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사교육 공화국인가?

극심한 소비침체에도 늘어만가는 사교육비.

검토 완료

주광재(sbadco)등록 2008.09.08 17:00

체감경기가 극심하게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부모들의 자식교육에 대한 열의가 참으로 대단하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을 기꺼이 감당하는 부모들을 비난할 수 만은 없는 일이다. 뭔가 우리사회가 잘못되어 있는 데 부모들을 비판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않다.

 

무자식이 상팔자.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있다. 오래된 말이지만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점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자식을 키우는 일이 지난한 일임을 나타내고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져야한다.

 

자식을 낳으면서 어머니는 사회생활을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건강상의 위험, 직장생활의 포기, 미용상의 이유 등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를 키우는 데 엄청난 노력을 쏟아야만한다.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비용을 지불되는 일이다.

 

낳아서 기르는 동안 아이를 건강하게 돌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다치고 병드는 일에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쉽지않다. 또 많은 돈을 써야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우유, 이유식, 병원비 등도 부담스러운 부모가 아직도 적지 않다. 아이를 낳고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탁아비용으로 지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아이가 자라면서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또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생긴다. 공교육에는 그리 부담이 없지만 사교육 열풍에 잠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모의 극심한 고통과 부담을 수반하게 된다. 대학입시를 위해 고교 3년을, 특목고등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3년을, 이제 국제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6년을 사교육에 열을 올린다. 이런 과정마다 앞서가기 위해 심지어 유치원부터 사교육비가 든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무려 수억원이 든다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부모노릇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러니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은 대단히 상황에 맞는 말이 되었다. 결국 출산률이 세계최저 수준에 달하고, 머지않아 그 것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국가의 규모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출산이 심각하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들.

 

많은 사람들은 우리 학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을 탓한다. 사실 확실히 부모들의 교육열이 과도한 것은 맞다. 그러나 부모들은 사회구조에 자녀들을 적응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뿐이다.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도록 자녀를 지원하고 독려하는 것을 그 자체로 나무랄 수는 없다. 또 그러한 에너지가 우리의 발전에 기여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사교육의 수요를 폭증시키는 사회구조는 이제 뜯어 고쳐야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행세할 수 있도록 짜여진 사회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보통의 삶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부모들이 자녀를 사교육 시장에 내몰지 않고 버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서 사회적 계급이 형성되는 데 그 일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방화, 국제화의 시대에 맞춰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외국어 공부를 안시킬 부모는 없다. 우리사회는 확실히 학벌과 외국어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또 그러한 방향성은 점점 강화되고 있으며, 개개인 학부모가 그 대세를 거스릴 방법은 전혀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나 우리사회는 확실히 좋은 대학을 나오고, 그럴싸한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보편적인 성공이다.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그러한 학벌사회의 틀을 깨고 성공하기는 어렵다. 대단한 좋은 재능을 가졌어도 역시 학벌을 배제하고 그 재능을 펼칠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과 그렇지 못해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시작부터 상당한 사회적 계급차이가 되고 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그 처우가 엄청나게 다를 뿐 아니라 향후 진로의 변경에 있어서도 현저한 배경차이로 작용하게 된다. 일자리가 사회적 신분을 결정한다면, 일자리의 질은 바로 학벌이 정하는 사회이다.

 

또 한번 학벌에 의하여 정해진 계층간 이동이나 변화가 어렵다. 매우 경직된 구조의 사회가 변함없이 유지되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심지어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서 아이들의 또래집단도 갈리곤한다. 종종 살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임대주택이나 장애인 학교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경우가 있다. 철저히 신분에 따른 배타성까지 보이고 있어서 마치 신분사회처럼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학벌사회, 경직성, 배타성이 강하게 작용하여 온국민을 사교육에 올인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이 그러한 열풍을 더욱 고조시키는 데로 작용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자녀를 가진 부모가 죄인이다.

 

묻지마 선행학습과 강의중독증.

 

혹자들은 수월성 교육강화를 자주 입에 담곤 한다. 고교평준화 등의 정책이 국민의 평균적 학업성취도를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내는데 실패했다며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면 일 리가 있는 말이다.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만들고, 평범한 사람을 잘하는 사람으로, 아주 못하는 사람을 평범한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훌륭한 교육이다.

 

그러나 지금 추진하는 여러가지 정책들이 과연 수월성 교육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특수 목적고를 가려고, 국제중학교를 가려고 사교육을 늘리는 것이 수월성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선행학습일 뿐이다. 선행학습은 사교육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수월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더라도 이런 방식은 수월성 교육이 될 수 없다.

 

모두가 나서서 사교육을 하고 사교육을 통해서 선행학습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의 교육은 부작용이 심각하다. 창의성이 높은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 문제해결 능력이 전혀 없는 강의중독증 환자를 양산할 뿐이다. 하루종일 쉴 새없이 강의를 듣고 강의에 의존하며 스스로 공부할 시간조차 없다.

 

그렇게 해서 대학에 진학하면 강의내용은 잘 이해할지 모르지만 스스로 학습할 능력조차 모자라게 된다. 창의력이나 연구능력이 없어서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없다. 나중에 배울 것을 좀 미리 습득하고, 강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의 공부가 발전성없는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다.

 

이제는 다른 방식의 교육을 생각해야 한다. 고등학교 까지는 보편적 교육을 좀 더 체계적으로 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은 각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창의적이고 다양한 인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선행학습이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의 대학입시를 정착시켜야한다. 대학의 입시관계자들은 특히 고교 교과과정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절실하다.

 

사교육은 한국경제를 갉아먹는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양극화의 완화와 내수기반의 확충이다. 이런 과제에 가장 큰 걸림돌인 바로 집값과 사교육비이다. 이중 사교육비의 폐해는 특히 심각하다. 이 것이 출산률을 떨어 뜨리고, 국가경쟁력을 갉아 먹는다. 소비위축을 구조적으로 지속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자식을 둔 모든 부모는 사교육비를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한다. 대단히 큰 국가적 병폐이다. 교육의 양극화도 바로 여기서 연원하는 문제이다. 부모의 경제력은 물론 이제 학력수준까지 대물림을 피할 수 없다. 그럴수록 더더욱 사교육에 집착하여 올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의 비대화를 막지 못하면 사실상 내수경기는 살아나기 어렵다.

 

계층간의 이동이 어렵고 고착화된 사회는 그 자체로 활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경쟁을 해보려 노력하지만 결국 경제력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언젠가 저소득층부터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있던 경쟁도 무의미하게 되어 서로가 퇴보하는 날이 올 것이다. 잘못된 교육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그런 현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학교를 다녀온 아니들이 동네어귀에 모여서 떠들고 노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학원과 과외받으러 가느라 아무도 나와서 놀지않는 사회는 그 자체로 암울한 지옥이다. 아이들도 대단히 불행할 뿐 아니라 부모들도 과도한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다. 바른 교육이 없이는 국가경제도 한계에 봉착한다.

 

이제 사교육의 수요를 줄이는데 사회적 노력이 기울여야 할 때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모두가 불행해질 뿐이다. 그렇게 죽자사자 선행학습에 몰두하지 않아도 진학할 수 있고, 굳이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창의적이고 능력있는 인재도 다양한 모습으로 양성되고 자라날 것이다.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한다.

 

외국어 고등학교도 대학입시학원, 자사고도 입시학원, 과학고도 입시학원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좋다. 똑같은 목적의 학교들이 이름을 달리하여 특권층을 만들어내는 것이 왜 우리사회에 필요한가?

 

대학은 각 분야에 적합한 창의적이고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면 그만이다. 선행학습을 많이 받는 고스득층 자녀를 입학시켜 학벌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입시부터 당장 달라져야 옳다. 고교교과 과정에 철저히 충실한 학생을 뽑도록 노력을 기울여라.

 

외국어 고등학교는 특별한 외국어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양성하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라. 자사고는 보통의 학교와 다를 것이 없이 입시에 올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각기 설립취지에 맞는 능력을 길러줘야 옳다. 과학고는 과학에 적성이 있고,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양성하여 그 분야로 진출하도록 유도해야 옳다. 모두가 대학입시 학원처럼 변질된 지금의 상황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중학교부터 국제중학교를 만들어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짓은 당장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옳다. 일찍부터 아이들이 심각한 경쟁을 하기만 하면 저절로 좋은 인재가 길러질 것이라는 우스운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경쟁은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될 때 까지만 발전에 기여한다. 과도한 경쟁은 오히려 사회를 병들게 만들 뿐이다.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건강하게 길러내는 것이다. 교육이 이런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선행학습 경쟁은 이미 사회를 심각하게 병들게 만들었다. 이 것을 고치지 않고는 경제발전도 없으며, 국민의 행복도 없다. 장차 국가의 규모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지 모른다. 더 이상의 집단 사교육 증후군은 안된다. 그 것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은 나라를 망조들게 만들 뿐이다. 모두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자.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9.08 17:0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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