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재단은 과학기술 현장의 꿈과 희망을 향한 도전, 열정, 성공 사례를 일반 국민들과 공유하여 과학기술인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추진된 「2008 한국과학재단사업 체험수기 공모전」시상식을 1월 22일(목) 오전 11시 대전 유성호텔에서 개최하였다. ‘한국과학재단과 함께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이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해 10월 6일부터 11월 21일까지 공모한 이번 행사에서 서울대학교 김산하(남, 33세) 대학원생이 대상(大賞)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전체 대상 수상자인 김산하 대학원생 작품 ‘사랑 찾아 떠난 소년, 야생 영장류학자가 되어 돌아오다’는 한 과학도의 젊은 날의 꿈과 사랑과 열정이 잘 드러난 수작(秀作)이다. 김 씨는 비록 본인의 연구로 인해 사랑을 이루진 못했지만, 한국 영장류학에 대한 소명의식을 느끼며 영장류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과정에 나타나 있는 연구자의 선구자적 열정과 노력은 많은 과학도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다음은 그 내용을 게재한다.
어딜 봐도 녹색뿐인 울창한 열대우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엄청난 높이의 나무들과 빼곡히 덮인 덩굴식물들.
그 삼차원의 식물 미로 속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만 사는 자바 긴팔원숭이(Hylobates moloch). 새끼를 포함해서 4마리로 구성된 한 무리가 아침밥을 찾아나서는 동안 그들의 발밑에서 놓치지 않고 쫓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와 현지 보조원으로 구성된 연구팀이다.
“ 열대의 우림에서 띄우는 편지 ”
자연 다큐멘터리에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은 버젓한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지금 그 밀림에 바짝 붙은 집에서 지붕을 두들기는 열대의 빗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야생 상태의 영장류를 실제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밀림으로 떠나고픈 마음만 앞서던 그때를 떠올리면 말이다.
2006년 봄, 그 어떤 한국인도 해보지 않은 야생 영장류 연구라는 벅찬 프로젝트를 앞두고 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인즉슨,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좋을지 알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발표된 논문은 성공적인 연구 결과만을 보여줄 뿐 그 속사정까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영장류학은 야생 영장류를 인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을 때까지 익숙화(habituation) 시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도무지 원숭이와 어떻게 경주할 수 있다는 건지 난 어리둥절했다.
“ 서른살의 소년 ”
‘한국 영장류학의 시초’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나는 사실 또 한 가지 절실한 문제로 고심하고 있었다. 작년에 우연히 독일에서 만난 한 여인을 마음에 두고, 그녀와의 거리를 극복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무심코 학부 공지사항을 훑어보다가 한국과학재단의 ‘2006년 한․독 대학원생 교류프로그램' 공고에 시선이 멈췄다. 그녀가 있는 바로 그 도시에 유럽 영장류학의 중심인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가 있는 게 아닌가! 무조건 합격해야만 한다는 일념 하에 모든 걸 제쳐놓고 이 일에 몰두했다. 교수님과 심사위원님께 불순한 속내를 들키지 않도록 긴장감을 안은 채 말이다. 마침내 합격자 발표가 났다. 난 이미 짐을 싸고 있었다. 만 서른의 나이엔 아저씨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또 사랑에 눈이 멀어 무작정 독일행을 결심했다는 의미에서 난 소년이었다. 이미 협력관계인 대학과 단기 프로젝트를 하러 온 사람, 그런 협력관계를 체결하기 위해 전 단계를 다지러 온 친구, 분석과 함께 아예 논문작성을 마치려는 이 등, 동기들은 진지하게 연수에 임하였다. 그에 반해 공무를 가장한 연애가 주목적이었던 나는 정해진 카운터파트나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무대책의 연수생이었다. 계획이라고는 오직 하나! 어떻게든 그녀와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사명감으로 유턴하다 “
괴테와 니체의 발자취가 배어 있고 바흐와 멘델스존의 선율이 감도는 도시 라이프치히. 그 중심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남쪽에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 부근에 난 둥지를 틀었다. 그녀의 건너편 집을 얻은 행운으로 우리의 만남은 순조로웠다. 아직 조금도 해결되지 않은 나의 거대한 숙제는 잠시 접어둔 채 난 노천카페의 여유와 선술집의 맥주를 음미하며 내 생애의 달콤한 순간을 축복했다. 이 이상 무엇을 바라랴. 마치 언제까지라도 그 공기와 분위기에 취해 살 수 있을 것처럼 모든 근심은 날아갔고 모든 걱정은 폐기처분되었다. 고맙습니다, 한국과학재단, 난 흐뭇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소에서 점심을 먹다가 문득 아시아인은 나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물론, 영장류 분과에서 동양인이라고는 단기체류자인 나 말곤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는 독일에 있지만 모든 의사소통을 영어로 하고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온갖 나라에 흩어진 영장류를 연구하는, 지극히 국제적인 기관으로 유명하다. 흑인과 중남미 계열의 인사도 섞인 이곳에서 작은 눈과 검은 머리의 인종을 나 혼자 대표하고 있다니, 어디서 꿈틀거리다 고개를 들었는지 모를 사명감이 솟아났다.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과업을 여기서 시작해보자. 아프리카의 사바나와 브라질의 밀림에서 영장류를 좇는 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지 않은가. 배우려고 내가 이곳에 보내졌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곳 영장류학의 아지트에서! 더군다나 이곳은 세계최고의 영장류학의 아지트가 아닌가! 독일에서 사랑의 시간을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나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침팬지, 고릴라, 머카크원숭이 할 것 없이 가능한 모든 종의 연구자와 두루 만나고 그들의 모임에 참가했다. 내 전공분야인 행동생태뿐 아니라 유전자 계통분석, 실험 인지심리학, 생물통계학 등의 회의에 참여하고 발표를 들었다. 마침 긴팔원숭이의 가장 유명한 연구지인 태국의 카오야이 국립공원(Khao Yai National Park)에서 발정기 암컷 성기의 부풀어 오르는 정도에 대해 정밀한 측정을 한 연구자가 있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긴팔원숭이 연구의 현장정보가 드디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친김에 나는 긴팔원숭이의 연구 성과를 모아 포털사이트로 만들어 운영하는 업계의 핵심 연구자를 만나러 스위스 취리히까지 당일치기로 여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아직 걸음마 단계도 아니나 야심찬 한국 영장류학의 야심 찬 포부와 계획을 영장류 분과 전체 앞에서 발표하여 나와 우리를 알렸다. 이제 판도가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값진 금광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라이프치히 동물원의 볼프강 쾰러 영장류센터와 협력을 하고 있었는데, 동물원의 영장류를 퐁고랜드(Pongoland)라 불리는 실험시설로 불러내어 온갖 인지실험을 하고 그 과정을 방문객에게도 공개하고 있었다. 이는 바로 나와 최재천 교수님이 구상하고 있는 미래 한국 영장류학의 모델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에버랜드 동물원장님의 협조를 얻어 신축된 몽키밸리 시설의 설계과정에서 인지실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도록 추진할 수 있었다. 이 시설은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의 영장류 인지실험 태동의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복사기와의 전쟁으로 한국 영장류학의 역사를 시작하다 “
무엇보다 소중한 발견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도서관이었다. 실시간 온라인으로 올라오는 최신 연구 성과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하는 첨단 생물학 분야와는 달리, 영장류학은 전통적인 순수 생물학답게 누렇게 빛바랜 고서들과 외딴 대학의 학위논문도 자주 인용되는 분야이다. 막스플랑크의 도서관 서고 앞에 선 순간, 구입 불가능한 참고문헌 목록을 보며 좌절과 열패감에 빠진 시간이 파도에 쓸리는 모래알처럼 사그라졌다. 한번 구경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던 출판물들이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와 복사기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영장류 분과의 복사카드를 사용하면 무한정 무료 복사가 가능한 시스템을 난 극단까지 활용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문서 더미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또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비켜주며 복사기와의 고문생활은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아직 한국에 뿌리내리지 못한 어떤 중요한 학문 분야가, 어떤 매체로도 구입할 수 없는 절실한 자료를, 오직 한장 한장 직접 찍어야만, 뿌리내릴 수 있다는 신념하에 난 복사기를 세차게 어루만지고 다그쳤다. 한국의 영장류학에서 최초의 작은 도서관을 만든다는 심정, 목화씨를 품는 문익점의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영장류학의 역사를 복사하면서 동시에 한국 영장류학의 역사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 Thanks 마이 레이디, Thanks 과학재단”
2008년 겨울, 이 글을 마무리하는 곳은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의 구눙 할리문 국립공원(Gunung Halimun National Park)이다. EBS의 '하나뿐인 지구(2004년 789회)'와 환경재단의 '젊은 NGO 아시아를 가다(2004)'라는 책을 통해 두 번 한국에 소개된 바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넓은 공간 어딘가에 고작 10여 가구로 된 작은 마을 하나가 있고, 나는 지금 그 강 건넛집에 앉아있다. 창밖으론 오늘도 열대의 비가 세상을 압도하듯 내린다. 넘치는 비 덕분에 물레방아로 발전하는 우리 집 전기는 확보된 셈이다. 그런가 하면 내일 밀림 속의 흙길은 또 얼마나 미끄러워질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난 안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 시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첫 출발의 모습이 어땠는지 말이다. 이제는 10개월 동안 연구준비와 동물의 익숙화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데이터 수집단계에 돌입한 지 8개월째다. 어느덧 프로젝트의 성숙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30년 전에 수행되었던 Kappeler(1984)의 연구 이래로 아직 자바 긴팔원숭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참으로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어렵게만 보였던 일이 정말로 벌어졌고 또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이화여자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신 교수님 덕택에 이젠 한국의 여성 과학자들도 과감히 열대우림으로 뛰어들려 하고 있다. 영장류학의 유명한 여성 3인방인 제인 구달(침팬지), 다이안 포시(고릴라), 비루테 골디커스(오랑우탄)를 연상시키듯 현재 3명의 한국 여성이 이 멋진 과업의 대를 잇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선배로서 더욱 뜻 깊기도 하다. 사랑을 찾아 나섰던 그 두 달 동안 난 야생 영장류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한 첫 단추를 꿰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나에게 독일에서의 여름은 징검다리의 가장 절실한 첫 돌이 되어주었다. 불행히도 나의 사랑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 연구를 수행하는 가장 힘든 기간 동안 멀리서 큰 힘이 되어주었고, 이 글을 빌어 그녀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반면 우리의 야생 영장류 프로젝트 이야기는 힘차게, 줄기차게,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 그 풋풋한 첫 출발과 함께해준 과학재단. 고마워요, 서른 살 소년에게 야생영장류학의 꿈을 이루게 해 주고 한국 영장류학의 첫 디딤돌이 되어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덧붙이는 글 | 과학재단 홍보팀의 협조를 받아 전문을 게재 하므로, 저작권상의 문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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