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수'하고 싶다

한국의 대학생이 '보수'일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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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지(kbsannomj)등록 2008.10.17 18:44

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손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늘 들고 있다. 잡지에서 예쁜 까페를 발견하곤 친구들과 '어디는 와플이 맛있다더라, 어디는 커피향이 너무 좋다더라' 하며 금세 다녀와서는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다. 핸드폰 카메라는 셀카용이고, 걸어가는 그녀의 한쪽 어깨엔 최신 기종의 DSLR이 걸려있다. 가끔은 금요일 저녁 분위기 있는 바에서 와인 한 잔 하는 것이 기분전환.

 

 

  웬 된장녀?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모습이 전형적인, 혹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을 느끼는 여대생의 모습이다. 소비 자본주의에 무방비하게 길들여진 모습이다. 이런 그녀들이 지난 6월에는 광화문을 찾았다. 그리고 이들 손으로 지금의 대통령을 뽑았으며, 자신들의 정치성향을 묻는 질문에는 '진보적'이라고 대답하거나 적어도 '보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왜,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보수'일 수 없는가?

 

 

 대학생은 지식노동을 하는 집단이다. 좋건 싫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다. 이 책들을 살펴보자.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에게 묻자. "당신들의 신념은 누구에게 학술적 기반을 두고 있습니까?"라고. 어느 누가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학생들에게 묻자. 마르크스부터 프랑크프루트 학파까지 우리는 끝없이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해외 석학들의 명저들은 출간 즉시 번역된다. 우리는 그것을 젊은 날의 양분으로 삼는다.

 

 이번엔 다른 질문을 해보자. "당신이 아는(혹은 존경하는) 보수주의자는 누구입니까?"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는? 물론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진중권, 홍세화, 조국, 한홍구, 심상정, 김규항, 노회찬, 정태인, 우석훈......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진보적(혹은 개혁적)성향의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학문에 굳건하게 기반을 두고 있거나, 실제로 민중속에서의 생활로 잔뼈가 굵거나,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저서는 베스트 셀러, 혹은 스테디셀러에 끊임없이 오른다. 우리는 이런 인물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시점에서 홍세화씨가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고 싶다.

 

"우리 사회에 진정 '보수할 만 한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에 우리 세대의 보수주의자에게 보수해야 할 가치는 기득권뿐이라는 홍세화씨의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 정권이 지난 해 대선에서 가장 크게 어필한 것은 바로 '경제'로 대표되는 기득권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경제를 살려 기득권의 총량을 늘리겠다는 그의 주장은 '권력'은 소수가 독점하는 것이라는 정의에서부터 분명히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게 달려온 것이 지난 반 년이다. 미국산 소고기는 수입되고 있고,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조직 폭력배에게 보복 폭행을 가한 대기업 CEO는  특별 사면을 받았으며, 각종 금융규제는 속속 해체되고 있다.

 

 

 이런 천민자본주의를 대학생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돈'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할 천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이런 예들은 서양 근대사에서도, 우리 유학의 전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의 대학생은 아직 기득권층이 아니므로 이런 상대적으로 배금주의적 성향을 가진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상경계열 지원자가 급증하고 처세서나 재테크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천민자본주의'가 '재테크'로 세련되게 표현되고 있음을 지적할 수 는 있겠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대학생들에게서는 평등하려는 노력과 부를 재분배하려는 노력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혹자는 '교육'의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교과서 좌편향논란인 한창인 지금은 이 근거가 꽤 타당해보인다. 좌편향된 대한민국의 교육이 '빨갱이대학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학생들이 받는 교육은 다양하다. '자유'를 '평등'보다 강조하는 교수들은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건전한 사회'를 꿈꾸는 교수들은 평등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즉, 이념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어떤 교육을 받든, 최후의 결정력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보수할 가치를 달라.

 

경제대국,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부러운 것이 아니다. 전당대회에서 목이 터져라 지지자의 이름을 외치고 연설 한 마디, 한 마디에 감동할 수 있는 미국인이 나는 부럽다. 우리에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피튀는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한국의 대학생은 진심으로 '보수하고' 싶다.

2008.10.17 18:27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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