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었다. 쇠고기 수입 이전에는 총선거와 더불어 한반도 대운하 개발이 가장 시끄러운 문제였는데 언제 이런 이야기가 있었냐는 듯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문제가 되는지 중요한 몇 가지만 따져보기로 하자.
우리나라가 여태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태어난 지 30개월 미만인 쇠고기를 수입하며 혹시 수입하는 쇠고기에서 광우병이 주로 발병하는 뼈 부위가 검출되면 수입을 즉시 중단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특히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광우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입을 하지 말자는 게 기존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새롭게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안전하며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의 수입을 위해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이 의심스러우면 먹지 않으면 되지 않겠냐는 말과 함께.
이 발표는 기존 국민들이 알던 광우병에 대한 상식과 너무나 차이가 나기에 국민들은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한 사람이 벼락에 맞을 정도로 희박한 확률이라는 표현까지 하면서 별 일도 아닌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발표도 해댔다.
그 이후에 벌어진 나라 안의 여러 가지 사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주변 상황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2. 대통령 책임회피와 오판의 기준
쇠고기 수입에 앞장 선 현 대통령(앞에 이름을 적고 싶은데 그 뒤에 붙여야 할 존칭을 쓰기 싫어 그냥 이렇게 적기로 하겠다)의 선거 공약부터 당선 이후의 행동을 요약하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전문가로서의 국민들을 더 잘 살게 하기 위한 현 대통령의 정책이며 이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관공서의 규제개혁을 내세웠다. 그 가시적인 실천의 모습은 대불공단의 전봇대와 고속도로 요금소 운영의 문제점 지적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 점은 그 과정에서 허둥대던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아울러 국가수익의 증대를 위해 외국과의 교역을 늘리는데도 주력한다. 한미 FTA의 조속한 체결이 그 대안의 하나이며, 미국 방문길에 보다 수월한 한미 FTA의 체결을 위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수입도 하고 그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겠다는 너무나 획기적인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현 대통령이 말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규칙과 원칙마저 없애버린 규제개혁 철폐라는 점에서 잘못된 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 이유는 국민의 자유, 평등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보호해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라는 식의 표현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현 대통령이 현대건설에 재직할 때의 이야기를 게재한 내용이 있었다. 그는 이인자로써 왕회장의 잘못된 판단이 나오더라도 그 자리에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독대를 해서 왕회장의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내도록 조언했는데 자신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난 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비추어볼 때 여전히 그는 이인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이인자가 아니라 최고의 권력을 가진 일인자인데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일인자로 인정하고 정작 본인은 이인자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3.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의 차이
또 하나 현 대통령이 과거에 행해오면서 머리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의식의 하나가 상대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경쟁논리가 아닌가 싶다. 경쟁에서 이겨야 이윤이 더 많이 남고 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또 다른 경쟁에서 앞선다는 시절의 경영이 몸에 배인 듯하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제로-섬(Zero-sum)게임의 원칙에 아주 충실한 사람인 것이다.
현 대통령은 국가의 경영에도 이런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 같다. 경쟁의 대상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으로 바꾼 채 말이다. 국민들은 무지몽매한 존재라 그들의 반대와 반발은 내가 확실히 눌러야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발상인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경영과 국민의 다스림은 제로섬이 아니라 서로 발전하는 윈-윈(Win-Win)으로 바라봐줘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이 현 대통령의 또 하나의 잘못된 시각이지 않을까 싶다.
4. 확률의 오류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말하는 홀인원과 벼락이라는 확률의 논리를 반박하고 싶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는 복잡계(complex system)라는 학문의 한 지류가 있다. 복잡계의 내용은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구구절절하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여기서 모토처럼 내세우는 말 중의 하나가 “시베리아 나비의 날개 짓이 뉴욕의 폭풍우가 된다.”는 것이다. 나비의 날개 짓이라는 무시해도 좋을만한 사소한 일이 폭풍우로 변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는 것이 우리들 세상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0.000000000000000001이라는 숫자를 계산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현실적으로 너무나 작은 숫자라 무시해도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숫자를 수억 번 곱하기나 나누기 등의 연산을 시켜보면 그 답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답과 너무나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홀인원하고 벼락 맞을 확률이 낮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홀인원하고 벼락 맞은 사람이 지구상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우병 걸린 소를 먹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값싸고 좋은 쇠고기라고 5천만 인구가 3일에 한 번씩 광우병 쇠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해보면 광우병으로 죽을 국민이 많이 발생할 것은 분명해진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가지고 누가 확률로 장난치는 발상을 할 수 있는가? 광우병으로 죽을 확률이 0이 될 방법이 충분히 있는데 왜 이명박 정부는 그 확률을 1이나 10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확률이 낮다고 무시하는 정부 관리들과 본 협상의 책임자들 태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이다.
5. 수입상인들의 이윤추구 문제
나는 수 년 전에는 수산물의 수입과 관련한 일을 한 적이 있다. 중국산 조기, 꽃게, 낙지, 갈치나 칠레산 홍어, 아르헨티나산 오징어, 노르웨이산 고등어, 파키스탄산 꽃게, 베트남산 쥐치 등 온갖 종류의 수산물 수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었다. 수입업자들 특히 중국산 수산물 수업업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수산물 가격이 올라가게 된 이유는 일부 우리나라 수입업자들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수산물 매입 가격을 올려서 문제를 일으키고, 질이 나쁜 수산물을 방부제 처리나 염료를 사용해 비싸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등 결코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부의 수입업자들 때문에 나중에는 전 수산업계에서 지출하는 비용은 많아지게 되고, 또한 중국 현지인들도 아예 염료나 방부제를 사용하여 먼저 판매하는 나쁜 구조마저도 만들었다는 것이다. 간혹 불법 수입된 수산물 문제가 뉴스로 불거지는 이유도 이런데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예를 든 이유는 상인들의 최대목적이라고 하면 수익의 추구이며 결코 우리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 대통령과 정부 요인 그리고 일부 순진한 정치인들은 누가 30개월 지난 쇠고기를 수입하겠느냐고 말하는데 돈이 된다면이야 수입할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회에서 자발적으로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보다 비싼 가격으로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려고 노력한다고 치자. 그런데 일부 수입업자가 훨씬 싼 가격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여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보다 조금만 더 싸게 판매하면 그걸 사용하려는 것이 경제논리에 보다 충실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 적발해본들 법으로 제재할 수가 없는데 누가 이런 황금어장을 마다할 것인가? 불법으로 아니면 밀수를 해서라도 이윤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이 사회에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입이 합법이라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도덕과 양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국 지금 언론 상에서 떠들고 있는 상인들의 자발적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요구한다는 얘기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 너무나 뻔한 얘기인 것이다.
6. 정부의 현명한 선택을 바라며
엊그제 밥을 먹으면서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을 하게 되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데 어르신들의 칠순 잔치상에 30개월 이상된 수입쇠고기를 올리면 될 것이라고. 광우병에 걸리더라도 10년 정도는 더 살아있으니 80 전후에 돌아가시면 후회는 없지 않겠냐는 신판 고려장을 얘기한 것이다.
만약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그런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면이야 누구를 원망하겠냐마는 나의 목숨을 지켜달라고 권력을 맡긴 사람에 의해서 내가 죽게 된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 될 것인가? 그런 사정으로 인해 30개월 이상 지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외치는 국민들에게 불순 배후세력, 불법 집회 운운하는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냉정하게 잘 대처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2008.05.17 1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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