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문외한인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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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kja410)등록 2008.03.18 17:11

남녘에서 들려오는 꽃소식, 우리 집 베란다에도 봄 햇살을 받으며 알뿌리에서 파란 싹이 돋더니 눈에 띄게 쑥쑥 자라 어느 날 병아리처럼 작고 귀여운 노란색의 수선화를 시작으로 사랑초, 군자란, 칼랑코에,제라늄 등이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으로 한껏 뽐을 내고 있다.

 

베란다에 핀 꽃말이 첫사랑의 '설레임' 이라고 하는 칼랑코에 ⓒ 김정애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그리운 이처럼 작년의 모습 그대로 다시 피어난 꽃들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인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반드시 자신의 이름 자리에서 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거짓 없는 자연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혹자는 그랬다. 죽음은 아름다운 꽃을 그리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유로운 날개를 주기 위한 과정이라고 ...

 

산을 오르다보면 잎을 다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으로 겨우내 살을 에는 혹한 속에서 죽은 듯 미동도 않던 것들이 가지 끝에서, 땅 속에서, 약속이나 한 듯 때를 맞춰 꿈틀대며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신비함에 절로 감탄사가 새어나온다.    

 

봄이란 계절은 세상 경험이 많은 어른에게도 무한한 상상력을 불어 넣어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감성을 풍부하게 해 준다. 나돌아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필자도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뭣에 홀린 듯 자꾸만 들로 산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토요일(15일) 오전 내내 집에 있다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서둘러 외출준비를 했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을 보기로 마음먹고 남편 사무실에 주차를 하고는 오랜만에 청계천 물길을 따라 덕수궁 옆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까지 걷기로 했다.  

 

도심 속 개천가에도 이미 봄은 와 있었다. 늘어진 버들가지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버들강아지가 여린 속살을 드러내고 졸고 있는 듯 바람결에 흔들거린다.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봄볕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온 꼬마들 눈엔 모든 게 신기하고 마냥 즐거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꼬마 ⓒ 김정애

 

대여섯 살 가량의 여자 아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봄 정취에 취한 듯 얼마 동안 꼼짝을 않고 서 있다.  

 

빌딩숲 양지바른 쪽 화단엔 봄꽃들로 단장을 하여 주변 거리까지 화사하니 봄날의 분위길 한껏 돋우고 시청 앞, 서울광장에 비둘기도 종종걸음으로 꽃밭 주변을 돌며 봄나들이에 여념이 없다. 

 

시청 앞, 서울광장 꽃밭에서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는 비둘기 ⓒ 김정애

내일이 마지막 날이어서 일까? 횡단보도를 건너자 덕수궁 정문 앞까지 길게 늘어선 입장객들이 마치 흥행영화 상영관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풍경과 흡사했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을 관람하기 위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늘어 선 인파 ⓒ 김정애

 

우리도 대열에 합류해 줄을 이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돌담을 에워싸고 있는 인파에 입이 벌어졌다. 1시간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할 것 같다는 안내자의 말에 갈등이 생긴다. 시간 반을 기다리는 것도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지만 예까지 발품을 팔아 걸어 온 걸 생각하니 오기가 발동하여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인생이란 이토록 슬프다는 것을 누가 믿을 것인가?” 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흐, 생전엔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해 고작 일생 동안 단 한 작품 밖에 팔지 못했다는 화가에게 후세 인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게 입장은 했지만 예상대로 장내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술책에서 보았던 그림들이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림으로 본 것을 다시 자막과 함께 영상을 통해 감상을 하니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더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가난과 고통속에서도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오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화폭에 담아낸 광기에 가까운 그의 열정은 문외한인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2008.03.18 17:15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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