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차장에 차를 대기가 어려웠던 내가 자주 가는 삼계탕 집이 있다. 식사 시간은 물론이고 식사시간 훨씬 전이나 후에 가도 항상 이 식당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난 오늘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주차장에 차 한대가 없었다. 내 차를 빼고 말이다. 물론 이 식당은 영업 중이었다.
이 식당을 벌써 5년 정도 애용해왔던 나에겐 처음 접하는 광경이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원인은 바로 ‘조류독감’이 있었다. 이왕 온김에 마음먹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약 백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식당 안에 아기를 데리고 온 부부를 제외하고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시간도 조금 이른 저녁이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내 마음도 흔들렸다. 찜찜하고 잘못 왔다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조류 바이러스는 조리한 음식의 경우 안전하다는 과학적 상식을 믿고 있는 나의 신앙(?)에 의심의 구름이 몰려왔다. 그러나 삼계탕 하나를 다 먹는 약 30여분의 시간동안 내 다음 손님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차를 빼자 처음 들어올 때 움찔했던 비어있는 주차장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지금은 언론에서 약간 비껴있는 조류독감이지만 관련 업계가 느끼는 타격은 실로 메가톤급이었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폭풍은 업계 전반을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저녁 집에 들어와 뉴스를 틀자, ‘광우병’ 소식으로 TV의 스크린과 인터넷이 후끈 달궈져 있었다. 많은 핵심적 논점들이 각종 언론들을 통해 비교적 상세하고도 정확하게 지적되고 있는 인상이다. 나름대로 다행이다.
문제는 오늘 발표장에 나온 정부 책임자들의 자세다.
가열하면 심지어 조류독감에 걸린 오리나 닭을 먹어도 이상 없는 상황에서도 삼계탕 식당이 공포스러운 외면을 당하는 현장이 생생하다. 2000년 이후 광우병 발병 소의 발견으로 동물성 사료금지 정책을 시행한 미국에서 광우병은 이제 안전하다고 말하는 한국의 보건식품 책임자들이 도대체 어떤 ‘뇌 구조’를 소유한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잠복기(통상 1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병 여부는 적어도 2010년 이후에나 판단할 문제다)도 지나지 않은 광우병 발생 지역의 소를 수입하겠다는 발상자체가 위험하다는 상식을 복잡한 의학적 둘러댐을 통해 모면하는 애씀이 분노를 더 자극할 뿐이었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가 그대로 수입될 경우, 2010년 경에 과학계의 우려처럼 미국 내에서 잠복기를 지난 인간 광우병 발병자들이 급속히 발병한다면 오늘 내가 삼계탕 식당에서 본 그 공포스러운 장면은 더 이상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여기엔 한우의 살인적인 가격이 더 이상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생이 철저하게 보장된다는 아주 기초적이고 초-상식적인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런 기초가 무너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그 가격이 시장에서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던, 한우가 금값이 되어 재벌 이외에는(지금도 사실 그런 경향이지만) 섭취가 불가능한 식품이 되건 수입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 또한 상식 중에 상식 아닌가?
일부에선 FTA를 위해서, 또는 한국의 수출을 위해서, 미래의 더 많은 이익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 나도 이 의견에 심정적으론 동의한다. 그러나 그 희생은 ‘경제적인 것’이어야 한다. 희생의 대상이 ‘생명과 직결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동의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조류독감에 직격탄을 맞은 관련 식당의 황폐한 모습에서 오늘 난 문뜩 ‘광우병’의 공포가 떠 올랐다. 어느 영화에서나 봄 직한 공포의 도시 한 가운데 서 있는 상상 속에 빠져들만한 충분히 서슬퍼런 한적함을 경험했다.
조규독감이 인간에게 전파되었다는 증거나 결과도 아직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상황이다. 그럼에도 느낄 수 있는 이런 공포가 광우병 논란을 뒤로하고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이후에 한국 사회에 던질 혼란과 공포에 비교나 될 수 있을까?
“조류독감과 광우병 중 누가 더 센가?” 마치 우리가 “로버트 태권브이와 마징가 중 누가 더 세냐?”고 묻는 질문처럼 보이는가? 우리의 건강과 우리 다음 세대의 생명이 걸린 문제일지도 모르는 절박한 질문이다. 이를 소홀히 여기는 관료집단의 말 바꾸기와 직무유기에 분노를 넘어 무언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어느 날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고기집에 들른다. 한산하기 이를 때 없는 유명한 한 고기집에서 소고기 등심을 맛있게 구워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이 집 단골손님 아들 중에 대학생 하나가 어느날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대, 그런데 며칠 후 말 한마디도 못하다 죽어 버렸데나봐! 그래서 혹시 광우병 아닌지 의심이 들어서 손님들이 이렇게 뚝 끊긴 거래. 솔직히 이 식당은 미국산 쇠고기를 쓰거든.”
한산해서 좋았던 식당은 공포와 후회 그리고 걱정 가득한 좌불안석의 회식자리로 돌변할 것이다. 더 운이 안 좋으면 바로 그 대학생의 뒤를 따를지도 모른다.
조류독감 대 광우병 누가 더 센가? 이게 농담일까?
조류독감 대 광우병 누가 더 센가? 이게 ‘과학적 근거’가 없는 걱정일 뿐일까?
조류독감 대 광우병 누가 더 센가? 대통령을 비롯해 담당 관료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미국산 쇠고기를 농담처럼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과학적 근거로 국민을 설득하면서 이 질문에 답해 보시길.
그런 다음에야 질문에 대한 정답이 진짜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조류독감 대 광우병 누가 더 센가? 진실이 드러나면 답은 사실 뻔하지 않은가? 어디 감히 조류독감 따위가…
오늘 내가 본 한산한 공포는 현실이었다. 경고였다.
그리고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질문!
‘조류독감’과 ‘광우병’ 중 누가 더 센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본인의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krakor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5.03 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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