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연결고리, 삐삐

검토 완료

김수정(monade23)등록 2008.04.01 09:35

SBS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중 봉달희가 삐삐를 확인하는 모습. [캡쳐 출처-NeTV] ⓒ 김수정

 

  2007년 초, 성황리에 막을 내린 SBS ‘외과의사 봉달희’란 드라마가 있었다. 그 인기를 타고 한 포털사이트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여주인공 봉달희가 가끔씩 꺼내보던 물건이 뭔가요?' 이럴 수가! 삐삐가 벌써 잊혀진 물건이라니!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진동이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래서 늘 공중전화 부스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그 때를 말이다.

 

삐삐, 네버 다이!

 

  90년대는 ‘삐삐의 전성시대’였다. 통신 시장에서 삐삐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80년대 학번이 ‘12시에 충대 정문에서 만나자’라고 구두로 약속을 잡았던 세대라면, 90년대 학번은 공중전화 부스에서 주머니 속 네모난 기계를 들여다보며 버튼을 누른 세대다.

1997년을 기준으로 1500만 명의 국민이 이용했던 삐삐. 90년대 말부터 휴대전화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사용자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현재 남아있는 삐삐 가입자는 약 1~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의사나 간호사 등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옛 향수를 느끼고 싶어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과 세상을 24시간 연결시켜 주는 휴대전화의 구속성을 거부하는 이들, 그러나 한 줄의 소통의 끈은 남겨두기 위해 삐삐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인터넷상에서도 삐삐를 추억하거나 삐삐 서비스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삐삐지식카페(cafe.daum.net/bipi)’와 ‘삐사모(cafe.daum.net/ilovebeeper,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아직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삐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 카페의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삐삐 서비스에 가입했고, 잊혀진 삐삐 기종들을 찾고 있다. 이들은 카페에서 기종들 정보를 교환하고, 삐삐에 얽힌 추억을 나눈다.

삐사모 공동운영자 김지양(23)씨는 “시대가 자꾸만 빠르게 변할수록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도 늘어나나 봐요. 삐삐를 다시 찾는 이들은 예전 추억을 그리워해서 찾기도 하지만, 개인의 시간을 간섭받지 않고 보내려는 사람들도 많거든요”라고 말했다. 결국 시대가 자꾸 역동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발 쉬고 싶은 사람의 마음도 점점 커지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이들의 연락수단이었던 삐삐, 이제는 그 종적을 찾기 힘들다. [사진출처- 삐사모의 삐삐사진 자료실] ⓒ 김수정

 

삐삐, 추억을 진동하다

 

  90년대 중반, 삐삐는 그 당시 젊은이들의 필수품이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삐삐 세대에게는 지금의 휴대폰 세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삐삐는 지금의 휴대전화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중전화에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는 초조함. 누가 보낸 어떤 내용의 메시지가 왔을까 기대하며 수화기를 드는 설렘. 전화가 오면 휴대전화 액정에 표시되는 발신번호부터 확인하는 우리의 무미건조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삐사모 카페 아이디 bbs1497씨는 10년 전을 회상한다. “제가 대학생일 때, 삐삐가 엄청 유행했죠. 당시에는 시티폰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삐삐나 시티폰 모두 이제는 추억 속의 물건이네요. 가끔은 휴대전화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해요.”

삐삐라는 단어는 추억을 진동하고, 아련한 기억들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한 때를 풍미했던 삐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삐삐를 사용했던 1500만 명 사용자들의 마음 속에는 추억을 연결하는 고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08.04.01 08:24 ⓒ 2008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