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re' 아닌 'here'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아임 낫 데어 아임 낫 데어 ⓒ 김민아
“평생 권위를 까부순 죄로 내 자신이 권위가 되었다”고 아이슈타인은 회고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단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를 시대의 반항아로 규정하고 온갖 언설로 그를 조각(작)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한다. 그는 유서에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기보다 한순간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직도 의문투성이인 그의 죽음을 두고 세인들은 낭만적 이미지를 덧씌워 ‘스스로 선택한 죽음’으로 굳게 믿는다. 그게 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덤 속에서 외칠 것 같다. “나를 제발 내버려 둬. 그리고 이제 나를 잊어 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어느 자리,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그는 내가 모르는 낯선 사람일 때가 있다. 저런 모습은 왜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 거지? 적이 서운함이 일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저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지 않고, 그것 때문에 그가 힘들지도 않다. 저 모습도 그다.
(누구에게)한 없이 응석을 부리는 내가 있는가 하면, 한 없이 엄하게 군림하는 내가 있다. 아무것도 못 하겠으니 네가 다 해줘 아이가 돼버리는 내가 있는가 하면, 이것도 못하니? 가벼운 타박을 해가며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는 내가 있기도 하다. 자존심을 털끝만큼이라도 훼손당하면 못 견디는 내가 있는가 하면, 네 앞에서라면 내가 바보가 된대도 상관없다는 내가 있기도 하다. 이게 모두 누구인가? 모두 나다.
이런 부조리한 나를 견딜 수 없을 때가 하루에도 열두 번. 변덕이 죽을 끓이고, 끓여진 죽이 아예 다 졸아서 바닥에 까맣게 달라붙고 나면 융합되지 못한 수많은 ‘내’가 제 성질에 못 이겨 끝내는 저렇게 죽어버렸는가 싶어 또 지겨운 자기 연민에 빠져든다.
흩어져 있는 나를 잘 통합(봉합)해서,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일테면 정신분석의 핵심이랄 수 있는데, 이 말은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 적절하게 기능하는 것이 ‘정상인’이라는 얘기다. 무대에서 노래만 부르면 되는데 바지를 훌러덩 내려버린다든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있는 듯 다정하게 속삭이는 건 모두 ‘이상행동’이라고 본다.
하지만, 수없이 충동을 느낀다. 저 녀석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다. 면상에 대고 질펀하게 욕을 퍼붓고 싶다. 저 수돗물처럼 새는 입술에 테이핑을 하고 싶다. 이런 지겨운 회의는 이제 그만 집어치워 라고 부장에게 소리치고 싶다. 때로는 (네가 보고싶어)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했다고 '말하고'싶다.
평범한 우리들 삶도 이러 할진데, 대중 앞에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밥 딜런, 아니 그 수많은 밥 딜런들은 어떠했을까? 그러니 “아임 낫 데어”는 제목대로 나는 ‘거기’ 있지 않다. 네가 나를 묶어두고 싶은 ‘거기(there)’에 나는 없다. 그러면서 나는 있다. 내가 그 순간, 꼭 있고 싶었던 ‘여기(here)’에. 그러니, 나를 잘 모르면서 네가 아는 나로 규정하려들지 말고, 나를 열어둬. 그리고 나를 탐험해봐. 재미없어지면 그때 제 자리에만 가져다 놔. 난 내 물건 누가 만지는 거 딱 질색이거든. 어쩌면 밥 딜런은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머, 미안요. 또 실수를. 이것 역시 전적으로 밥 딜런씨 당신 생각이 아니고, 제 생각인데 말이죠.
사족.
시디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 ‘가오’를 세워주는 앨범들이 있다. 소위 소장 가치가 있는. 밥 딜런의 앨범들도 그렇다. 홍보용으로 들어오는 ‘not for sale' 앨범들을 받는 족족 내게 주며, 근데 “이거 괜찮아?” 라고 친구가 물었다. 그땐 주저 없이 “멋져, 최고야” 치켜세웠는데 영화를 보고난 지금... 글쎄 뭐라 평하기 어려워졌다. 왜냐고? 그건 영화가 팁을 주지 않을까 싶은데. 앗, 저 영화사 알바 절대 아닙니다.
2008.06.24 1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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