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행정구역으로 포함하고 있는 경상북도(도지사 김관용)가 홈페이지(사이버독도, http://www.dokdo.go.kr/) <역사속인물>에서 독도의용수비대, 이종학 전 독도박물관장,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 독도경비대 등을 삭제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경상북도 독도지킴이팀 관계자는 '조금씩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올라간 자료는 검토가 된 것이다'라며 업데이트 중에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경상북도에 독도경비사 관련자료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독도수호대(대표 김점구)는 '경상북도가 독도경비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이 일자 논란자체를 없애기 위해서 취한 조치이며, 무엇이 문제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입장을 밝혔다.
▲ 경상북도 독도홈페이지 사이버독도의 <역사속인물> 독도경비사 재정립을 위해 수정을 요구할 당시 목록이다.
경상북도가 삭제한 독도의용수비대, 이종학 관장, 독도경비대, 최종덕 등은 붉게 표시하였다.
ⓒ 김점구
경상북도가 검토를 했다는 자료는 경찰청 인사기록, 국방부 병적기록, <독도문제개론>(외무부, 1955년), <독도관계자료집(1)-왕복외교문서>(외무부, 1977)에 의해 잘못되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1978년에 경상북도가 울릉도 현지조사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와도 다른 내용이다.
다음은 경상북도가 삭제한 <독도의용수비대>의 내용의 일부이다.
‘1950년 6.25전쟁을 전후로 일본이 독도에 도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6.25전쟁 발발로 우리정부의 행정 및 군사력이 독도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일본은 독도에 상륙하였다.... 의용수비대원들은 1953년 4월에 독도에 입도한후 1956년 12월 25일 경북 경찰청 울릉경찰서에 독도수비 임무와 장비일체를 인계하고..’
이어서 1956년 12월 해산당시의 조직과 명단이라며 조직도와 명단이 수록하였다.
삭제된 독도의용수비대 역사는 <홍순칠>에서 다시 언급되는데 기자가 취재할 당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3년 4월 독도에 첫 상륙한 이후 독도의용수비대를 이끌면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수차례의 총격전을 감행하였다....1956년 12월 국립 경찰에 독도 경비를 인계....’
조직도와 33명의 명단은 포함되지 않았다.
취재가 시작되자 일부 수정
기자는 시민기자로서 취재한다는 것을 밝히고 삭제이유와 현재 자료의 근거에 대해 취재를 시작했다. 홈페이지 담당자와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 경상북도는 “1956년 12월에 독도의용수비대가 경찰에 경비를 인계했다”는 부분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어린이사이버독도>는 수정이 되지 않고 그대로이고, 일관성 없이 대응하고 있다.
독도수호대는 경상북도는 물론 동북아역사재단, 국토해양부 등 관련기관에도 수정요구를 하며, 1950년대 독도경비사와 독도의용수비대 역사재정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사이버독도의 <어린이사이버독도> 취재가 시작된 이후 수정을 하였으나 <어린이사이버독도>는 수정하지 않았다. ⓒ 경상북도
왜곡된 1950년대 독도경비사 재정립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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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독도상황은 “당시는 한국 전쟁이 진행중인지라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김명기 명지대 명예교수) “국가가 북방전선에 온 힘을 경주하느라고 동해의 동남쪽 낙도인 독도에 미쳐 손 쓸 사이 없는 틈을 타서 일부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평화선을 넘어...”(나홍주 독도조사연구학회 회장)등 정부차원에서 실질적인 독도경비를 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은 독도의용수비대 3년 8개월의 역사가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독도의용수비대는 1954년 5월부터 독도에 상주하며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물리쳤고 12월에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되어 55년부터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원으로 독도경비를 담당했다.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은 왜곡된 3년 8개월 보다 민간인으로서 8개월의 역사가 더 자랑스럽다며 정부기관에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독도경비 노력도 계속되었다. 평화선 선언이후 일본 어선의 나포가 급격히 증가했고, 1953년부터 외무부의 지시로 시작된 시작된 독도 영토표석 설치는 1954년 8월에 독도경비초사와 함께 완성되었다. 울릉경찰서는 독도순라반을 조직하여 1953년 7월에 일본 순시선 헤쿠라호를 총격으로 물리쳤고, 1955년부터 독도의용수비대 특채경찰관과 상주하며 독도경비를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권국으로 실효적 지배 조치는 지속된 사실을 부정하고 우리 스스로 실효적 지배조치를 부정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1950년대 독도경비사와 독도의용수비대 연구를 통해 실효적 지배 조치가 계속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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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명 서-
경상북도는 독도를 지킬 의지가 있는가?
- 홈페이지에서 독도역사 왜곡, <역사속인물>에서 독도의용수비대, 이종학 독도박물관장 등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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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행정구역으로 포함하고 있는 경상북도(도지사 김관용)가 독도홈페이지 <사이버독도>의 <역사속인물>에서 독도의용수비대, 고 이종학 전 독도박물관장, 독도최초 주민 고 최종덕, 독도경비대 등을 삭제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상이용사로 구성되었으며 1954년부터 독도에 상주하며 수차례에 걸쳐 일본의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물리치는 등 독도를 지켰고, 고 이종학 관장은 평생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밝혀내는 자료 발굴과 연구에 평생을 보냈고 초대 독도박물관장을 지내신 분이다.
삭제 시기는 '경상북도가 홈페이지를 통해 독도경비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과 수정요구가 본격화된 이후이며, 삭제한 이유는 독도경비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없이 논란만 잠재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독도지킴은 일부내용에 문제가 있어 수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삭제된 항목외에 <어린이사이버독도> 등 다른 항목에는 왜곡된 독도경비사가 그대로 실려 있어 설득력이 없고 검토를 했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만약 충분한 검토를 했다면 모든 내용이 수정되어야 하고, 항의를 할때 마다 조금씩 수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950년대 독도경비사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어려운 시기에도 독도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실효적 지배 조치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중차대한 독도경비사를 바로잡기보다 문제의 원인만 없애면 된다는 경북도의 이번 삭제조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 겪이다.
경상북도가 수정을 거부하는 독도경비사는 생존대원의 증언, 경찰청 인사기록, 국방부 병적기록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심지어 1978년에 경상북도가 울릉도 현지조사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경상북도가 경상북도의 공식기록을 부정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현재 일반적으로 1950년대 독도경비사는 ‘한국전쟁 전후 혼란한 정세로 인해 정부차원의 독도경비는 없었다“고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1952년 평화선 선언이후 한국정부의 독도경비는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주권국으로서 영토수호의지를 명백히 하였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에 상주하며 독도를 지키는데 일조하였다.
경상북도는 독도를 관할구역에 포함하고 있으며, 독도의 주권국인 대한민국의 행정기관이다. 독도 관할기관으로서 독도경비사 재정립과 올바른 독도역사를 알리는데 앞장서주기를 바란다.
2008년 4월 8일 독도수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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