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헌 민변 회장 ⓒ 참여사회
글 이제훈<한겨레> 통일팀장 nomad@hani.co.kr
사진 김영광사진가 k-photo@hanmail.net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광 받는 개념들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참여’ ‘균형’ 등이 그랬고, 이명박 정부 들어선 ‘실용’이 대표적이다. 그 와중에 사전적 의미를 잃고 시민들의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말들도 있다. 아무런 죄 없는 말들이 때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것이다. 인수위 시절엔 오렌지(이경숙 위원장은 ‘어륀지’라고 하지 않으면 원어민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가 그런 처지였고, 요즘은 ‘법치’가 그렇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규정(대한민국 헌법 1조2항)에 따라, 그 헌법 정신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냐’거나 ‘불법시위 엄단’이라는 황당한 반응에 직면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 일부 신문들은 ‘법치가 무너졌다. 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헌법 제정 60돌에 ‘법치’를 다시 생각하다
법치라….
때는 바야흐로 헌법 제정 60돌(2008년 7월 17일), ‘남북 정부’ 수립 60돌(2008년 8월 15일)이다. 뉴라이트 등은 이참에 ‘광복절’을 ‘건국기념일’로 바꾸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상해 임시정부는 어디로 사라져야 하는 것인지, 헌법 전문에 규정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하여, 이참에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해보기로 했다. 한 수 배우더라도 기왕이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 시민들의 고민과 삶에 관심이 많은 이한테 얘기를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창립 20돌(1988년 5월 28일 창립)이다.
민변은 석 달을 넘겨 이어지고 있는 촛불의 거리에서 ‘인권침해감시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고시 철회를 위한 헌법소원과 효력정치 가처분 국민소송을 주도하고 있다. ‘제국 삼성’(‘삼성공화국’이라는 작명도 있는데, 굳이 비유적 작명을 하자면 삼성은 ‘공화국’이라기보다 ‘제국’에 가깝지 않을까?)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책 속의 법’보다는 삶 속의 법, 약자의 방편으로서의 법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원순 변호사는 『역사가 그들을 무죄로 하리라』라는 책에서 “민변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하소연할 데를 찾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물이나 공기와도 같았다”고 썼다. 민변이 생각하는 법이란,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법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민변’에 대한 공부 선생으로 백승헌 민변 회장을 모셨다.
민주주의와 모순되지 않는 법치여야
- 이명박 정부 들어 ‘법치’에 대한 강조가 부쩍 눈에 띕니다. 법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치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짧은 답변이 힘든, 매우 크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적어도 현실 속에서 형식적인 법치의 일방적인 강조는 늘 민주주의의 기본에 대한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지요. 민주공화제와 국민주권원리를 관철하는 의미의 실질적 법치를 이야기할 상황이라고 봅니다. 법률이란 헌법의 구체화여야지, 헌법 정신의 제한으로 기능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법치가 민주주의와 모순되지 않는 체제가 우리가 목표로 하는 사회 아닌가 합니다.
-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를 보면, 중대한 사회적 갈등이 결국은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이 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사법부는 분쟁해결기능과 법의 최종 해석 기능을 부여받았기에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구실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그러한 기능이 강화된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확대, 분쟁이 비공식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공적인 해결방법이 일상화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사법기관은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 사법부는 시민의 참여가 극히 제한돼 있고 그 구성도 폐쇄적입니다.
사회 내부의 이견이 사회자치 영역에서, 정치영역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법적 해결 방안만을 우선시 하게 된다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율영역의 축소, 일반 국민의 직접 참여가 제한된다는 점, 모든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판결의 일반 형식 탓에 정치적 타협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 등이 구체적 위험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법치를 확대하면서도 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사법 외부에서는 자율성과 민주성을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일상화가 이뤄져야 하고 동시에 사법의 민주적 구성과 운영 노력이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촛불집회 참여, 민변 활동에 상당한 영향 끼칠 것
- 촛불집회에서 <헌법 제1조>라는 노래가 많이 불립니다. 촛불집회의 주제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합니다. 법률가로서 시민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 걸 거리에서 들었을 때 감회가 어떤가요? 민변 회원들도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회는?
촛불집회 과정의 국민들의 요구, <헌법 제1조>라는 노래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헌법이 헌법답게 위치를 찾고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말로만 민주정이 아닌 주요한 권력 작용에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라는 것, 선출된 권력도 국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수행하라는 것, 선출된 권력자가 총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개별 정책을 마음대로 하는 무제한한 위임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 법률이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 아니라 헌법 정신에 맞아야 그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는 점 등이 어느새 시민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와 닿고 있다는 점을 느낍니다. 오히려 정치인, 법률가 등이 이러한 시민의 각성을 알아채지도 같이 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민변(회원들)의 촛불집회 참여는 그 범위와 형식 등에서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민변과 우리 사회에 긍정적 체험으로 남으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역사적 현장에 민변(회원들)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는 건 민변의 활동 방향 설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앞으로 오래도록 진지한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18대 국회 출범과 함께 개헌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개헌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찬성 의견도 높은 것으로 나옵니다. 개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헌법은 한 발은 정치에, 한 발은 법에 걸쳐진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헌은 매우 정치적인 판단사항입니다. 개헌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닙니다. 어떤 목적의, 어떤 내용의, 어떤 시기의 개헌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미리 두괄식으로 개헌에 찬성이냐, 반대냐를 정하고 논의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민변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개헌 발의 방침에 대하여 일상적으로 논의한 것 이외에는 방침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개헌 문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된다면, 민변은 개헌 여부에 대한 찬반은 물론 어떤 내용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지난 7월 18일 '촛불집회와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열린 세교포럼(세교연구소 주최) 에 토론자로 참석한 백승헌 민변 회장 ⓒ 참여사회
스무 살 청년 민변의 네 가지 얼굴
민변은 올해로 스무 살이다. 1988년 5월 28일 51명의 변호사들이 모여 만들었다. 초대 대표간사를 맡은 조준희 변호사가 당시 50세, 현 회장인 백승헌 변호사는 25세, 막내였다. 1986년 구로동맹파업 사건 변론을 계기로 발족한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 86년 5월 19일 발족)와 젊은 변호사들 모임인 청년변호사회(청변, 88년 3월 발족)가 결합한 것이다. 지난 20년의 족적은 뚜렷하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권인숙 씨 부천서 성고문 사건,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 송두율 교수 사건, (미국 장갑차에 의한) 효순·미선 사망사건 등 굵직한 인권 사건들의 변론에 민변은 머뭇거림 없이 나섰다.
- 민변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10여 년 전 제가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 동료 변호사들과 민변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민변의 얼굴은 4개라고요. 비영리 시민사회단체(NGO)의 하나이자 법률전문가 단체입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활동하는 경우가 다수로, 변호사 단체이기도 합니다. 또 헌법과 법률체계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데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차원에서 인권단체의 성격도 있다고 정리한 기억이 납니다.
민변은 엔지오의 하나이지만 그 역할 수행은 법률가집단으로서 전문성을 기초로 대부분 변호사 활동을 통해 나타나며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 민변 회원이 발족 때 51명에서 지금은 55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규모의 확대와 인적 구성의 다양화가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제가 변호사를 개업한 1986년 당시 전국변호사의 70%가 몰려 있는 서울의 변호사 숫자가 700명이 채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해요. 민변 회원들의 양적 성장과 다양성은 민변의 동질성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요구가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불가피할 뿐 아니라 긍정적이고 필수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변의 활동은 회원들의 다양한 활동, 전문가로서 활동이 민변의 공동 목표와 정신을 통해 좀 더 큰 동질성으로 모여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백승헌 민변 회장 ⓒ 참여사회
건설적으로 바빠졌으면
- 지난 20년간 민변 활동의 성과와 한계, 지향해야 할 바를 돌아본다면?
민변은 그동안 시민과 직접 소통하기보다 전문가 영역 안에서 스스로 과제를 찾아간 측면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문제를 발굴하고 그 해결에 필요한 의견을 제출하는 데 시민의 참여, 국민과 소통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사법감시를 위해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죠. 촛불집회를 통해 새삼 확인한 교훈입니다.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변의 활동 범위와 방식에 변화가 있습니까?
원칙은 바뀔 게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후퇴의 우려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지요. 사회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과거와 유사한 강압통치와 시민의 저항이 반복된다면 민변의 활동 중심 역시 그에 대응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런 부분을 꺼려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국민과 사회를 위해서도 그렇고 정권을 위해서도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민변이 바빠질 것 같은데, 기왕이면 건설적인 쪽으로 바빴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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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헌은 1963년 12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0년 연세대 법학과에 들어갔고, 83년 사법고시 25회에 합격했다. 판사와 검사를 거치지 않고, 86년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해, 23년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난관에 부닥쳤을 때나 만사가 귀찮아질 때 어떻게 추스르나’라는 질문에 “글쎄요,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네요”라고 답할 정도로, 일에 몰두하며 살아왔다. 민변의 창립회원으로 사무국장·부회장 등을 거쳐 2006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당연히 책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졌고, 귀가 시간도 불규칙해졌다. “많아진 일정 탓에 일상이 잘 정리되지 않고 흐트러지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고, 사놓고 읽지 못한 책 제목이나 주제라도 떠올리려고” 한단다. 중학교 1년생인 아들, 초등학교 6학년인 딸과 “일상을 같이 하며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만, 소홀해 아쉽고 미안하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과 촛불집회에 대해선 “아이들한테 먼저 들었다.” “성년 직후부터 변호사를 하는 바람에 변호사라는 직함과 백승헌이라는 이름이 잘 분리되지 않는 것 같아 변호사 아니 인간 백승헌은 조금 유감”일 것 같고, 현직에서 물러난다면 “변호사 백승헌이 못한 것을 많이 할 수 있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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