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해도 못사는 나라 필리핀?

타산지석으로 장단점 배워야

검토 완료

조용연(abechoph)등록 2008.02.19 12:20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영어 몰입교육을 주창하고 나선가운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필리핀이 하나의 사례로 연일 언론에 거론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교민 사회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어 몰입식 교육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하는 나라지만 변변한 공산품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할 정도로 못살고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어 몰입교육 해 봤자 시간과 비용의 낭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리핀은 8천8백만명의 인구중 대부분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 사용인구로 볼때는 세계의 3대 영어사용 국가다. 물론 영어 실력은 계층이나 직업, 또는 교육수준에 따라 천차 만별이지만 이런 상황은 영국이나 미국등 다른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한편에서는 필리핀 영어의 발음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실도 잘못된 발음이 아니라 다른 발음이라고 해야 옳다는 지적이다. 영어가 이미 잉글랜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된지 오래인만큼 영어사용 국가들은 나름대로 익숙한 그들만의 발음체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필리핀에는 완벽한 영국식이나 미국식 발음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지만 미국식 영어도 영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사투리 영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간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도 미국식 발음을 잘못됐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영어 논쟁에서 필리핀은 영어를 해도 별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 논쟁의 중심이다. 사실 필리핀은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에 불과해 2만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입장에서 보면 초라한 가난한 나라중 하나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적다고 못산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이미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필리핀에서는 상위 5%의 사람들이 전체 필리핀 부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의 어떤 부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살고 있다. 5%면 4백40만명인데 필리핀에는 한국의 웬만한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4백40만명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필리핀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으면 높을 수록, 잘살면 잘 살수록 영어를 잘 사용하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 사실이 무엇을 반증하는지 잘 알고 있다.  

 

영어를 잘 해도 못 산다라는 명제는 필리핀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단순한 평가이다. 필리핀에서 몇 년 이상 살아본 교민들은 오히려 필리핀은 영어 때문에 이만큼 살고 있다는 지적하고 있다.

 

필리핀은 영어 때문에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정치적인 불안정이 지속되고 계속되는 군부 쿠데타 상황에서도 영어 때문에 지난해 7.5%에 이르는 경제 성장을 이뤘다. 해외에 나가 일하고 있는 1000만명이 넘는 필리핀 사람들은 매월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하고 있는데 이것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필리핀 경제를 견인하는 큰 버팀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리핀 사람들이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중동 등지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취업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영어라는 언어 때문이다. 필리핀 현지 교민들은 해외 취업을 바라는 수 많은 필리핀 젊은이들이 얼마나 영어공부에 열심인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유창한 영어실력 때문에 노동력이 값싼 다른나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교두보를 위한 전진기지로 필리핀을 선택한 많은 서방 기업들 또한 필리핀이 영어 때문에 이 만큼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필리핀은 영어를 해도 못사는 나라가 아니라 영어 때문에 그나마 이만큼 살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국가지도력들과 공무원들의 부패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나라, 자원개발하나 변변히 해 내고 있지 못하는 나라, 정치적인 반목과 갈등으로 쿠데타가 연이어 발생하는 나라, 족벌 세력들이 정치와 경제를 독점하고 있는 나라인 필리핀이 그래도 이만큼 사는 것은 영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 나라에 희망을 둘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나라인 필리핀, 그래서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학과중 간호학과가 가장 인기가 있고 입학이 어려운 나라인 필리핀에서도 단연 영어가 경쟁력이다. 

 

필리핀 한인회 관계자는 “영어 몰입 교육이 옳으냐 그르냐를 우리가 판단할 순 없지만 영어몰입 교육반대를 위해 단순대입식으로 필리핀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영어가 필리핀사회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이곳에서 살아본 사람들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영어 사용을 잘 못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잘못 가르쳤다기 보다는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좋은 선생님과 훌륭한 시설에서, 좋은 교재로 공부를 해도 필리핀 사람들 만큼 영어구사가 어려운 것은 영어를 써 먹을 수 있는 상황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영어를 쓸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영어를 배워도 다 잊어 버리기 마련인데 영어를 사용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은 상황에서 공교육만으로 영어교육을 이루겠다는 인수위원회의 발상이 애처롭다. 필리핀이 영어를 해도 잘 사냐 못사냐보다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필리핀에서 왜 영어교육이 공교육의 통해서 잘 진행되고 있는지 타산지석으로 연구하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이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같은 의미지만 다른 길이와 내용으로 kbs라디오에도 방송되었습니다. 

2008.02.19 12:2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같은 의미지만 다른 길이와 내용으로 kbs라디오에도 방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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