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서 10여리 떨어진 '여술'이라는 한적한 시골 농촌마을에 작은 외삼촌이 살고 계셨다.작은 외삼촌은 시골에 살면서도 변변찮은 논밭뙈기밖에 없었지만 6남매를 큰 어려움없이키울수 있었던 것은 작은 외삼촌네 재산목록 1호인 누렁이 황소덕분이었다.지금이야 웬만한 농촌에는 트랙터며 경운기, 이앙기, 콤바인같은 농기계가 많이 보급되었지만 60~70년대 농촌에는 그와 같은 농기계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모내기에서부터 탈곡까지 거의 모든 농사일은 모두 사람손으로 할 수 밖에 없으며논밭갈이 쟁기질같은 힘들고 큰 일은 소나 말같은 가축을 이용하였다.그나마 소나 말같은 큰 가축을 기르는 농가도 흔치 않아서 작은 외삼촌은 그런집 논밭갈이나 또는나락을 읍내 정미소까지 실어나르는 일을 대신 해주고 품삯을 받는 일을 하시기 때문에 누렁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생활기반이었던 것이다.가실(가을)이 되어 나락을 찧기 위해 읍내 들머리 오리정에 있는 정미소로 소구루마(달구지)에 나락을 싣고 왔다가 정미소에 일이 많이 밀리면 그날 찾지 못하고 다음날에 찾아가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런 날은 빈 달구지로 집으로 돌아가셔야 한다. 으레 그런 날은 작은 외삼촌께서는 읍내 막내 여동생(우리 어머니는 2남 5녀중 막내)네집에 오셔서 동갑내기인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하셨다가 저녁 늦게 외갓집에 돌아가실 때에는 날더러 함께 외갓집에 가자 하신다.어머니는 "공부혀, 이눔아!"하면서 쉽게 보내주는 적이 거의 없지만 조르고 졸라 허락을 받을 때에는 그렇게 기쁠수가 없다.달빛 잔잔한 밤중에 인적하나 없는 10리 시골길을 신작로를 따라 삐걱거리는 달구지를 타고 간다.반추동물인 누렁이 황소는 십여리 내내 입을 우물우물 되새김질을 하면서 목에 매단 방울을 쩔렁거리며 쉬지 않고 걷는다.외갓집 가는 길에는 삼거리도 있고 사거리도 있지만 누렁이는 한 번의 망설임없이 외삼촌이 고삐를 당기지 않아도 정확하게 제 갈길을 찾아간다.외갓집 동네 초입인 신작로옆 산모퉁이를 들어설 때에도 어김없다.한참을 가던 누렁이가 마려운 똥을 참지 못하고 지 엉덩이 바로 뒤에 내가 앉아 있는데도 염치없이 꼬랑지를 쳐들고 똥을 싼다.철딱서니 없는 나는 "감히 내 눈앞에서 똥을 싸!"하는 생각에 누렁이를 툭툭 치고 가던 긴 나뭇가지로 누렁이 똥꼬를 찌른다.그럴때 외삼촌은 "아서라, 말못하는 짐승이라고 그럼 못써"하시며 나무라셨지.작은 외갓집 외양간은 부엌과 함께 있다.한쪽은 부엌이고 한쪽은 외양간이라서 소나 사람이나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부엌에 내가 들어가면 누렁이가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낯선듯이 나를 쳐다본다.누렁이는 그렇게 평생을 외삼촌과 함께 했고, 외갓집을 위해 모든걸 바쳤다.국민학교 다닐 무렵 읍내에서 좀 떨어진 도살장에 가 본적이 있다.도살되는 가축은 대부분 소와 돼지이다.지금은 고압전기를 사용하여 미처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쉽게 도살시키지만 당시에는 모두 오함마(큰 쇠망치)로 머리통을 내리치는 원시적인 방법을 이용하였다.그런데 도살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꿀꿀대는 요란한 돼지란 놈의 머리통은 어찌 된건지 그 큰 쇠망치를 머리통에 내리쳐도 보통 한 방에 가는 적이 거의 없고 두 번 내지 세 번을 내리쳐야 한다.첫 번째 망치가 머리통에 꽂히면 돼지는 '나 죽는다'고 꽥꽥 비명을 지르는데 흔히 말하는 돼지 멱따는 소리가 바로 이 소리다.돼지에 비하여 소는 어떤가!도살장에 들어서기전 큰 눈을 껌벅거리며 모든 걸 체념한듯이 별다른 저항도 없이 도살장에 들어선다.돼지보다 훨씬 큰 덩치임에도 소는 대부분 첫 번째 오함마가 정수리에 꽂히면 그냥 명줄을 놓아버리니 온갖 난리를 치는 돼지에 비하면 너무 싱겁기도 하지만 그런 행동마저도 사람을 위하여 마지막 봉사하는게 아닐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그렇게 소는 살아있을때나 죽을때나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묵묵히 바치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심성까지도 착하게 내 주는것 같다.설 연휴 첫날에 텔레비전에서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타리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출연 : 늙은 농부, 농부의 처, 소 달랑 셋. 장소 : 경북 봉화 외딴 시골* 워낭 : 소나 말의 목에 매단 방울평균수명 15살인 소가 40살이 되도록 살다보니 지 발걸음 떼기도 힘든 처지지만 모든걸 견디며 농부가 하자는 대로 따라나서고 쟁기질도 한다.소를 모는 농부도 꼬챙이같이 바짝 마른 허약한 다리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날만 새면 소를 몰고 논밭으로 나간다.밭에 농약을 뿌리면 밭둑에 있는 풀을 뜯어 먹는 소에게 해가 된다면서 한사코 농약뿌리는 일을 거부하는 농부.어느날 두통이 있어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더 이상 일하면 큰일 난다면서 쉬라고 하여도다음날은 또다시 소를 몰고 논밭으로 나간다.마치 소가 있어 농부가 있고, 농부가 있어 소가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다 못한 자식들이 소를 팔아야 아버지가 일을 안할거라면서 강력히 권하여 어쩔수 없이 우시장에 소를 내놓지만 헐값에다 다른 소도 안팔리니 얼른 치우라는 상인들 핀잔에 얼씨구나 좋다고 다시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동네사람들이 "소 곧 죽을낀데."하면 할아버지는 "내가 상주할끼다."라며.마침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소에게도 죽음이 다가온다.자리에 쓰러져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소를 보면서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잘 가거래이, 그동안 참말로 고생 많았다."하신다.할아버지도 처연하게 소를 바라보지만 다가오는 죽음을 어찌할 것인가.소의 최후를 눈치챈 할아버지는 소랑 할아버지만큼이나 낡은 낫을 꺼내어 평생 소에게 매달려 있던 워낭줄을 끊는다.마치 소에게 오랜 세월동안 지워있던 멍에를 푸는것처럼.영화 '워낭소리'예고편을 보고나니 사람과 소의 정이 뜨겁기보다 웬지 서럽게 느껴집니다.오랜만에 가슴 먹먹한 감동도 느꼈습니다.그래서 옛추억을 더듬다보니 장황하고 길어졌네요.미루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내 성품이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던 환경 다큐멘타리 영화 '지구'를 끝내 놓친것처럼 '워낭소리'마처 놓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입니다.- 기축년 소의 해입니다. 소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 #워낭소리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