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화하마도 겸재정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홍종혁
요화하마도 (蓼花蝦蟆圖)
그림은 곱고 가벼운 담채(淡彩)로 명료하게 그려져 있다. 계절상으로는 붉은 요화가 핀 6월, 초여름의 느낌이 든다. 요화(여뀌, water pepper, 하단 설명 참고)가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를 향해 둥글게 뻗쳐 있고, 두꺼비는 어디를 그리 급히 가려는지 시뻘건 눈을 치켜뜨고 뒷다리를 한껏 오므리고 있다. 뒤에 뱀이라도 쫒아 오나보다. 여뀌 아래로 민들레 풀숲을 헤치며 가는 두꺼비란 화재(畵材)는 그동안 조선 회화 속 물고기, 나비, 강아지 등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신선하다. 또한 왼쪽을 향하고 있는 여뀌와 두꺼비는 비워져 있는 왼쪽을 채워 공간의 균형미를 잡아주고 있어 안정감이 든다.
‘요화하마도’에 관련된 전문적인 자료는 전무(全無)하다 싶다. 나름대로 원인을 추측해 본다며, 앞서 밝힌바와 마찬가지로, 영묘화냐. 초충도냐 라는 회화 범주상 개구리란 양서류는 분류상의 어려움을 들 수 있을 것이고 (*1 본인은 한자로 개구리蛙, 두꺼비蟆에는 모두 벌레虫가 들어가므로 초충도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함.) 다음으로는 겸재 정선이 산수화가로서 매우 유명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산수화는 겸재의 전․후로 나뉜다고도 한다. 영, 정조 시대는 우리문화의 황금기로,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이 그 맨 앞에 있었다. 그의 진경산수화는 우리 전통 회화의 관심을 현실감각과, 사실정신으로 돌려 조선 회화를 한 단계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유명한 진경산수화에 비해 동물화에 대한 연구는 소외되고 있다.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산수나 인물에 관심을 우선하여 동물화가 화화영역의 주종이 아니었던 탓도 있으며, 지금 역시 동물이 화재로서 우리의 주된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초충도*1)는 산수화 못지않게 뛰어난 사실성과 함께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녔으므로 좀 더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너는 개구리냐? 두꺼비냐?
▲ 넌 개구리냐? 두꺼비냐? '요화하마도' 부분 ⓒ 홍종혁
글을 쓰면서도 계속 헷갈리는 것은 그림 속 주인공이다. 그림은 분명 주둥이가 세모꼴의 길쭉한 모양으로 주둥이가 굵고 둔하게 생긴 두꺼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림의 제목은 분명 하마(蝦蟆:두꺼비)다. 실제 두꺼비보다 길고 가는 다리와, 물갈퀴 없는 발을 보고 미루어 짐작하면, 겸재는 실제 두꺼비를 보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추측해볼 수 도 있다. 이런 추측이 그림 읽기의 또 다른 묘미다.
혹은,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개구리와 두꺼비의 차이를 크게 두지 않았을 수 도 있다. 사실 동물학적 분류로 두꺼비는 개구리목에 속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도 금두꺼비, 금개구리 이 둘 모두 같은 길한 존재로서 취급하지 않는가? 그런 측면에서 이 그림은 길상(吉祥)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이 개구리던 두꺼비든 간에, 벌게진 눈을 크게 뜨고 움추린 모습에 안쓰럽기도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게 사실이다. 잔 배경 없이 간단, 명료한 작품을 바라보면서 나는 고요한 숲속 연못가 옆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을 상상해 본다. 계절은 초여름으로 점점 따뜻해지고, 고요한 연못가에서 두꺼비가 단잠을 자고 있다. 근데, 갑자기 인기척에 놀란 두꺼비 뒤를 보니 물뱀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다. 깜짝 놀라 뭍으로 펄쩍 뛰어 올라 여뀌 잎 사이를 뛰어간다. 엉뚱한 상상일 수도 있다. 수백년 전 겸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까?
산수화 그리던 정선, 왜 동물에 관심을?
정선의 동물 그림은 조선 후기에 남종문인화의 등장과 <고씨역대명인화보>, <개자원화전>, <십죽재화보> 등 당시 청조에서 본격적으로 유입된 화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특히 <개자원화전>은 총12권인데 그 중 제10권은 <초충화훼보>로 각종 꽃들과 곤충들을 그리는 기법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어 겸재에게는 좋은 길잡이였을 것이다. 그 예가 정선이 <고씨역대명인화보>를 번안한 ‘다람쥐(서울대 박물관)’다. 더불어 간송미술관 소장의 ‘국일한묘도’, ‘계관만추도’ 등 고양이나 닭 그림에서도 중국풍의 참작이 눈에 띈다.*문헌참고 하지만 정선만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소화한 화재해석과 사실적인 표현력은 역시나 당대의 거장다운 면모를 여심 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미술사를 통 털어서 조선 후기만큼 매력적이고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기는 없다고 한다.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외국 문물의 유입이 많았으며 다양한 가치관, 사상이 대두 되면서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문화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진취적인 발전을 한 분야는 단연 회화인데, 중국회화 그대로의 유입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양식으로 찬란한 예술 작품을 남겼다. ‘요화하마도’도 그 중 하나다. 모방을 넘어선 창조로, 산수화뿐 아닌 동물화의 경지를 넓힌 겸재 정선의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의 그림은 그냥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 결코 충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선과 색 너머 보이지 않는 멋과 작가의 정신, 그리고 그 시대와 조우해야 한다.
▲ 여뀌 붉은색 여뀌의 실제 사진 ⓒ 네이버 포토앨범
*여뀌: 습지 또는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 40∼80cm이고 털이 없으며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가장자리에 털이 있다. 꽃은 6∼9월에 피고 꽃잎은 없고 꽃받침은 4∼5조각이며 연한 녹색이지만, 끝부분에 붉은빛이 돌고 선점이 있다. 여뀌는 지혈작용이 있어서 자궁출혈·치질출혈 및 그 밖의 내출혈에 사용된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