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성 사건은 한국 스포츠계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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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성(ekaql128)등록 2008.03.13 16:14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야구팬에 기쁨을 주던 한 남자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사건은 아주 좋지 못한 결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지만 이 사건 이전에도 스포츠 선수 출신에 대한 좋지 못한 사건들은 많이 있었다.

 

어째서 선수시절 많은 사랑을 받던 선수들이 은퇴 후에 좋지 못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는  것일까?? 어째서 이호성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했을까??

 

분명 이호성은 사람이 해선 안 될 아주 끔직한 짓을 했다. 그의 행동은 그 어떤 이유도 변명이 될수 없는 큰 죄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하나의 끔직한 사건이라 하기에는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끔직한 사건의 시작은 우리네 옮지 못한 스포츠 육성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스포츠  육성 정책으로 인해 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국민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지만 그로 인한 잘못된 문제점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엄연한 현실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쯤 대부분 운동을 시작한다. 그들에게 운동선수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에 학업보다 운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들은 학교생활에 격어야 할 여러 가지 경험들을 포기하며 운동에 매진하고 어린나이에 1등만을 인정하는 냉엄한 스포츠 세계에 상처를 받는다.

 

스포츠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학창시절부터 치열하고 냉정한 경쟁을 경험하지만 그들에게는 앞으로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자신의 재량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어 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한국 운동선수들은 다르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굉장히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농구만 하던 선수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농구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야구선수로 전향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축구선수가 은퇴 후 피겨스케이팅이나 기계체조를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프로구단 코치직이나 협회, 연맹에 소속된 이들은 대부분 선수시절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대중들에게 인기 좀 있다 하는 종목 출신 선수들 뿐이다. 나머지 비인기 종목선수들은 코치직 얻기도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당연한 것이 수요가 없다 보니 공급이 적어 은퇴선수 수에 비해 코치직은 매우 한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나머지 선수들은 은퇴 후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린시절부터 교실을 떠나 연습장으로 향하던 이들이 정기교육을 이수한 이들과 경쟁이 될까?? 우리 스포츠 육성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바로 앞의 성적에 급급하다 보니 1등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수 많은 이들을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이다. 여건이 충분치 못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사회 운동선수들은 상처를 충분히 받았고 앞으로 또 다시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다고 장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스포츠 정책을 예를 들면 우리의 스포츠 정책과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어린 선수들은 성적의 압박으로 인해 즐겁지 못한 운동을 하지만, 외국의 어린선수들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놀이로써 운동을 즐긴다. 또한 외국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정기교육을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받으며 힘든 운동이 아닌 재미있는 운동을 한다. 이는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훗날 선수로써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운동선수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하기도 한다.

 

운동을 하다 큰 부상이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 중에는 자신이 몸 담았던 운동을 전공으로 살려 행정가로써 성공한 사례도 외국에는 적지 않다. 또한 우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자신만의 전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외국스포츠 정책은 선수들의 삶을 고려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외국의 사례가 모두 옮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선수를 위한 배려는 우리 스포츠계가 충분히 본받을 만한 것임은 틀임없다.

 

우리는 왜 이호성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또한 앞으로 제2의 이호성을 방지하기 위해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남아있는 우리가 먼저 간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2008.03.13 16:16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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