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으로서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문득문득 우화 ‘벌거벗은 임금님’ 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어릴 적 접하는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집단 무의식 같은 ‘숨은 의미찾기’ 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상 임금님은 벌거벗었는데도 모두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을 했다며 칭송합니다.
근엄하신 임금님이 경망스럽게도 팬티 바람으로 길거리 패션 쇼를 벌이고 있건만 그 민망한 상황에서도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경을 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두눈 질끈 감고 ‘지금 임금이 그냥 옷을 입었다고 치자’며 자신과 타협을 해버리는 쪽과, 남들이 모두들 입었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면서 자기 자신조차 속이게 되는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그 전제가 어지간히도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악한 자는 임금의 천의 무봉을 볼 수 없나니’라고 못 박았으니 말입니다. 임금이 벗었다고 했다가는 자기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하는 꼴이니 이쯤되면 자기 기만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 천둥벌거숭이 꼬마가 진실을 폭로하자 그 때서야 비로소 다른 구경꾼들도 자기의 눈을 긍정하고 마음에 비쳐지는 대로 받아들이며 임금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 우화는 끝을 맺습니다.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꿈 속에 그 분이 친히 나타나 갈 길을 보여주셨다는 등의 경이로운 체험을 들려주는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언감생심 그 수준까지는 아니라해도 성령의 임재를 일상 속에서 늘 경험하며 그 분이 나와 항상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다는 교우들을 만나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만 기가 죽기도 하지요.
왜냐햐면 우리 대부분은 생활이나 내면에서 신앙으로 인하여 급격히 소용돌이치는 변화를 맞이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은 여전히 위태롭고 앞 날은 불안하며 이따금 과거에 발목 잡히기 또한 일쑤입니다. 인간 실존의 형태가 원체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그럼에도 기도와 예배로 안위와 위로를 얻으며
주어진 생을 묵묵히 짊어지고 가는 것만도 기특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닥쳐오는 인생의 고비와 지루한 일상을 묵묵히 지나오면서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 분이 주시는 평안에 쉼을 얻을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이 누리는 신앙으로서 이만하면 되지 않나 싶어집니다만, 이 즈음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슬쩍 끼어들면 불편해 지기 시작합니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자기 경험이니 성령을 체험한다며 강대상에서 뒤로 나자빠지거나 세상 모든 언어로 방언을 하는 ‘뜨거움’조차 각자의 신앙 형태로 인정하면 그만 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다보면 그게 그렇게 무심코 넘어가기가 수월치 만은 않습니다. 내 믿음이 저 사람보다 약한가, 저 사람보다 약한 것 까지야 인정하겠는데 남들처럼 하나님의 음성 한 번 직접 들은 적도 없으니 아예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등등의 의문이 들 때가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벌거벗은 임금’을 옷 입었다고 말하게 되는 것처럼 나 자신도 그런 체험을 일상 겪는다는 식으로 ‘신앙 좋은 척’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마음에 맞는 교우들끼리 사석에 앉으면 실은 일상 중에 그처럼 뜨겁고 가까운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일이 거의 없노라고 털어놓게 됩니다. 남 눈치 보느라 감히 ‘임금이 옷을 벗었다’고 말할 수 없는 고백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너무 호들갑스러운 신앙 행태에 사로잡혀서 무덤덤하고 밋밋한 듯한 자기 신앙에 자신감을 갖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남들의 ‘화려한 신앙 경험’에 비한다면 자신의 것은 너무 보잘 것 없는 것 같아 주눅이 드는 것이라 할까요. 하지만 찬송가에도 있듯이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독특한 체험이 없어도 의심치 않고 나아가는 평범한 믿음이야말로 일상 중 위기에 단단한 ‘뒷심’이 되어 줄 참 신앙이 아닐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크리스천 리뷰에도 실렸습니다.
2008.05.07 1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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