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즐거움! 인도 여행기

사막에 눈 내리던 날

검토 완료

김현구(regneus)등록 2008.05.06 14:41
해마다 겨울이 되면 코끝을 시리는 바람을 타고 그곳, 인도의 냄새가 밀려오곤 한다. 추억이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어 서울 한 복판에서도 사람을 착각에 빠지게 만드나 보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18시간을 달리면 사막의 땅 자이살메  르 가 나타난다. 많은 여행자들이 사막을 보기 위해 찾는 곳이며, 사막의 뜨거운 아름다움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자이살메르 에서는 어느 정도의 돈을 지불하면 1박2일간의 낙타 사파리를 체험 할 수가 있다. 경제의 논리가 사막의 끝까지 닿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여행자들과 이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여행상품이다.

나도 어렵게 찾아간 자이살메르 이기에 사막여행의 꽃이라는 낙타 사파리를 하지 않고선 돌아 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곧 실천으로 옮기라 하지 않았던가! 기차역에서부터 호객꾼들에게 이끌려간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에게
“낙타사파리가 하고 싶다.”  “가능하겠느냐?”  라고 묻자 사장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 노 프라블럼”  “ 노 프라블럼” 을 외쳐 됐다.

간단한 대화가 오고 간 후 우리 돈 이만 원 가량을 지불하고서 다음날 아침 1박 2일 간의 낙타사파리를 떠나기로 했다. 어찌 보면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절차를 거쳐 사파리가 시작된 것 같아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것이 인도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이내 웃음이 나왔다.   아침이 되자 사막의 햇살이 작은 창을 통해 방으로 스며들어 왔다. 평소 게으름으로 무장하고 사는 귀차니스트인 나였지만 사막의 빛과 곧 떠나게 될 사파리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배낭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자 흰색 지프차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이건 영화에서나 보던 뚜껑 없는 지프차가 아닌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지프에 올라타고는 언제나 그랬던 일상인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운전기사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곤 기사가 데리고 가는 곳으로 몸을 실었다.
(그 순간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삼십 여분을 가자 한 무리의 사람들과 낙타 몇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나와함께 낙타 사파리를 하게 될 한국인 네 명과 사파리를 안내해줄 낙타몰이꾼 세 명이었다. 한국인들은 모두 여자들로 두 명은 회사원 이었고 두 명은 여대생 이었다. 인도에 와서 알게 된 거지만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고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관광차 인도를 찾는 한국인들을 보면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을 하는 거 같아 안쓰럽게 느껴지곤 했다.

낙타 몰이꾼들은 두 명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아저씨였고 열세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한 명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해야할 나이에 아이는 가정을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돼 는 처지였다. 그렇게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고, 또 대견스럽기도 한 아이를 바라보며 여행은 시작 되었다.

낙타를 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곤욕이었다. 엉덩이가 어찌나 아픈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봐도 좀체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세 네 시간을 가고 나서야 점심을 먹기 위해 한 시간을 쉬어 갈 수 있었다. 사막이라고는 하지만 사하라의 사막과 같은 모래사막이 아니라 마른 땅에 듬성듬성 풀과 나무가 자라 있는 그런 사막인지라 조금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낙타 몰이꾼들은 자루 같은 것에서 이것저것 식기들을 꺼내더니 모래로 씻기 시작했다. “설마 저게 설거지!” 라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밥 차릴 준비를 한다는 낙타몰이꾼의 대답이 되돌아 왔다. 낙타가 힘들어 하기 때문에 많은 물을 실을 수 없어서 물은 식수와 음식을 만들 것 밖에는 가져오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 까칠한 성격이었던 나는 못마땅해 하며 있었는데 다른 일행들이 재미있다며 웃고 넘어가는 바람에 나도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낙타몰이꾼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에 어린 녀석이 내 앞으로 와서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근데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다.  이유인 즉 “ 키스해 주세요! 앞 니발이 쏙빠지도록~~”  “키스해 주세요! 갈비벼가 아스러 지도록” 제법 그럴싸한 발음으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난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아이에게 어떻게 이 노래를 아냐고 묻자. 아이는 그동안 많은 한국인들이 다녀가면서 가르쳐준 노래라고 했다. 아니! 가르쳐주려면 동요를 가르쳐 주던가 할 것이지! 이런 노래를 가르쳐준 그 한국인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이에게 노래 선물을 받고 무엇인가 해줄 것이 없을까 고민 하다가 한국에서 가지고온 인공 눈 스프레이를 배낭에서 꺼내들었다. 여행기간 중에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어서 사가지고 온 건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의 머리위에 스프레이를 뿌려주자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막의 한 가운데서 눈이라니! 뭔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반응은 예상회로 좋았다. 다른 여행자들은 우와! 를 연발하며 좋아서 날 뛰었고, 아이는 난생처음 보는 눈에 감동어린 눈빛으로 눈을 맞았다.  그리고 아이는 내게 말했다.

“눈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나는 나의 마을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이곳엔 눈이 오지 않는다.”  “ 고맙다”  뜻하지 않게 아이에게 큰 선물을 준 것 같아 가슴이 울컥 거렸다. 그리곤 아이가 또 보지 못했을 바다를 생각하며 아이에게 눈 스프레이를 선물로 주었다. 눈은 금새 그치겠지만 그 순간은 어쩌면 아이에게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이름은 ‘아부’ 였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