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나쁜 남자, 방문중 (상)

[조선왕조실록 감성으로 읽기]

검토 완료

이윤우(adriane)등록 2008.11.25 09:35

37년의 세월도 모자라는 것이었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건지에 대한 답을 얻기까지는. 시간의 도움을 얻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석었고 왕이 내어준 답은 납득할 수 없었다.

늘 답을 찾고 있는 척했지만 사실 답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이미 하얗게 세어버린 내 귀밑머리처럼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요란스레 흔들리며 내 주위를 끌고 싶어했었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수없이 생각했다. 37년전의 나에게 경고의 한마디라도 해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나는 감히 붓을 들지 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그때의 나... 젊고 패기있는 불타는 사명감까지 지니고 있는 그때의 나에게, 나는 과연 너의 붓을 적시고 있는 먹물이 험하디 험한 너의 앞날을 그리는 독이 될거라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다섯가지

 

"정비와 명빈이 각각 양전을 설치하여, 빈 으로서 적비와 나란하게 함은 신의 이해할 수 없는 첫째이요, 궁중에 창기를 많이 불러들이는 것이 신의 이해할 수 없는 둘째이요,

후궁을 총애하여 큰 집을 많이 지어서 '신전' 이라 칭함이 신의 이해할 수 없는 세째입니다. 제후에서도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는 일은 오히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라의 임금이겠습니까?

본궁에 서제(경각사-서울에 있던 관아의 총칭-에 속하는 아전의 하나) 를 두어 어량(물고기를 잡는 장치)의 세금을 거두지 않는 것이 없으며, 서제로 하여금 관작(관직과 작위)을

아울러 받게 함은 신의 이해할 수 없는 네째입니다.

백성을 괴롭혀서 자기 몸을 스스로 보양하는 것이 어찌 임금의 뜻이겠습니까? 진우(화살의 깃으로 사용하던 독수리의 꼬리 깃) 의 값이 많은 것은 조가 20두에 이르며, 천아(고니)의 값은 많은 것은 조가 40두에 이르니, 모두 백성들에게서 박탈함은, 신의 이해할 수 없는 다섯째입니다."

 

1418년 7월 6일 교서관의 교감직에 있던 방문중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그는 어째서 후궁과 중전이 차이가 없이 나란히 할 수 있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 했고, 창기를 많이 들이고 후궁을 총애하여 큰 집을 많이 지은것도, 본궁(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후에 내수사로 불림)에 아전을 두고 세금을 거두는 것도, 독수리의 꼬리깃이나 천아를 백성들에게 박탈하는 것까지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닷새전인 7월 1일, 가뭄을 근심한 왕이 시정의 실책을 모조리 진술해 숨김이 없게 하라는

구언의 명이 있은 후였다.

 

구언

 

구언이란 왕이 자신의 실책을 지적해주고 정책을 제시해달라는 의도로 내리는 명이다.

말 그대로 말을 구한다는 뜻인데 가뭄이 들거나 혹은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했을때 구언을 명을 내리며, 구언의 명을 따라 상소를 올렸을 때는 그것이 어떤 말이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달린다.

그러나 말 그대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말이나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왕이 구언의 명을 내리는 것은 정말 내가 잘못했으니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낱낱히 고해바치라는 말이 아니다. 구언은 대개 가뭄이나 홍수, 또는 자연재해와 연관이 많은데 그건 바로 구언이 왕이 잘못했기 때문에 하늘이 경고한다는 재이론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식이다. 가뭄이 들었다. 아, 내가 뭘 잘못해서 하늘이 경고를 하시는구나. 하고 왕은 자책한다.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구언의 명을 내린다. 이렇게.

 

까놓고 말해서 조선의 왕들이 자연재해를 하늘의 경고라고 정말 믿은건 아니었다.

그들이라고 그게 사람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걸 몰랐겠는가?

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가뭄이 홍수가 모두 자신의 탓인척 하는건 그걸 정말 믿어서가 아니라 일반 백성을 초월한 왕이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이다.

왕의 자리는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군사나 무기같은 것으로는 정통성을 얻을 수가 없고, 정통성이 없는 왕은 왕이 아니다.

하늘의 명을 받지 못한 왕은 그저 평범한 한 남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어느 누가 자신과 하나 다를바 없는 그런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겠는가.

 

왕이 자연재해에 대해 자책하고 구언을 하는 건 말 그대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왕은 자신의 천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온 백성에게 상기시키고, 신하들은 그 책임을 왕에게 물어 왕의 권력을 견제하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그런것.

그러니 구언의 명에 응하는 상소들이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얘기를 적어올리는게 당연하다. 왕에게 몸과 마음을 추스려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하늘이 용서하실것이다. 뭐 이런식의 관념적이고 모호하고 뻔하면서 기분은 안나쁜데 할만큼 했다 생색은 낼 수 있는 그런거 말이다.

 

하지만 방문중의 상소는..정말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정말 왜 그랬을까..

아무리 젊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해도 태종이라는 사람을 안다면 도저히 그런 상소를 올릴 생각은 할 수 없었을텐데. 정말, 왜 그랬을까?

 

왕의 거짓말

 

"나의 충신은 오로지 방문중 뿐이다. 만세 후에 내가 어찌 죄를 벗어나겠느냐?"

 

태종은 방문중의 상소를 대언등(승정원의 관리들)에 보이며 비꼬는게 분명해보이는 투로 말했다. 태종은 방문중을 불러들여 내가 하지 않은 일은데, 무슨 마음으로 썼느냐고 내가 만약 이런 일이 있다면 네가 비록 말하지 않아도 사관의 붓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라고 했고, 여러 대언은 방문중이 없는 일을 가지고 떠들었다고 그를 옥에 가두고 국문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언제나 그랬듯 태종은 옳다구나 하고 신하들의 뜻에 따르지는 않았다. 그는 죄를 묻지 않겠다고 했으니 허락할 수 없다고 했고, 태종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던 대언 등은 방문중에게 상소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고 겁을 먹은게 분명해 보이는 방문중은 내가 배우지 못하여 그 이치를 알지 못한다. 라거나 나는 외방의 유생이므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식으로 답했다.

 

방문중의 죄를 물으라는 여러 대언의 청은 계속됐고, 태종은 방문중의 상소를 육조에게까지 내보이면서 구언에 의한 것이었으니 죄를 줄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육조의 판서들 역시 한목소리를 내어 방문중의 국문을 청했다.

태종은 방문중더러 불공대천의 원수라고 하는 판서들에게 죄 줄 수 없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고 다시 청하면 먹지 않겠다고까지 하지만,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신하들은 모두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신하들은 방문중을 요물이라 부르며 기어이 눈물바람으로 애원하기 시작했고, 방문중은 마침내 하옥되었다.

 

난신적자

 

같은 날, 태종은 승정원의 여섯 대언을 불러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태종은 거듭 방문중을 죄줄 수는 없다고 하면서 세자(세종)가 남보다 뛰어나니 나라를 맡길 수가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더불어 여섯의 대언 또한 태종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명을 거둘 것을 뜻을 거둘 것을 간청했지만 태종은 세자가 조현(중국 황제를 만나고 오는일) 하고 돌아오면 왕위에서 물러날거라며 그때까지는 자신의 말을 드러내지 말라고 명한다.

 

이 여섯 대언들이 입을 다물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 조정의 온갖 부서와 온갖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질세라 앞다투어 방문중을 탄핵하기 시작했다.

의정부, 육조, 사헌부, 사간원, 승정원 등..

그들은 주저없이 한목소리로 방문중이 상소에서 언급했던 모든것이 말도 안되는 억지이고 거짓이라며 왕을 두둔하고는 방문중의 상소는 너무도 불경하고 불충하여 결코 용납되지 못할것이라고 주장했다.

 

방문중이 하옥된 다음날에는 권약과 정광원이 하옥되었는데, 권약은 방문중과 더불어 후궁의 일을 말했다는 이유로, 또 정광원은 본래 방문중과 친하여 방문중이 상소문의 초고를 그에게 보였다는 이유때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방문중을 모반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기다렸다는듯 터져나왔다.

태종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지만 모반이라는 말이 불씨가 된듯, 의정부, 육조, 승정원에서 기어코 방문중을 죽이라는 말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치솟아 올랐다.

 

방문중은 몰랐을 것이다. 정말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상소 하나 때문에 졸지에 왕앞에 불려나가 평소에는 감히 얼굴을 마주보기는 커녕 자신의 존재조차 몰랐던 대단한 지체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에 요물소리까지 듣게될 줄은 정말, 몰랐을 것이다.

그는 어느새 난신적자(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을 일컫는 말)가

되어 있었다.

 

죽어야 하는 자

 

"임금과 어버이는 하나이요, 신하와 아들은 하나이니, 아들이 어버이에 대하여 허물이 있으면 마땅히 간하되, 오히려 또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간하여, 감히 그 어버이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하늘의 이치와 인정의 지극함입니다. 어찌 없는 일을 가지고 거짓으로 망령되게 헐뜯고 비방하여 남에게 폭로하여 드러내는 도리가 있겠습니까? 아들이 되어서 이와 같은 자는 반드시 베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 이와 같은 자도 반드시 베어야 함은 만세에 변함없는 법입니다."

 

방문중은 아버지와 다를바 없는 군주의 허물을 드러내어 당연히 죽어야 하는 자로 몰렸다.

태종은 '방문중의 말이 나에게 부끄러운 점이 있어 내가 하늘에 살생하지 않겠다고 고하였다.'며 '내가 능히 위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지' 못하여 방문중을 죽일 수는 없다고 했지만 방문중을 죽이지 않겠다는 것 뿐, 벌주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방문중은 장 1백 대,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들과 함께 진양의 관노가 되었다.

 

 

                                                                                - 다음편에 계속

2008.11.25 09:10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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