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늘이시여, 내게 이런 복을 주시나이까?

먼 곳에서 찾던 봄꽃들이 내집과 내 뒷산에 가득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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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jinoossi)등록 2008.04.04 08:56
봄이면 어디나 꽃이 만개한다. 우리집에도 꽃들이 핀다. 무엇보다 먼저 서둘러 벙그러지는 것이 봄맞이다.

봄맞이
겨우내 지둘러서 이제야 낯 내밀어
마당가 돌틈새에 뿌리를 내렸다가
봄소식 좀 늦을세라 앞다투어 벙그네

봄맞이 ⓒ 지누랑


노루귀
산자락 잡목 틈새 그늘을 찾았다가
물기도 머금고파 계곡에 노닐더니
오늘은 다사론 햇볕 머금어서 벙그네

분홍노루귀 둘 ⓒ 지누랑


분홍노루귀 하나 ⓒ 지누랑


광대나물
마당가 돌 틈새에 옹색히 뿌리내려
죽은 듯 자리잡아 숨마저 죽이더니
새 봄에 뉘 뒤질세라 붉은 자태 뽐내네

광대나물 ⓒ 지누랑


산자고
낙엽 새 삐쭉히 얼굴을 내밀더니
밤 새워 달려왔나 숨 한 번 고르다가
새초롬 피어났도다 줄무늬도 하얗게

산자고 꽃망울 ⓒ 지누랑


산자고 ⓒ 지누랑


홍매찬
눈 속에 피어나서 설중매 되고잪아
한 겨울 설한풍에 되짚어 그렸어도
타고난 빙질옥골은 때가 되어 벙그네

홍매 ⓒ 지누랑


백매찬
매화야 어이타가 세월을 앞질러서
눈 속에 피고자던 염원을 뒤로 두고
이 봄에 양광 벗삼아 저렇게도 하얗나

백매 ⓒ 지누랑


개나리
어머니 무덤가에 저 홀로 앉아서는
봉분 속 어머님이 행여나 외로우실까
꽃 잎도 다 못 만들어 네 잎으로 피었네

개나리 ⓒ 지누랑


보춘화
다소곳 접은 날개 좌우로 내밀어서
연황색 저 깊은 곳 조물주 염원 담아
새 봄에 누구라 먼저 봄 소식을 알리네

보춘화 춘란 ⓒ 지누랑


살구꽃
살구꽃 핀 마을은 인정도 많다는데
내 집 앞 대문가에 혼자서 버티다가
오늘은 새하얀 꽃을 탐스럽게 얹었네

살구꽃 ⓒ 지누랑


진달래
뒷산에 오르다가 산자고 하나 보고
돌아서 뜸한 새에 양지쪽 한눈 팔아
얻은 게 꿈에 그리던 두견화가 맞는가

진달래 ⓒ 지누랑


제비꽃
누구는 흰제비꽃 꿈 속에 그리다가
못잊을 죽마고우 한 많은 素望 담아
저 여린 보라 꽃잎을  하나 둘둘 하얗네

제비꽃 하나 ⓒ 지누랑


흰제비꽃 ⓒ 지누랑


수선화
연초록 꽃망울을 담았다 오래도록
잎 사이 밀어오던 튼실한 꽃대궁을
하마면 확 터트릴까 온 몸으로 버티네

수선화 ⓒ 지누랑


현호색
저런 꽃 어디가면 행여나 볼까 보아
눈 들어 온 천지를  오늘도 해맸거늘
내 뒷산 돌아다보니 저 놈들이 옹크려

혼백이 아찔하여 잠깐새 정신들어
되돌아 여기저기 그놈들 집을 찾아
현호색 초대를 받아 행복 속에 빙그레

청현호색 ⓒ 지누랑


홍현호색 ⓒ 지누랑


현호색 둘 ⓒ 지누랑


현호색 ⓒ 지누랑


올해는 활빈당 진철 님을 따라 겨울부터 눈 속에서 병풍산엘 오르고, 영광 야산을 헤매고, 화순에도 가고, 담양 대덕리에도 가고 백암산에도 가고 장성호에도 가고 그렇게 봄꽃을 찾아 무던히도 다녔다. 병풍산에서는 쥐똥나무 열매가 수확이었고, 영광 야산에서는 토끼똥이 그나마 나를 반겼고, 눈 속에 찾아간 화순에서는 눈을 파헤치며 찾은 복수초 싹에도 행복해 했고, 불갑사에서 변산바람꽃과 노루귀와 꿩의 바람꽃을 찰칵하면서 비로소 접사의 즐거움을 몸으로 안았고, 장성호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 '시골풍경'에서 복수초를 렌즈를 통해 보고 땅 속을 파고 드는가 하면, 백암산에서 개감수 싹을 보며 신기해 했고, 남창골에서 얼레지 한 무더기를 보고는 감격하던 추억이 있다. 너무 서둘러 담양에서는 청색 노루귀를 보러 갔다가 눈 속에 새싹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기억도 새롭다. 복수초, 노루귀, 산자고, 꿩의 바람꽃. 이들이 내게 안겨다 준 행복은 적지가 않다.

진우찰칵 ⓒ 김진철


그런데 기적은 딴 곳에 있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헤매는 내가 불쌍턴지 하느님은 내게 크나큰 선물을 주셨다. 오늘은 그 조물주의 은총을 확인하는 날인가 보다. 오후 세 시. 카메라를 들고 혹시나 하고는 나는 우리집을 다 둘러보기로 했다. 앞마당에서 출발하여 돌아보는 내 눈에 들어오는 광대나물, 보라색 제비꽃, 흰색 제비꽃, 봄맞이, 수선화 꽃망울, 살구꽃, 산자고, 홍매, 백매, 분홍노루귀, 길마가지나무, 진달래, 개나리, 보춘화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늘 나를 놀라게 한 현호색이 내 산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찌 내가 한 수의 단가를 부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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