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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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영(kkamjigy)등록 2008.07.11 10:31

루이비통 아세요?

 

‘루이비통 아세요?’라는 질문에 ‘그게 뭔데요’라며 반문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며칠 전 ‘섹스 앤 더 시티’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놈놈놈’이 미개봉인 탓에 선택된 영화랍니다. 단단한 우정으로 묶인 4명의 중년 여성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미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케이블 TV가 나오지 않는 관계로 나는 그 인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자못 궁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영시간은 2시간 반이나 되었는데, 벌서 끝났나 하면서 나오게 되더군요. 무엇보다도 'VOGUE'지에서 금방 뛰쳐나온 듯한 주인공들의 화려한 스타일이 눈길을 확 잡아끌었습니다. 그들이 겪는 사랑과 일과 육아와 욕망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물질이 흘러넘칠 것만 같은 그곳 ‘뉴욕’에서도 명품은 선망의 대상이더군요. 주인공 캐리의 비서는 자신이 ‘뉴요커’임을 의심이라도 받을까 두려운 듯 갖가지 명품을 렌트합니다. 유능하고 성실한 그녀는 어느 날 캐리에게서 ‘루이비통’을 선물 받게 됩니다. 그것을 끌어안은 그녀의 표정은 결코 잡히지 않을 듯 하던 무지개를 품안에 넣은 얼굴이라고 해야 할런지요. 그렇군요. 루이비통은 그런 의미로군요. 전력투구한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것 말입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 ‘루이비통’이 있습니다.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시부모님께서 어머님의 칠순 기념으로 하와이로 여행을 가시게 되었는데, 먼저 면세점에 들러 제게 선물로 사 주신 것입니다. 극구 사양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제게 그 물건을 안겨주셨습니다. 40이 다 된 며느리에게 상이라도 내리시듯 그렇게 마련해 주셨습니다. 정작 저는 덤덤했던 것 같습니다만.

 

저의 어머님은 칠순을 넘긴 지 몇 년 되셨습니다. 박봉이셨던 아버님의 월급으로 시부모님 모시랴, 남매 키우랴, 소박한 살림을 꾸려오셨습니다. 그래도 어머님은 '루이비통‘을 좋아하십니다. 빈틈없고 검소하신 아버님께서도 어머님의 ’특별한 선호‘를 받아들이셨나 봅니다.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며 덩달아 좋아하게 되셨다는 어머님은 “내가 좀 별나지? 사치하는 거지 뭐겠니. 그래도 다른 거는 10개를 가져다 준데도 싫으니 말이야”라고 애정을 표현하십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고 온 탓인지 도서관 자료실에서 ‘VOGUE'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조금 보다 보니 바로 그 ’루이비통‘에 대한 기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건 그냥 ’루이비통‘이 아니라 ’모노그램 스피디‘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분만 기다리면 어디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3분 백‘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는 군요. 그런데 파리, 뉴욕에서 보다 서울에서 더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것을 손에 넣는다는 말일까요. 시어머님도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미국 여행갔을 때, 미국 사람들은 그런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더라니까. 그러니 나를 희안하게 쳐다보지. 그런데 우리나라 백화점에 한 번 가 봐. 나랑 똑 같은 할머니들이 너무 많아. 루이비통 보스톤 백에 밍크코트에 모자까지 말이야”. 잠시 우리나라의 GDP수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힘겹게 또는 고심 끝에 얻어야 마땅한 그 물건에 대한 열풍은 서울에서 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전에서 문을 연 ’루이비통‘ 매장은 서산, 당진에서 버스타고 와서 상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는 겁니다. 자식들이 보내 준 돈, 농사지어 마련한 돈으로 마땅히 살 게 없어 남들 들고 다니는 ’그 놈‘으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로군요. 뉴욕의 중심가에서 젊은 여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활보하는지를 알아내는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것입니다. 소비행위야 말로 선망하는 사람들의 삶을 가장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해야 할지요.

저도 그 ‘스피디’를 곧 잘 들고 다닙니다. 크기나 무게면에서 만만하기 때문이죠.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것이라는 걸 ‘공식적인’ 글로 확인했으니 어깨가 으쓱해야 하는 걸까요? 엄마는 얼마 전 친지의 결혼식에 저의 그것을 빌려가셨습니다. “엄마 그거 왜 빌려 갔었어?”, “마땅한 게 없으니까 그렇지”,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 그랬어?”, “시골사람들이 그거 알기나 하냐? 뭐, 명품 싫어하는 사람 있을라고...왜 너는 싫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글쎄요, 싫고 좋고를 떠나 그저 무심한 것이겠지요. 

내가 가진 ‘명품’은 뭐가 있을까요? 끈 떨어진 버버리 백, 루이비통, 폴로 셔츠 하나. 하나 같이 내가 구매한 것은 없군요. 그렇지만 꼭 명품이 아니어도 나는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아니 믿습니다. 그것이 천원짜리 초저가의 브랜드이건 고가의 브랜드이건 ‘브랜드’를 내 걸었다는 건 그 만큼의 가치를 다 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지니 말입니다. 쇼핑을 할 때 ‘브랜드’는 구매 결정에 도움을 줍니다. 이른바 ‘땡처리’하기 위해 가판에 나와 있는 경우에도 말입니다. ‘떨이 상품’에도 ‘브랜드’값을 하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라면을 먹어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야 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12개월 할부를 해서라도 명품백을 손에 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기호’이고 ‘선택’이니까요. 그와 같은 소비행위가 팍팍한 삶에 작은 위안이고 기쁨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단순히 과시하기 위한,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소비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소비의 크기와 충만한 삶이 반드시 비례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다음 주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루이비통’을 들고 갈 지 모르겠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닌다는 그 가방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별명으로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8.07.11 10:34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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