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언어에 쫒긴 몸의 유일한 영토

김선우의 나는 춤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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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woollim3)등록 2008.10.01 19:49
지금은 세계적인 명인의 반열에 오른 최승희의 고향이 강원도 홍천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왜 홍천군 동면에 있는 수타사가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가을날의 빈 들판을 아버지의 너른 등판과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짧은 회상에 기인된 것인지..... 이참에 직접 찾은 수타사는 천년을 넘은 고찰인 만큼 조금씩 불사가 이어지는 옆으로는 낡아가는 기와와 벽들의 바랜 색들이 오히려 생생하였다. 오랜 시절 공작산 자락에서 버려지는 듯 있더니 이제 군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는지 제법 규모와 정취가 볼만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최승희가 어려서 살았던 동네는 분명치 않은 것 같다. 홍천강 근처 노일쪽이라는 얘기도 있고, 그 옆의 남면 곡제라는 설도 있는데, 곡제 마을에서는 노인회관에 최승희 연구소라는 사무실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래서 인근의 슈퍼 할머니께 이곳에 무용하는 최승희가 살던 집이 있는가 하고 물으니 “확실치는 않지만 저쯤에 사람들이 오가고 하니, 뭐이 될려는 모양이야” 라는 대답을 하신다. 그래서 왜 그런 바램을 하시냐 했더니, “뭐 먹고 살게 있어야지, 그래야 우리 동네가 돈버는 거 아니야” 하신다.

소설에서 최승희는 완숙한 고전미와 발랄한 현대미를 동시에 갖춘 다중의 캐릭터로 나온다. 하기사 남의 나라 지배를 받는 식민지 속국의 백성이 또한 남의 나라에서 선진의 기술과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일이, 어찌 순일한 정서를 갖고 성취할 성격의 것이겠는가. 게다가 해방 정국을 맞아 피 튀기던 좌·우익의 창날은 그야말로 모르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계제가 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고, 덤덤한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벌이는 살육전의 한 가운데 있게 되면 어찌됐던 ‘누구의 편’이냐는 동물적 본능이 발달되게 돼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잠재적인 집단 트라우마로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구체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다. 한 예가 최승희에 대한 역사적 사료나 행적에 대한 연구자체가 일천한 현실을 들 수 있겠다. ‘한류’라는 말조차 없었던 시기에 이미 가장 한국적인 문화로 동남아를 비롯한 미주와 구주 쪽에서 지금의 어떤 한류스타보다 본격예술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최승희에 대한 이러한 무지의 이면에는 그녀의 북쪽행이 작용을 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신랑은 카프문학에서 좌익 이념을 주창하던 세력이었음이니 이제사 부는 그녀에 대한 재평가의 바람도 어찌보면 다행한 일이겠다.
 
홍천 남면 제곡을 거쳐 노일이란 동네를 가노라니 좌우로 흐르는 홍천강을 제외하면 너른 밭뙈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궁벽한 산촌이다. 지금은 그렇게 보존된 자연을 밑천으로 하는 팬션 등의 숙박 시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으니 무어든 변화하게 마련이로되 산다는 일의 고단함은 지금도 그리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어린 최승희가 뛰어놀던 그 시절의 이 산천도 가난하였을 것이다. 가난은 그러나 자연을 아무런 매개없이 제 몸과 같이 체화시키는 주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풀과 나무와 구름이 보여주는 온갖 몸짓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연의 운율과 움직임이 온몸에 기억돼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경성, 일본을 넘나들면서도 강원도 산골짝의 온갖 소리와 춤들이 차곡차곡 쌓여나갔을 것이다.

이사도라 덩컨, 니진스키, 안나 파블로바, 마리 비그만......, 모두가 일세를 풍미하던 춤의 거장들이다. 말(言語)이 오랜 기간 인류의 표현양식으로 공고화 되어갈 때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반란군인 셈이다. 그만큼 춤은 몸짓의 언어이다. 또한 춤은 몸이 고백하는 솔직한 고해이다. 춤은 언어에 쫒긴 몸의 유일한 영토이다. 그렇게 왜소해지고 외곽으로 밀려가고 있지만 어떤 말보다 진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또한 춤이다. 작지만 순일하고, 단순하지만 명징하고, 구체적이고, 또한 절박하지만 상징적이다.  

소설에서도 “무용은 오직 자기 몸 하나에 의지해 가는 항해이자 몸이 악기이고, 원고지이고, 몸이 곧 정신이 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인간의 뼈가 놓이는 자연스러운 방향을 근대무용은 비틀고 왜곡한다. 최승희도 이 비틀린 왜곡에서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순리를 역행하는 아름다움의 창조를 만드는 일에 기이할 만큼 스스로를 몰아간다. 그렇게 안으로부터 차오르는 강박과 애성이 있어야 어떠한 경지에 놓인다는 것일까. 한 여름을 지낸 산골, 곡제의 풍광은 이 모든 풍파를 다 싸안은 채 가을볕아래 평화롭다.

해방공간을 맞은 한국 사회는 왜 그리 많은 천재들이 명멸해 갔던 것일까. 어떻든 근대화된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나라가 아직도 이렇다할 기준이나 시스템이 없이 비천한 모욕의 역사로 일관하는 현실은 아무래도 그때의 역사적 공간에 혐의를 둘 수밖에 없다. 미·소간의 이데올로기와 중·일간의 힘겨루기 등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중첩된 배경들이 얽혀 있던 공간들..., 그로부터 6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낸 우리네 인문학 풍광에는 최승희가 읊조렸다는 그 문장에서 한 발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권력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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