠고, 바람은 상쾌하게 내 코를 간지럽혔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한 대장정은 밤 11시가 넘어서도 끝을 내지 못했다. 하루 종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2백 킬로미터를 넘게 달려왔지만, 성산은커녕 서귀포시에 겨우 도착했다. 온 근육이 갈라질 듯 쑤시고 배가 등에 붙은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래도 내일 아침까지는 어떻게든 성산에 도착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자전거 기어마저 풀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은 참 아름답고 깨끗했다.

 

그때였다.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다가와 제주도 사투리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조심스럽게 도움을 청했다. 그 아저씨가 자전거를 살펴보더니 자기 집에 가서 고쳐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집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아저씨도 젊었을 때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해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집에 도착하여 아저씨가 능숙한 솜씨로 자전거를 고쳐 주셨다. 서귀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저씨가 잠시 나가더니 시원한 맥주와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오셨다. 아저씨는 제주도 토박이로 해군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서귀포에서 작은 여관을 운영하고 계셨다.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밤 깊은 줄 모르게 긴 대화가 이어졌다. 어쩌면 이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현실을 피하려 하지 말고, 꿋꿋이 맞서는 사람이 되어라. 고민이 있으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주변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당당히 도움을 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아직 젊으니까 인간의 손에서 길러진 인삼보다 자연의 품에서 자란 산삼이 되도록 노력하여라. 군대 가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선배나 후배들에게 잘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

 

아저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타자기로 종이를 찍어내듯 머릿속에 콕콕 박혀 들었다. 아저씨는 오늘따라 손님이 없다며 빈 방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셨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지금껏 개미처럼 식량을 모으는 데 급급했을 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일도 한 게 없었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주위사람들이 형성해 놓은 내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아온 것 같다. 과연 나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내 모습이 있기나 한 걸까. 입대해서 4년 3개월 동안 감춰진 나의 진짜 모습을 찾아내고 나를 한 단계 격상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쉽게도 성산에서 일출을 보지 못했고, 12번 국도를 완주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인삼보다는 산삼이 되어라!

 

아무 말도 없이 제주도로 떠났다 돌아오는 아들을 어머니는 말없이 받아 주셨다. 왜 그랬냐고 혼이라고 내면 마음이 편할 텐데……, 죄송할 따름이다. 입대를 하루 남겨두고, 자시고 싶다던 제주 감귤을 손에 들고 아버지 병실을 찾았다. 5년 가까이 투병하시는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다 나은 것 같다가도 그 지독한 세균은 또다시 번식하곤 했다. 영원히 나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줄 것으로 믿고 있는 아버지의 태산 같은 모습이 날이 갈수록 야위어만 갔다. 내가 어른이 되면 소주 한 잔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늘 하셨는데, 그 소원은 언제 이루려고 저렇게 아프신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버지와 말없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와 동생은 슬그머니 자리를 비워 줬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애써 웃음 지으며 버스 타는 곳까지 마중해 주시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버스가 떠난 뒤에도 내가 떠나간 쪽을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을 아버지의 모습은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건강히 잘 다녀와서 늠름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가슴속에 담고 특전사교육단으로 향했다.

2008.01.21 09:16 ⓒ 2008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