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새터민 이윤주(22.가명)씨. 2002년도에 한국에 와서 국적이 생기고,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던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다고 한다. 이 사회서 새롭게 태어났다고, 이제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문득 문득 다름을 실감한다고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해외 봉사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이양은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있기에 지원 자격에서 제외 되었다. 이유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이다.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익숙한 이양은 대학생 신분으로 당당히 중국에 가고 싶었지만 중국 측에서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보고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는 과연 어떻기에 외국 대사관에서 다 알아볼까.
새터민들은 한국에 오면 한 달 정도의 조사기간을 거쳐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하나원에서 두 달 동안 교육과정을 마쳐야 사회에 나올 수 있다. 이 때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을 졸업하는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한 관계로 뒷자리 번호 3개의 숫자가 남자는 125****, 여자는 225****로 똑같다. 현재 이 번호를 가지고 있는 새터민은 9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의 이양과 같은 사례 외에도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2003년 4월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된 김철훈·신성심 부부, 2004년 8월 압록강 부근에서 남편이 보는 앞에서 보위부에 납치된 진경숙씨 등 10여 건의 납치·실종 사건은 이런 경로를 통해 강제 북송된 것으로 탈북자 단체는 보고 있다.
작년에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중국에 두고 온 딸을 만나러 가지 못해 고민하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탈북 여성의 사례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씨가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중국 하이난으로 가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 혼자 못 가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 사례들을 일일이 세자면 수도 없이 많다. 가장 많은 피해 사례로는 중국 비자발급, 해외여행 결격사유에 의한 취업의 불이익, 개인신상정보 노출에 의한 불안이다. 현재 주민등록번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새터민은 9천여 명이며 특히 개인 신상정보 노출에 대한 불안은 새터민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자 정부는 지난 해 7월 하나원을 수료한 탈북자에 대해 정착한 지역에서 주민번호를 받도록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그 전에 온 9천여 명의 새터민들은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에 노출 되어 있으며, 정부의 대책이 없는 한 이들의 불안은 자유를 찾아 온 대한민국에서도 계속 될 것이다.
한 새터민은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를 통해 주민등록 번호 때문에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늘 가슴을 조여 일상생활이 편치 못한 것부터가 심각한 피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을 제 2의 고향으로 받아들인 새터민들이 한국 사람으로도 살지 못하는 것 같다며 정체성을 상실해서 자신이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에 대한 갈등까지 생긴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해 7월 이전까지 하나원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취득한 9천여 명에 대해선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번호를 갱신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탈북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바꿔 주면 중국 측에서 전 한국민에게 비자 발급 시 호적등본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9천여 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이대로 두고 문제를 바라보기만 하겠다는 건 해결할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정부의 무책임함과 무관심 속에서 새터민들의 사회적 불안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새터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우리 정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피해사례들에 수수방관한 태도는 많은 새터민들의 남한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9천여 명의 새터민들의 주민등록번호번호에 관한 문제는 단순히 신변문제가 아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심각한 사안이지 여기 저기 떠넘길 사안이 아니다. 더욱 깊어지는 새터민들의 불안과 피해를 정부 당국이 직접 나서서 막아야 한다. 새터민들의 주민등록번호 고정코드를 삭제하기 위한 정부 부처 간 통일적인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할 것이다.
2008.06.02 1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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