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빈, 맥도날드, 뮤지컬 그리고 한국

커피빈, 불황 속의 가격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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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준(jcel)등록 2008.12.05 10:00
한때 커피빈을 즐겨 찾았던 적이 있다. 걸음을 멈추게 된 것은 한국 스타벅스와 커피빈의 가격이 한국 보다 국민소득이 두 세 배 앞선 뉴욕이나 동경, 그리고 그밖의 유럽 선진국 주요 도시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접하고 부터다.

한국은 거품 투성이이며, 거품으로 치솟은 상품의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비단 스타벅스와 커피빈, 파스쿠치와 같은 커피전문점의 커피 가격 뿐만이 아니다. 뮤지컬과 오페라 관람료 또한 뉴욕, 런던, 파리, 동경 등을 앞질러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사동에서의 차 한잔, 삼청동에서의 저녁식사 가격 또한 거품으로 가득하다.

한국 맥도날드, 한국 버거킹, 롯데리아 등의 페스트푸드 체인은 어떤가. 역시나 상품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미국 등과 비교할 때 가격은 비싸고, 그러면서도 제공되는 버거의 크기는 보다 작다.

현재 미국에서는 맥도날드 버거의 매출이 다시금 늘고 있다. 정크푸드라 하여 한동안 매출이 감소한 바 있으나, 세계적 경기 불황 가운데, 1달러(!) 안팎의 가격에 넉넉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매력에 다시금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1인당 GDP가 45,800불(구매력평가PPP)인 미국에서 페스트푸드 그리고 맥도날드는 1달러로 더블치즈버거를 구입,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1인당 GDP 20,000불(PPP) 아래인 한국은 어떤가?

오늘 한국은 세계 경기 불황의 한 가운데 있다. 기업도 고통을 분담하고, 소비자 주머니 사정에 맞춘 염가의 상품을 내놓거나, 거품을 빼 가격을 인하하는 것이 마땅한 이때. 그러나 한국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등에서는 그럴 계획이 없는 듯하다.

책값은 어떠한가. 한국 책. 종이질 좋다. 활자는 크고, 줄간과 자간은 넉넉해 보기에 편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중요한가? 꼭 필요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종이질이나 활자의 크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출판업계는 지속적으로 고급화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종이질과 넉넉한 활자크기로 무장된 책은, 역시나 세계 최고 수준의 값에 판매되고 있다.

해외의, 예컨데 펭귄클래식이나 옥스포드대 출판부 등에서 발행되는 문고판을 보자. 종이질? 재생지도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읽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활자의 크기 역시 한국 도서에 비하면 훨씬 작다. 하지만 역시 가독성에 전혀 지장이 없다. 가격은 어떠한가.

- 옥스포드출판부 발행,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
1,3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미국 달러로 12불
- 옥스포드출판부 발행, The Bible :
1,700페이지 쯤 될 이 책이 미국 달러로 19불
- 펭귄클래식 발행,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600페이지 넘는 이 책이 미국 달러로 13불
- 펭귄클래식 발행, 헤로도토스의 역사 :
700페이지 분량의 책이 미국 달러로 8불
- 펭귄클래식 발행,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
미국 달러로 8불

한국에서 이들 책의 가격은 어떨까? 완역된 전쟁과 평화를 모두 구입하려면 인터넷 서점에서 할인가, 최저가에 구매한다 하더라도 최소 몇 만원은 필요하다. 이는 번역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비싼 가격이다.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문고판은 찾아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문고판이라 이름붙이고 나온 도서의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한국 출판계에서는 이를 두고,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한권 한권을 고급화 하여 팔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영어권이나 일본에 비한다면 시장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한편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인구 5,000만으로 세계에서 24번째로 인구가 많고, 비교적 책을 많이 찾는 나라에서 시장이 작다는 이유를 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면 왠만한 나라에서는 출판사를 낼 엄두도 못내야 한다. 시장이 작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한국은 거품으로 가득차 있다. 모든 것, 모든 자리에 고급화 마케팅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이를 비판없이 수용하고 따른다. 커피와 차(tea) 가격, 또 뮤지컬과 오페라 관람료가 어째서 세계 최고인가. 왜 같은 공연을 두고 뉴욕보다, 동경보다, 런던과 파리보다 서울과 부산에서의 공연 관람료가 더 비싸야 하나. 국민소득과 상품가격 간의 이 엄청난 간격은 대체 무언가.

페스트푸드라는 것, 본래 빠르고 간편하며 저렴한 식품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나. 페스트푸드라고 하는 것이 언제부터 '있어보이는' 상품이 된 것인가.

원가가 얼마인지, 국민소득을 감안한 적정한 가격은 얼마인지, 상품의 질과 수준이 어떠한지보다 상품의 가격이 더 중요한 사회. 일단 비싸게 값을 매기면, 그 비싼 값으로 말미암아 상품의 가치가 결정되고, 비싼 가격으로 말미암아 상품이 '있어보이게 되는' 거품과 허영의 사회. 비싼 가격을 붙임으로 패스트푸드 조차 '있어보이는' 상품으로 만드는 사회. 이것이 오늘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모든 것에 소비자의 허영과 이를 부추기는 마케팅으로 만연한 한국. 그들 마케팅의 주 공략대상이자 주 구매고객인 20~30대는 이에 대해 별 비판이나 저항 없이 판매자가 내놓는 광고와 가격에 순응할 뿐이다. 그들을 보고 알았다. 무비판이야말로 진정한 동조라는 것을.

그리고 이달 커피빈은 대부분의 상품 가격을 6~17%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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