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이 주는 세 가지 의혹

역사와 현실을 읽지 못하는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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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kim gabsoo)등록 2008.04.21 10:23
한미정상회담이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주일 동안 정력적으로 미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만 요란했지, 미국에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한미정상회담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우리에게 중차대한 일이다.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이 시드니에서 부시를 만나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을 하고 북미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언질을 받아 놓았던 터라 이번 회담에 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물론 방미 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들을 보고 기대의 양이 다소 줄기는 했었다.

그래도 싱가포르 회담도 잘 돼간다는 소식도 들린 데다, 마침 이 대통령이 북한에 유화적인 발언을 하기도 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혹시 남북문제를 풀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가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먼저 들렸다. 그리고 회담 후에는 ‘한미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감축안 철회’에다 ‘방위비 분담 개선’ 소식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마지막으로 실망스러운 것은 부시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에 즉각 “노!”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는 소식이다.

실망과 함께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다음 세 가지 의혹점을 던져주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라는 유언비어]

특히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이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해 돈독한 우의를 다지고, 이를 전 세계에 과시한 것은 한미관계의 새 단계 진입을 상징해 주기에 충분했다는 분석이다.(연합뉴스)

이 보도는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초대한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대부분 언론도 이와 비슷한 보도 경향을 보이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 대통령의 휴양 별장이다. 그런데 정말 미국이 국가원수의 외교 전략으로 별장이나 목장 따위를 의도적으로 이용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것은 아마 일 꾸미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나 세속적인 기자들이 만들어 낸 말일 수도 있다.

어느 면에서 외국에서 온 공식적인 손님을 자기 별장으로 오라 하는 것 자체가 결례일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미국 대통령이 만나기 좀 편하고 회담이 쉬울 것 같은 사람을 자기도 쉴 겸 해서 별장으로 오도록 조치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산 속 별장에서 하는 것은 미국이 우리에게 “아이 엠 쏘리” 라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우리가 거기에 근거 없는 의미까지 부여해가며 환호할 일은 아닌 것이다.

만약 미국 대통령이 호·불호에 따라 누구는 백악관에서 만나고 누구는 별장이나 목장에서 만난다면 그것은 대국의 원수답지 않은 실로 얄팍하고 유치한 짓이다. 지난번 일본 수상 고이즈미는 미국 서부에 있는 크로퍼드 목장에 갔는데, 마침 그때는 부시가 한 달 간 그곳에서 휴가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에도 한국의 보수 신문들은 부시가 일본 총리를 특별히 우대하여 목장으로 초대한 것인 양 보도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미국이 하는 일이면 다 세련되고 멋진 일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지 답답해진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 간 일이 매우 의미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는 언제쯤 조성될는지? 나약하고 속물적이니까 별장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안 철회의 비역사성]

8·15 이후 한국에서 3년 간 군정을 실시한 미군은 한국전쟁 때 대거 다시 들어와 지금까지 이 땅에 주둔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60년 이상 외국 군대가 우리 영토에 주둔하고 있는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 군대는 점령군은 아니다. 그리고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수십 개국에 달한다. 개중에는 우리보다 강대국이라는 일본도 있고 독일도 있다. 게다가 미국 군대는 해당국에서 철수를 요구하면 실제로 철수하기도 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미군이 철수한 필리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은 2차대전의 패전국이다. 그리고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2차대전으로 인하여 식민지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국토가 동강 나버린 채 60년 이상을 분단국으로 살아오는 나라가 아닌가?

혹자는 끔찍했던 한국전쟁을 상기하거나 북한의 위협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입장을 달리 하면 북한 역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받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한국전쟁에 대거 참전한 중국군은 전작권을 즉시 반납하고 철수하지 않았던가?

냉전이 풀리면서 미군 주둔의 당위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너무 원론적인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이제 주한미군은 명백히 한국이 아닌 미국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통일되어 군사분계선이 없어지면 미국은 지금 한반도의 잘록한 허리인 150km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아우르는 1200km 장거리 방어선을 운영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외국군 주둔이 대책 없이 장기화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사실 미군이 있음으로 해서 이 땅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를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길게 보아 보수주의자들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물며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미군 감축안 철회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점이 정말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21세기 한미전략동맹의 추상성과 모호성]

보수지들은 이제 한미관계가 새로운 동맹체제로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양국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국제정세와 안보수요가 급변함에 따라 한미동맹도 새롭게 변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면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의 가치와 신뢰를 기반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21세기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미동맹에 대한 미래비전을 더욱 구체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조선일보)

주지하듯이 지금 한국과 미국은 더할 나위 없이 돈독한 군사적 동맹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로운 동맹을 더 맺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가치동맹’이고 신뢰동맹‘이고 ’평화구축동맹‘이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동맹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런데도 왜 이런 말장난에 가까운 언어로 ’새로운 동맹‘을 강조하는지?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한미동맹관계를 ‘복원’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한미동맹관계를 ‘파탄’ 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한미정상회담을 가장 많이 하면서 미국과 일관되게 ‘코드’를 맞춰 왔다. 굳이 분류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정통 친미정권이었던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지난 10년 동안 한미관계는 전혀 파탄 나지 않았다. ‘파탄’ 나지도 않은 한미관계를 ‘복원’하겠다고 눙쳤으니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름의 동맹이라도 새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마치 노무현 정권에서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고 나서 그것을 살린다고 요즘 군색하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대동소이한 일이다.

미국 측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하도 ‘같지도 않은 동맹론’을 들고 나오니까 약간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국 측에서도 한국 쇠고기 개방은 시켜야겠지, 방위비 조정도 해야겠지 해서 한국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21세기 전략동맹’이라는 추상적이고도 실체 없는 용어를 급조한 것이 아닐까 한다. 결과는 국가간 동맹이 양해각서나 공동성명도 없이 기자회견으로 이루어져 나타났다.

결국 한미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조공 외교’라는 말도 들리고 ‘진상 회담’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부분의 보수신문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큰 성과와 의미가 있는 것인 양 보도하고 있다.

보수지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진보지들까지 ‘주한미군 감축안 철회’나 ‘21세기 전략동맹’ 등 지극히 비역사적이고도 허술한 사안에 마땅히 제기해야 할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껏해야 그들은 쇠고기 문제에만 천착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광우병 문제와 한국 축산농가의 붕괴는 심각한 사안이다. 하지만 역사를 읽지 못하거나 현실에 예민하지 못한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보수는 물론 진보마저도 역사와 현실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한겨레 토론방 블로그 <정화된 밤>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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