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되었다고 고전은 아니고 고전은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고전이랄 수 있는데 고전에 속하는 영화 중에 Giant, 거인이 있다. 1956년 작품인데 광활한 텍사스의 초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랑,시기, 질투, 야욕, 좌절, 갈등, 출세욕 등이 어우러지는 한 편의 서사시적 작품이다.
실존인물 Glenn Mccathy의 일생을 여류소설가 Edna Ferber가 Giant라는 이름의 소설로 발표했는데 George Stevenson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화 개봉 2주전에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 죽어 이 작품은 제임스 딘의 유작이기도 한데 영화 속에 제트 링크(제임스 딘)이 추하게 파멸하는 장면에 여성펜들이 항의 소동을 벌리기도 했다.
대작(大作)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출연진들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이다.
주인공 죠르단 베네딕트(록 허드슨), 영화에서도 그런 미남은 만나보기 힘들 정도로 건장한 체구의 미남배우 록 허드슨이 1985년 에이즈로 죽을 때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을 보고 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안타까워 하고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을 것이다.
잘 생긴 삼류배우가 자이언트에 출연하면서 인정을 받아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제니퍼 죤스와 같이 나왔던 '무기여 잘 있거라,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쥴리 앤드류스 와 공연한 영화 Darling Lili'에서 주연을 맡은 록 허드슨은 에이즈로 죽으며 '내 불행이 다른 사람들의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기여 하기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다.
대농장의 소작인으로 일하며 주인 집 부인을 짝사랑하는 제트 링크(제임스 딘), 영원한 젊은이 답게 역시 반항적이며 냉소적 연기로 방황하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석유재벌이 되지만 못 이루는 사랑에 괴로워 하며 알콜중독으로 파멸되 간다.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쟈이언트, 단 세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세상을 떠난 제임스 딘의 연기도 연기지만 그를 발굴한 당대의 명감독 엘리아 카잔의 눈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둔마도 백락을 만나면 준마가 된다'고 했는데 천부적 연기자 제임스 딘이 명감독을 만났으니 에덴의 동쪽 단 한 편으로 제임스 딘은 유명 배우가 되기 충분했다.
자이언트가 고전으로 회자 되는 것은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겪는 온갖 사회현상과 비리, 인종차별, 자본주의, 계급갈등을 통해 표현 했다는데 있다. 특히 인종차별의 기념비적 영화 '흑과백'보다 2년 앞서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자이언트는 과연 누구일까? 누가 진정한 자이언트 일까?
소작인에서 석유재벌이 된 제트 링크일까?
알콜 중독으로 파멸되 가는 제트 링크는 자이언트가 될 수 없다.
주지사가 참석한 공항 과 호텔 개업식에서 술에 취해 결투 자세를 취하는 제트에게 죠르단은 말한다. '너는 끝났어, 너는 때릴 가치도 없는 놈이다.'
진정한 자이언트는 죠르단 베네딕트다.
59만 에이커의 대농장 주인 죠르단은 농장을 장남에게 물려주려 하지만 장남은 아버지 뜻을 거역하고 의사가 되어 맥시코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백인과-맥시코 혼혈 손자가 생겨난다.
제트링크의 호텔, 공항 개업식에 가족들과 전세 비행기 타고 참가했다 전세 비행기는 장남이 급한 환자 수술이 있어 타고 가고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죠르단 베네딕트는 도중에 Serge라는 식당에 들렀다.
맥시코인 며느리와 혼혈 손자들은 그 식당에서 쫓겨나야 하지만 텍사스 명문가문 베네딕트 가족의 일원이니 주방장은 할 수 없이 주문을 받는다. 그러나 뒤에 들어오는 맥시코인들을 내쫓는 주방장.'여기는 너희들이 들어 올 곳이 아니야.'
그 때 죠르단 베네딕트가 나서 맥시코인들을 위해 주방장과 결투를 벌린다. 애초 이길 가망이 없는 결투다.
주방장은 젊었고 덩치도 주방장이 더 크다. 차별 당하는 소외된 맥시칸을 위해 이길 가능성도 없는 싸움을 벌여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떡이 되게 얻어 터지고 식당 바닥에 처박혀 음식 쓰레기 세례를 받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슬리(엘리쟈베스 테일러)는 말한다.
'당신은 위대해요. 왜냐고 묻지 말아요, 설명하기 곤란하니까.' 그러면서 레슬리는 말을 이어간다.
'당신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며 더러운 접시더미에 부딪치며 그 식당 바닥에 고꾸라졌을 때 당신은 내게 영웅이 되었어요. 당신 늘 내게 영웅이 되길 원했지요?'
'아마 그랬을거야'
'당신이 음식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식당 바닥에 고꾸라졌을 때 나는 혼자 말했어요. 앞으로 100년간의 베네딕트 가문의 진정한 성공이라고.'
아이러니다. 분명 아이러니다. 소를 키우는 텍사스의 대목장 주인과 주방장 과의 결투에서 미국 소고기 수입으로 발단된 촛불시위를 연상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죠르단 베네딕트와 주방장 과의 결투는 촛불시위를 연상케 한다.
촛불시위, 태어나서는 안될 정권의 잘못된 정책으로 야기된 촛불시위지만 그것은 촛불시위의 본질을 파악 못하고 하는 이야기다. 촛불시위에는 우리가 청산하고 지나지 못한 얼룩진 과거가 모두 들어있다.
기득권의 발호와 무한 대의 탐욕, 사회 주류가 된 수구매국 세력, 부도덕 하다 못해 무도덕에 사기꾼 기질 까지 있는 정권, 국리민복은 외면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매달리는 정치 모리배들, 청산하지 못한 친일문제 등 우리가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할 문제들에 대한 대가를 치루지 못한 결과가 촛불을 들 게 만들었다.
소고기 수입에 국한해서 말한다 해도 촛불시위는 시위대가 도저히 이길 가망성이 없었고 말로만 국민과의 소통을 외치는 이명박의 독선을 제어할 가망성도 없었다. 더구나 야비하고 음흉한 이명박 정권의 치사하고 유치한 보복을 각오한 촛불시위였다. 조중동의 전폭적 지원과 청와대,검찰, 경찰등 막강한 공권력이 총동원된 싸움은 촛불시위대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들이 촛불을 들고 나선 것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고 의사표현이 관철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대포를 맞고, 방패에 찍히고 군화발에 짓밟히면서도, 경찰에 끌려가 온갖 수모와 조롱, 비웃음을 견디며, 심지어 여자시위대들이 속옷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들은 촛불을 들었다.
영화의 죠르단 베네딕트가 이길 가망성 없는 싸움을 자청하고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모차 끌고 물대포에 맞서는 30대 여성 시위자, 그녀가 진정 대한민국의 자이언트다.
부모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해 촛불을 밝히는 천진난만한 초등학생들, 그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자이언트다. 군화발에 짓밟히며 진압차량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여성 시위자가 대한민국의 자이언트 아닌가?
2008.09.08 1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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