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창 너머로 바라본 이명박 정부의 백일(百日)

'알묘조장(?苗助長)’, 그 폐해에 대하여

검토 완료

김준회(kjunhoy)등록 2008.06.05 09:21

[맹자(孟子)-공손추(公孫丑) 상(上)편]에 보면,

 

맹자께서, ‘무릇 군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름에 경계해야 할 것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게으름보다 더욱 그 폐해가 큰 것을 지적하신 바가 있으니 바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다.

 

<맹자>께서 빗대어 말씀하시길,

 

송(宋)나라의 한 농부가 벼를 심어놓고 며칠이 지나도록 싹이 잘 자라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다. 하루는 새벽같이 들로 나아가, 그 벼 싹 하나하나를 조금씩 뽑아 올려주고는 집으로 돌아와 말하길 ‘아, 피곤하다. 내가 벼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고 왔다. 이제야 벼 싹이 좀 자랄 것 같다'고 하자, 아들이 급히 달려나가 보니 벼 싹들이 모조리 말라죽어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직전에 일어난 숭례문(崇禮門) 화재사건 현장의 한 컷을 먼저 떠 올려본다. 사건은 본디 지각없는 한 노인이 일으킨 우연한 재앙이었지만, 그 사건의 전개 속에는 백일이 갓 지난 이명박 정부가 처한 지금의 형국을 엿보게 하는 실마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재(人災)의 현장에 급히 모습을 드러냈던 이명박 당선인. 그리고 얼마 후 그가 인수위 회의에서 남긴 말.

 

“국민의 성금으로 숭례문(崇禮門)을 다시 세우는 것이 어떠냐?”

 

부자대통령의 이 성급한 한마디에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하고, 당시 우리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자발적으로 조금씩 일어나려던 성금모금운동의 불씨는 오히려 물벼락을 맞게 되었음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수없는 고난과 재앙의 역사를 함께 도우며 살아온 우리국민들이다. 당시 우리 민초들이 느꼈던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함을 곱씹어 삭힐 마음에 여유를 조금만 더 주고 기다렸더라면, 자연스럽게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장롱 속 깊이 감추어둔 금덩이조차 기꺼이 내놓는 인정을 드러낼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느닷없이 불거진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성금’이야기는, 당시 일고 있던 ‘강.부.자. 고.소.영.으로 지칭되는 인수위 인사들'에 대한 무언의 반감에 잇닿아 폭발하면서, 민초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나라사랑의 싹을 모조리 고사(枯死)시키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인한 촛불 시위가 한창이다. 이 또한 돌이켜 보면 ‘알묘조장(揠苗助長)’의 산물이다.

 

본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는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인 과학에만 주목하여 ‘발병의 과학적 필연성(必然性, certainty)을 증명해 낼 수 없으므로 광우병 위험은 없다’는 (주로 관료집단들이 주도하는) 주장과, '생명의 통시성(通時性, diachrony)[주1]에 주목하여 발병의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이 충분하다'는 주장이 끝없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헌데, 취임의 여운이나 국정의 전열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으로 달려간 이명박 대통령께서 나름으로 통이 큰 외교를 실천한 것이 바로, 미국인들조차 먹지 않는 30개월 이상의 월령을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조처였다.

 

결국, 성급한 실리 외교적 행보가 오히려 80%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결과를 나았고, 오히려 더 강해진 반 FTA의 물결은 궁극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던 FTA의 체결을 가로막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이 되어 버린 것이다.

 

본디 <먹고사는 문제해결(‘경제를 살리겠다!’)>을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정부는,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백 일만에, 또 다른 <먹고사는 문제(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다.

 

지금 이명박 정부 정책의 곳곳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에둘러 성급히 추진되어 논란을 일으킬 사안들이 여러 곳 눈에 띈다. 물론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하고 앞선 정책, 좋은 정책이 반드시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할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다만, 국민들의 다양한 견해, 소수의 반대의견에도 더 좋은 해결책을 모색해보려는 진솔한 토론과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귀기울이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하물며 과반이 훨씬 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랴!

 

이에 맹자께서 가르쳐말씀하시길

 

천하에 벼 싹을 억지로 뽑아 올려 자라기를 조장(助長)하는 자가 적지 않다. 유익함이 없다하여 김도 매지 않고 게으름피우는 자들의 폐해 못지않게, 이처럼 억지 조장(助長)을 일삼는 자들의 폐해가 더욱 심하니, 이는 비단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일의 성사를 해치는 자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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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GMO(유전자 조작식품)와 같이 유전자 수준에서 진행되는 변이들에 대한 위험성 규명은, 폐쇄된 실험실조건하에서 짧은 시간동안의 검증으로 시도되는 기존 서양과학적 패러다임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필자는 이를 ‘공시적 과학’이라고 칭한다. 이에 반하여, 생명현상이나 기상 현상은 기본적으로 카오스적 본성을 가진 것이다. 특히 생명현상은 기상현상과 같은 되먹임구조(피드팩)를 가지면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작은 량의 변화가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발현되는 성격이 있다. 원숭이에게 유전자수준의 생물학적 변이가 오랜 동안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새로운 종인 인간이 탄생하게 되는 경우처럼 발전적인 현상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겉으로는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광우병소의 단백질에 포함된 프리온 유전자가 흡수 축적되어 인간광우병(변형 CJD)이 발현되는 파괴적인 현상도 존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인터팬>에 동시기고된 글입니다.

2008.06.05 09:27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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