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의 관심사 중 한가지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이다. 재임기간 중에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직접 받은 것은 아니고 부인이 받았는데 재임 중에 알고 있었는지 여부, 사용처가 어디인지를 검찰이 조사 중인데 검찰이 적용하는 게 포괄적 뇌물죄다. 포괄적 뇌물죄는 법전에는 적시되지 않았지만 정치인들, 특히 전직 대통령 처벌하는데 쓰는 법이다. 포괄적 뇌물죄가 처음 적용된 사람은 전두환, 노태우다. 재벌총수들 청와대로 불러 강탈하다시피 돈 걷어들인 걸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해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추징금 2205억 과 2628억이 선고되었다.
전두환, 노태우처럼 직접 돈을 받았으면 사법처리에 문제가 없는데 노무현의 경우는 직접 안 받고 가족들이 받았는데 그걸 재임 중에 몰랐다는 것이다. 벌써 몇 달 째 검찰은 노무현을 옭아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심지어는 포괄적 뇌물죄 공범이라는 표현까지 끌어들이고 전가족을 소환해 압박하면서 범죄 입증에 골몰하고 있다.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라는 비판에도 아랑곳 없이 노무현의 범죄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수구언론은 이것을 각색하고 포장해 여론재판에 회부하면 된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전두환, 노태우는 통치자금으로 썼지만 노무현은 개인이 썼으므로 더 나쁘다."했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언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법처리 될 것이다. 그가 가족들이 돈 받을 걸 재임 중에 알았던 몰랐던 죄가 있던 없던 각본에 따라 사법처리 된다. 노무현을 사법처리 하는 것은 노무현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진보개혁 세력에 도덕적 치명상을 주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몇몇 인사들이 비리 뇌물에 연관되어 도덕적 비난과 더불어 사법처리 됨으로써 진보개혁세력은 도덕적으로 손상을 입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마지막 목표는 노무현 이었다. 노무현의 사법처리는 진보개혁 세력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는 마지막 수순이다. 즉 화룡점정이다. 국민들이 "그러게 가진 놈이 해야 먹더라도 덜 먹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걸로 성공이다.
선천성 도덕 결핍증에 걸린 무도덕 정권인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으로서는 정적에게 도덕적 치명상을 입혀야 할 필요가 있다. BBK 한가지만으로도 퇴임 후 사법처리가 "떼 놓은 당상"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경제 살린다고 호언장담 했을 때 국민들은 도덕적 결함에도 이명박을 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제대통령은 전세계가 불경기라며 경제 살릴 능력이 없음을 보여줬다. 북한은 로켓을 발사하니, 인공위성을 발사하니 하는데 "우리는 나무를 심겠다."면서 대북관계의 한계를 드러냈다. 대북관계에 관해서 무책이 상책인 모양이다. 무능한 정치권력일수록 정적이나 반대파에겐 가혹하게 마련이다.
소고기 수입반대 한다고 유모차 끌고 나온 가정주부들을 전문시위 꾼으로 몰아 물 대포 퍼붓고 인터넷에 글 올리던 미네르바 구속 시키고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하며 온갖 악법을 부활해 공안정국으로 되돌아 가려는 걸 보라. 그게 정상적인 정치권력이 할 짓인가.
올해가 기축년이다. 기축년은 진보개혁세력에게 악몽의 해가 될 것이다. 4.29재보선에서 선전했지만 그건 다가올 대재앙에 대한 약간의 보상에 불과하다. 역사는 그것을 말해준다.
노무현의 사법처리와 이명박 정권을 보면 420년 전 기축옥사가 생각난다. 1589년인데 선조22년 일이다. 황해감사가 한준이 비밀장계를 올려 모반사건을 알렸다. 전라도의 정여립이 모반을 했다는 것이다. 정여립은 전라도에서 사람들 모아 대동계를 하고 있었는데 장계는 황해도에서 올라왔다. 이 비밀장계 한 장으로 천여 명의 선비들이 피해를 입는 기축옥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조선인구를 500만 명으로 추정하는데 선비 천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면 엄청난 피해다. 피해의 대부분은 전라도 선비들이 당했다.
정여립은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다 선조17년(1584년) 홍문관 수찬(정6품)을 끝으로 사직하고 고향인 전라도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며 대동계를 조직했다. 정여립은 천민들에게도 반말을 안 쓰며 인간은 평등하다고 강조했다. 천하는 한 사람 것이 아니고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백성의 뜻에 따라 왕을 세우는 세상을 꿈꾸었다.
왕조시대에 정여립의 그런 사상은 위험했다. 뿐만 아니라 정여립은 서인 출신으로 이율곡, 성혼 밑에서 배웠고 송익필의 추천을 받았는데 이율곡이 죽자 스승을 비판하며 당적을 바꿔 동인이 되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사회에서 스승을 비판한다는 것은 강상(綱常)의 율(律)을 범하는, 요즘 말로 하면 반인륜 범죄였다. 정여립의 이런 언행은 정적에게 이용되었다. 서인들은 정여립을 이용해 동인들을 말살하기로 했다.
재갈량 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는 송익필이 각본을 쓰고 정철이 감독, 성혼이 조감독을 맡았다. 마치 검찰과 언론이 노무현과 개혁세력을 말살 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선조는 이것을 왕권강화에 이용했다.
선조는 27명의 조선왕 중 가장 무능한 왕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해군에게 분조(分朝)시켜 왜군들의 화살받이가 되게 하고는 자신은 신하들 모아 명나라로 망명하려 했다. 명나라가 망명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측근 이끌고 명나라도 망명하려던 선조로서는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왜군과 싸운 전쟁영웅들이 달갑지 않았다. 그것은 해방 후 사회 주류로 등장한 친일세력들이 독립군 출신을 껄끄러워해 제거한 것 과 같은 경우다. 의병장 김덕령을 역모로 몰아 죽이자 같은 의병장 곽재우는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하다시피 살아야 했다. 이순신 장군의 자살설이나 은둔설이 나도는 것도 전쟁영웅을 대하는 선조의 태도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런 무능한 왕이 왕권에 도전한다거나 체제에 도전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고 가혹하게 대했다. 이명박 정권이 세계적 불경기나 북한문제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면서 가정주부들이나 미네르바는 철저하게 탄압하는 것처럼.
정여립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잡혀와 고문을 당하며 자백을 강요 당했다. 조선시대에도 범죄를 처리하는데 3번 심사했는데 역모죄는 단심이었다. 그래서 의금부에서는 자백을 받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그때 동인들은 대개 멸문지화를 당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상관 신분이었는데 오늘 잡혀와 형틀에 묶여 장살(杖殺)당했다. 이발의 팔순 노모와 열살 짜리 아들도 잡혀와 장살 당했다. 역모의 주범(?) 정여립은 금부도사가 오자 자결을 했다. 처음에 황해감사 장계가 올라왔을 때 조정에서는 정여립이 전라도에서 올라와 선조 앞에서 유창한 언변으로 해명을 하면 사건은 그냥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고 선조 역시 처음에는 정여립이 역모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 생각했다.
정여립의 자살도 정철이 암살한 후 자살로 위장 했다는 의혹이 있다. 기축옥사가 조작 되었다는 무수한 증거 중 한 가지만 들어본다. 선조실록 23권 기록이다. 유생 선홍복이 잡혀 왔을 때 정철이 친한 금부도사를 시켜 선홍복에게 편지를 전했다. '이길, 이발, 백유양을 끌어 넣으면 너는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백한 후에 선흥복은 사형을 당했다. 형장에서 선홍복은 울부짖었다. '내가 조영선(정철의 의원)에게 속아 무고한 사람들은 끌어 들었으니 나는 죽어 마땅하나 부끄럽기 한이 없다'
선조는 기축옥사 후 득세한 서인들이 말을 듣지 않자 "내가 간혼독철(간사한 성혼 과 악독한 정철)에게 속아 어진 선비들을 죽었다"고 후회했다. 기축옥사가 조작된 사건이란 것은 그 후 피해자들이 복권되는 과정에서도 알수 있다.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던 장래가 촉망되던 선비들이 죽어갔다. 천재 소리를 듣던 정여립, 이발을 비롯해 정언신, 홍종록, 정창연, 백유양, 최영경등이 죽어갔다. 전라도 선비들이 정철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당했는지 지금도 전라도 어느 사대부 가문 후예의 집안에선 고기를 다질 때 '철아, 철아' 한다지 않는가?
서인은 그렇게 정적을 몰살 시키고 권력을 장악했으나 그로부터 3년 후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당했다. 노무현을 사법 처리해 진보개혁세력 말살 시키려는 수구세력 한나라당 과 이명박 정권을 역사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N Drea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5.16 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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