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외치는 “과테말라 여성들의 권리회복” ? 현대화, 서양화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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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복(songyb)등록 2008.02.10 13:25
미국에서 외치는 “과테말라 여성들의 권리회복” — 현대화, 서양화 지향?

어제는 “마야여성들의 성의 식민지화 탈피”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었다. 과테말라깍치껠 출신의 여류학자가 발표를 하였다.

돈의 힘으로 중남미 고대유적지의 발굴작업을 거의 도맡아서 해왔고, 수많은 인류학자를 남미 원주민마을 곳곳에 배치하여 그들의 일 거수 일 투족을 관찰하였으며,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같은 회사들은 그것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일반에 알리는 등, 돈의 힘을 바탕으로 이끌어가는 미국의 중남미연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사실 중남미 연구만 그렇겠는가 만 그래도 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마치 미국땅인양 생각하는 만큼 그들의 중남미 연구는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하여 투자가 두드러진다. 수많은 연구진, 저술발간, 학술토론, 후진양성 등의 면에서, 즉 물량적인 면에서 미국의 중남미 연구는 가히 세계제일이라고 하는 데에 의심을 하기 힘들다.

내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중남미 연구를 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모두 많았지만 그 중에서 기대의 부분이 이런 학문적인 풍부함에 있다. 역시나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중남미 관련 강연이나 발표 등이 일주일에 족히 두세번은 열린다. 그것만 쫓아다니면서 들어도 최신 학문적인 정보에 대하여 일가견을 가지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번 강연도 그러한 면을 잘 보여준다. 중남미의 고만고만한 나라중의 한 나라로 평가받는 과테말라, 거기에서도 시골 깡촌이라고 할 수 있는 깍치껠 출신의 원주민,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남자도 아닌 여자가 이곳에 와서 강연을 한다. (특정국가나 지역 혹은 여성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편안한 말투로 쓰고자 하는 필자의 의도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마치 1960년대에 강원도 깡촌 출신의 여자가 이 지방의 전통 중의 하나인 “남근석”에 관한 연구를 하고, 그에 대한강연을 미국의 대학교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미국이 쥐고 있는 학문연구와 교육 분야에서의 힘이다. 감히 어찌 해 볼 만한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그 규모 면에서 그 어떤 곳과 상대가 되질 않는다. 그러니 중남미에서 중남미 학을 하는 자국인들 조차 미국의 학문적인 시각 등에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그 질적인 면에 대하여 수없이 의문을 던지기는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정보와 결과물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중심이 되기까지 한다.

연사는 과테말라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억압이 많다, 그래서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장을 하였다. 사회적인 약자로서의 그리고 저개발국가의 현실을 가진 여성으로서 깍치껠 원주민 여성들을 사회적인 무지와 편견 속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변에 깔려있는 분위기였다. 여성들은 정부, 교회, 남자로부터 성적인 면에서, 물리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면에서 탄압을 받고 있으며 이는 당연히 타파되어야 할 중요한 당면과제라는 공감대가 퍼지기에 충분했다. 교육의 기회에서 차별 받고, 알코올 중독의 남편과 살면서 이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인 냉대가 강하며, 교회는 성을 죄악시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소개하였고 이에 특별히 이견을 제시할 만한 것이있기 힘들었다.

연사가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하고 다음으로 열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나도 질문을 했다. 그러한 극복의 방향성이 너무나 서양적인, 현대적인 지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보았느냐? 서양적인 모델로 무조건 바꾸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의 가치와 의미도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내가 한 질문이 연사의 주장을 반박하며 과테말라의 현대화와 서양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여성인권회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비추어진 모양이다. 연사가 아닌 강연에 참석한 사람이 나서서 내 질문에 반박을 한다. 물론 연사도 나의 질문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였는지 대답이 시큰둥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많은 질문 중에 특히나의 질문이 너무나도 생뚱맞고 기괴하기까지 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갑갑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내가 의사전달을 잘 못한 부분이 있어, 너무 공격적으로 말을 해서 그런걸 꺼야, 지금으로서는 내가 말한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지 등의 다양한 말로 나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한국의 구정명절 벽두부터, 제사도 온전히 못 지내서 그렇지 않아도 싱숭생숭 하던 판에 공연히 서글픈 느낌까지 들면서 꿀꿀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한국의 현대화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많은 가치들을 생각해 보았다. 한국의 서양화 과정에서 무시되었던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과연 모든것이 서양에서 생각하는 그런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향으로 가야만 한단 말인가?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모든 서양적인 것 이외의 가치는 서양적인 것으로 가야하는 과정에서의 폭력이요 억압이다. 남편 될 사람 얼굴 한번 못보고 시집온 나의어머니는 사회적인, 성적인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자식에게따뜻한 밥을 해 주는 것이당신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평생하며 사시는 나의 어머니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이 만든왜곡된 자아를 가진 불쌍한 사람이 된다. 역시 다시 강조하지만 그러한 현상들이 옭은 것이니 지켜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방적인 가치를 정해놓고 그것을 기준으로 발전 단계를 가늠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소위 묻지마 식의 변화 추구에는 분명 무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생각을 이곳의 미국 대학교수들이 얼마나 할까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런 역사와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행동이 가장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런 속에서 다른 가치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당연히 한국적인 가치와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이 최소한 물리적으로 보면 서양적인 가치 이외의 한국적인 다른 가치에 대하여 좀 더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보내준 한국적 사랑을 그들은 나만치 이해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통하는 부분은 있겠지만 그 깊이있는 이해의 한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결국 한국 사람은 한국의 가치, 미국 사람은 미국의 가치 그리고 마야사람은 마야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야의 가치가 미국에서 평가되고 방향을 잡아가서 미국을 추종하는 지식인들에 의하여 결국 정책으로 만들어져서 오늘날 과테말라 마야사회 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중추에 정보와 주장이 있고 그 정보와 주장을 만들고 가공하며 수정하는 곳이 이곳 미국의 대학이다. 이러한 점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미국 대학만 발전한다고 세계의 다양한 가치가 발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잘나가는 서울대학교가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의 국가발전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여기에 들어난다. 또한 영어 잘하는 인간이 최고라는 생각속에 매몰되어가는 한국어의 가치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도 역시 한참을 따져보면 결국 같은 맥락이다.

마야 전통지역에서의 여성의 성적인 권리 찾기는 서양여성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러 가지 가치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강연을 맡은 연사에게 오늘 내가굳이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었던 부분이고, 역시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나의 서글픔과 갑갑함이 있다.

서양의 가치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역시 마야의 가치도 아름답고 한국의 가치도 아름답다라고 하는 전재를 염두에 둔 현대화와 발전, 변화 만이 세상의 갈등을 최소화하며 진정한 의미의 긍정적 세계화를 향해가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참 적다는 것을 더욱 쓸쓸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세계적인 학문을 주도한다는 곳에서 말이다. 노암촘스키나 마이클무어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미국이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미국에서 소수자이다. 그들이 소수자 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쟁중단을 요구하는 소리가 강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국의 세계 제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가 미국의 대학의 분위기에 있고 그 대학의 분위기를 오늘 나는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강연이 끝나고 연사가 가지고 온 깍치껠 원주민 민예품인 동전지갑과 귀걸이를 판다고 한다. 하나에 5불 이상 자율적으로 기부하기이다. 씁쓰름한 기분과 연사에게 공연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고, 무안하게 강연장을 도망치듯 나가고 싶지도 않아 주변을 어슬렁대다 동전지갑 하나를 집어 들고 갈등하다 10불짜리 한 개를 놓고 온다. 염병~~ 1불을 아끼기 위해서 음료수도 안 마시면서 끙끙대며 아끼는 돈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갑자기 너무 서럽고 쓸쓸하다. 몸이 혼자 있어서 그런 것이아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마음이 혼자 있다는 느낌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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