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해법, 조선에 있소이다.

시장경제의 과감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검토 완료

홍종혁(atum103)등록 2008.12.03 14:40

어려운 경제 상황,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신음 소리만 들리고,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경제상황도 말이 아니다. 멀리서 그 예를 찾을 것도 없이, 기자의 집만 살펴보아도, 2년 전부터 재워놓기만 하면 은행이자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낸다던 펀드는 이미 반 토막이 나있고, 군 제대후 영국 어학연수를 준비 중인 동생은 높게 뛴 환율에 부모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나 그렇듯, 어려운 현실에 사람들은 갖가지 억측을 만들어내고 분풀이 대상을 만들어 불안하고 억울한 마음을 경감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 세태를 보면 틀려도 너무 틀린 곳으로 그 화풀이를 하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바로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은 지난 정권의 반시장적 정책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들 수 있는데, 부동산 경기는 실물 경제와 매우 연관되며, 건설경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무분별한 부동산 가격 끌어 내리기 정책에 결국 시간이 흘러 소비 시장 둔화를 낳았고 이는 곧 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 야당과 일부 반시장적 인사들은 연일 경제위기의 돌파구를 찾는답시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며 시장의 입지를 비하시키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원리라는 것은 생태계가 자연스레 돌아가듯 자가조정(自家調定) 되는 것, 억지로 시장에 매스를 가한다면 반짝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노무현정권의 잘못된 부동산 경제정책을 되풀이 할 뿐이다. 하지만 야당의 지도부들과 일부 언론들은 연일 現정권의 실패한 경제 정책에 탓이라며, 이에 사과하라고 민생은 뒤로한 채 정권 흠집 내기에만 급급하다.

 

 

이명박은 ‘애통교서’를 내려라!?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 27년(1594) 사헌부는 "기근이 극심해 심지어 사람고기를 먹으면서도 편안히 여기고 괴이함을 느끼지 못합니다"라고 보고했고 또 판충추부사 최흥원은 "굶주린 백성들이 근래 더욱 많이 사망해 그 고기를 나누어 먹고 백골을 성 밖에 쌓으니 성의 높이와 같다" 고 보고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선조는 "백성이 원망해도 내가 듣지 못하고 하늘이 위에서 분노해도 내가 알지 못했다…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라고 신민에게 공개 사과하는 애통교서(哀痛敎書)를 내렸다. 그 당시에도 다수의 관료들은 "전쟁 때문이다, 가뭄에 홍수 때문이다" 하며 남의 탓을 하기에 바빴고, 미약한 왕권은 신민에게 등을 돌릴 뿐 이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야당의 요구대로 대통령이 조선의 선조처럼 경제의 불안에 대해 애통교서(哀痛敎書)를 내린다면 과연 경제는 나아지고 국민은 편안해 질까? 절대 아니다. 그것은 그간 과거의 반시장적 경제정책에서의 시장주의 경제정책으로의 개혁 의지를 무너뜨리고 현 경제 상황의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조선의 해법

 

다시 선조대로 넘어가보자. 당시 병조판서 이덕형은 "반드시 조치를 취해 삶의 길을 열어 준 후에야 서로 죽이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금지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백성을 살리는 정책을 주장했다. 또한 영의정 유성룡은 압록강 중강진에 국제무역시장인 중강개시(中江開市)를 열었다. 과거 사형에 까지 처해졌던 국제 사무역(私貿易)을 허용하는 과감한 정책 전환인 것이다. 당시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조선의 면포 1필은 겉곡식 한 말도 되지 않았으나 중강개시에 팔면 쌀 20말이 넘었다"면서 사무역의 중요성을 역설 하였다. 무능한 관료 중에서도 국민에게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아는 인재가 있는 것이다.

 

한음 이덕형(1566 - 1645) 우리에게 '오성과 한음'이라는 이야기로 더 잘 알려져있다. ⓒ 네이버 포토앨범

 

양난을 지난 정조대왕은 강한 왕권을 지니고 여러 가지 개혁을 펼쳤다. 농민생활 안정을 위해 토지개혁을 펼치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별이 뚜렷한 조선사회에 파격적인 정책인 상공업육성을 꾀하고 독점적 지위(금난전권,禁亂廛權)를 부여 받았던 시전을 패지, 난전을 활성화 시켰다. 또한 기존 관료들의 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서얼출신의 박제가를 발탁하는 등 인재 등용에도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 결국 정조의 이러한 노력은 조선의 부국강병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좀 더 과감하고 강한 리더쉽이 요구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데 눈치를 살피며 너무 우물쩡 거리는 듯 싶어 안타깝다. 강한 추진력으로 반시장적 저항에 신경 쓰지 말고 올바른 정책을 개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시적 인기에 목 메이기보다 한미 통화 스왑(swap)과 같은 성공적 협상이나 뚜렷한 성과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올바른 미래상을 제시해줘야 한다. 우리는 지난 전후 50년간 시장경제의 기적, 한강의 기적을 몸소 체험한 국가이니만큼 가능성이 무한한 국가이다. 강한 리더쉽과 시장 지향적 정책의 과감한 추진이 있다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료의 내용은 조선일보(10/28) 칼럼을 일부 참조 하였습니다.

2008.12.03 14:4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료의 내용은 조선일보(10/28) 칼럼을 일부 참조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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