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6일. 아무 일도 없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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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진(isknemln)등록 2009.04.06 17:39

 필자는 전공이 문화재이다. 그런데 지금 쓰는 이 글은 전공이나 평소 관심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석면과 이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 식약청에 대한 것이다.

 

 근래 들어 식품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얼른 생각나는 것만 해도 (결국 무해하다는 판정을 받았다지만) 쓰레기 만두를 비롯해서, 기생충알 김치, 생쥐머리 과자, 칼날 참치캔, 멜라민 분유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식약청은 엄청난 비판을 들었겠지만, 식품위생관리가 얼마나 나아졌을지는 회의적이다. 이는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것은 아닌 듯하다. 검색결과 '200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식품안전기본법은 '2008년'에 드디어 제정되었고, 식약청 홈페이지를 보면 식약청의 직원 수 또한 만두사건을 전후한 때의 840여 명에서 1,430여명으로 600명 정도 늘어났다. 뭐 작년 멜라민 파문을 겪고도 2007년 이후로 식약청 인력은 증원되지 않았고(메디컬투데이 08.10.8.), 식품안전을 위한 수입식품의 실사예산이 축소되는가 하면(내일신문 08.11.11.), "업무효율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대국대과제로의 조직개편에 따라 식약청도 본청은 최대 7개과가 축소(쿠키뉴스 09.3.24)될 전망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일들을 겪다보면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거기다 반복되기까지 하는지) 화가 나고,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보도를 보면 이미 유럽은 2005년부터 여기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다는데, 석면이 검출된 파우더가 3년간 100만개나 유통됐다는데, 탈크의 위험성에 대해 식약청은 이미 2005년에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더 이상 화낼 힘도 없다.

 

 이 사건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그 바로 한 달 전 어떤 신문에 식품 안전성 파동에 대처하는 식약청의 구태의연한 자세를 비판하는 칼럼이 실렸다. 요는, 식품 안전사고가 생길 때마다 식약청이 대응하는 방식은 매번 똑같으며, 사후수습도 미흡하고, 그 뒤 파동은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조선일보 09.3.6. 식품파동 '판박이 대응' 식약청)

 

 필자가 글의 논지와 상관없이 굳이 서두에서 전공을 밝힌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잇따른 식품안전 사고는 필자가 보아오던 숭례문 화재와 같은 문화재 훼손 사례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의 지적과 같이 정부의 대응은 놀랍도록 한결같다. 그런데 언론의 반응 또한 놀랍도록 일관적이다. 사고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사고가 난 뒤에야 비판기사들이 쏟아진다. 무슨 문제가 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 말은 잘한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여러 방법 중에서도 근본적으로는 취약한 부분의 인력과 예산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스스로 말했으면서도, 정부 예산편성이나 국회 예산심의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매우 추상적이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당장 작년 말을 기억해 보더라도 당시의 가장 주된 쟁점은 국회폭력사태였다. 어느 한 신문, 어느 한 채널에서라도 작년 문제가 컸던 문화재청이나 식약청의 예산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다는 기획기사 한 꼭지라도 내보냈더라면, 이런 문제들이 매해 이렇게 누적되었을까?

 

 탈크 베이비파우더 사건이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2009년 4월 6일은 문화재 쪽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다. 숭례문에 불이 났던 2008년 2월 10일도 식약청 쪽에서 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2008년 2월의 식품 안전관리에, 2009년 4월의 문화재 관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한편 공교롭게도 낙산사가 화재로 불탄 것은 2005년 "4월"이었다. 2009년 "4월"의 날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될 수 있을까?

2009.04.06 17:38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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