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다시 보기1

도시를 파괴하지않는 토종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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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nkw88)등록 2008.04.20 17:27
괴물은 무엇을 상징하나 - 두려움과 욕망은 결국 연결되어있다.
서양의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공룡이나 괴수들, 그리고 동양의 전설에 나오는 용은 따지고보면 하나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모양이 어쨌든, 그 권능이 어떻든간에 그 당시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걸 구체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다보니 그 당시에 보기에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했던 맹수들의 특성을 마구 섞어놓은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대체로 신체적인 능력에서 각 맹수들이 사람보다 더 뛰어났고 그 점에서 인간은 자기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하늘을 날 수가 없어서 하늘을 날고싶어하는 동시에 날아다니는 존재가 나를 어떻게 할까 조마조마했던 것같다. 용이 괜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비단 신화나 전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공상과학영화에도 해당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이나 팀 버튼의 '화성침공'같은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들이 왜 무서운가. 사람이 만든 비행기나 우주선보다 더 성능이 좋은 UFO를 타고 왔기때문인 거다. 그리고, 대체로 괴수들은 사람보다 크고 사람보다 힘이 세다.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크길 바라고 또 힘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밀리지않기를 바라지않는가. 셋째, 괴수들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앞에 날아다니는 것이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면 이건 시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사람보다 오래 살고 사람보다 더많은 곳을 가볼 수 있기때문에 괴물은 사람보다 아는 게 많다. 이런 영속성을 지닌 대표적인 괴물이 바로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이다.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은 수천년을 살아온 사람이다. 도교에서 말하는 불로장생을 실현한 존재가 사실 드라큘라 백작인 셈이다. 불로장생하려면 남의 피빨아먹어야되는 거다. 실제로 중국의 고전소설중 하나인 '옥보단'은 남의 정기를 빨아먹어서 나중에는 신선이 되는 결말로 되어있다. 성인용 삼급영화로 만들어진 '옥보단'에는 이런 얘기가 안나오지만, 옥보단 시리즈중에 성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요괴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으니 그 전통은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전파되기 전에는 이런 존재들은 일종의 종교적인 섬김의 대상이었다. 영화 '캣 피플'을 보면 주인공이 오래 전에는 인간들이 자기들에게 복종하고 두려워하고 섬기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렇지않는다는 말을 한다. 유일신 사상이 성립되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이런 존재들을 섬기는 것이 하찮은 미신으로 치부되서 종교적인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소설이나 영화같은 허구의 장르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괴수물에 나오는 '괴물'들이 그 당시 그 지역 사람들이 무서워했던 존재, 아니 그들의 두려움과 욕망을 동시에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괴수영화 '고질라'를 보자. 혹자는 고질라가 일본군부의 상징이라고 말하기도한다. 고질라가 도쿄만에서 나타나서 도시를 파괴하는 것이 2차대전때 미국의 대대적인 공습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연상시키니까 결국 2차대전의 패전과 파괴가 결국 일본 군국주의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해석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 해석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고질라가 나타나서 일본의 도시가 파괴되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엄청난 파괴력과 그 파급력 자체가 무서운 것이지 그것이 반드시 일본의 군국주의의 재등장이 무서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그 고질라를 격퇴하기위해 미사일을 발사해대는 일본자위대 공군기는 뭐고 나중에 고질라의 자매 괴수물들을 보면 고질라와 괴수들이 일본의 도시들을 무슨 프로레슬링 격투장처럼 여기고 싸워대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오히려 그런 괴수들이 바다로부터 온다는 데 주목해야할 것같다. 두려움은 바다건너에서 온다. 일본은 섬나라다. 우리나라야 북쪽으로 만주로 연결되어있어서 중국이나 북방유목민들이 육로를 통해 침입을 했고 그들과 지상전을 치루어서 이기거나 지거나 그랬지만, 일본은 사방이 다 바다로 둘러싸여있어서 외적은 기본적으로 바다를 건너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외적만 바다를 건너오는 것이 아니다. 선진문물도 바다를 건너온다. 중국문화와 한국문화도 바다를 건너온 거고, 근대에 이르러 서양(서구도 아니고 서'양'이에요, 서쪽 바다)의 문물도 바다를 건너온 거다. 그러니까 바다를 건너오는 것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보다 더 뛰어나고 나은 존재인 것이다. 그 결정판이 바로 원자폭탄이었던 것이고 고질라와 괴수들은 그런 근심과 파괴력을 구체화한 존재들인 것이다.

한편 일본의 괴수영화는 그렇고 그럼 미국영화는 어떤가. 미국은 군사, 기술, 경제면에서 세계최고의 대국이다. 그럼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당연히 미국보다 우월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지구상에 있는가. 그래서 그런 존재는 우주에나 있는 게 미국인들의 심리에서는 그런대로 말이 되는 얘기인 거다. 지구상에 미국보다 나은 존재가 없으면 미국보다 나은 것은 우주 또는 천상에 있는 거고 그럼 그건 둘중 하나인 것이다. 외계인이거나 아니면 신/악마인 거지. 그래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영화가 그렇게 많고 또는 종말론에 입각한 영화들이 있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 롤런드 에머리히의 '인디펜던스 데이'가 그런 예들이다.

그럼 봉준호의 '괴물'은 어떤가. '괴물'은 휴전선을 넘어서 오지 않는다. 비록 이명박정권들어서 불협화음이 들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난 그 '잃어버렸다는 10년'(누가 뭘 잃어버렸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동안 남북이 손잡고 잘해보자 분위기였고 어떤 기사에 의하자면 이제는 군사력으로도 북이 남을 절대적으로 압도하는 상황이 아니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무서운 존재인 건 아니다. 괴물은 압록강을 건너지도 않는다. 미안한 말이지만 압록강은 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가르는 경계선이지 중국과 대한민국을 가르는 국경이 아니다. 외려 중국과 대한민국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갈라진다. 그럼 괴물이 바다를 건너서 오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럼 외국하고는 친하게 지내는 게 좋아.

봉준호의 괴물은 오히려 한강에서 나온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괴물은 사람만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지도 않고 교량도 놔둔다. 이 괴물은 한국자본주의와 근대화의 업인 거다. 피도 눈물도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가차없이 죽여버리지만, 대한민국 경제건설의 상징 한강다리는 파괴하지않고 오히려 거기서 논다. 마치 구렁이가 절간의 기둥과 서까래에 또아리를 틀고 살듯이 괴물도 그렇게 한강다리밑에 산다. 이만한 구사대도 없어요. 그렇지만 구사대도 조직된 노조원들을 무찌르기 힘들듯이 이 괴물도 박강두 식구들과 한강다리 밑에 사는 홈리스 아저씨의 협동작전에 의해 격퇴당한다.

자, 그럼 미군부대에서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해서 돌연변이가 생기고 그게 괴물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걸 환경주의적인 입장에서는 환경파괴를 암시한다고 볼 수있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그것이 무엇을 비유하고 암시하는가를 더 따져보자. 그러니까 그것은 한국의 자본주의발전과 근대화라는 것은 미국의 보호하에, 또는 미국을 정점으로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것이고 괴물의 등장은 그런 경제사회구조의 부정적인 부산물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미군이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했고 영화 내내 다친 미군의 소식을 보여주는 뉴스가 나오는 것이 반미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세계체제에 편입된 결과의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네21에 있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 '사과애'와 사이월드 미니홈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광우기자는 미국 서던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문화와 영화연구로 박사과정을 밟고있습니다.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활동의 하나로 2001년부터 뉴욕한국영화제를 위해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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