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은 과 우리의 과제

참여정부와 실용정부 사이에서

검토 완료

박철민(eurocom)등록 2009.05.31 15:26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우리의 과제

1,

바보 대통령 노무현 제 16대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내려 가 살던 그의 고향 봉화마을 뒷산, 일명 부엉이 바위 아래로 뛰어내려 서거한 후 국민장이 거행 되었습니다.
유해는 자살하기 전 그가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유언대로 화장하여 고향인 봉화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택 뒷산에 안장될 예정으로, 현재는 그의 부모들의 위패가 안장되어 있는 봉화산 정토원이라는 암자에 임시 안치되었습니다. 49재가 끝난 후 서민 대통령 노무현의 분쇄된 유해는 봉화산에 뿌려질 것이라 합니다.

국민의 정부를 이은 참여정부가 끝난 후, 나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정치경제의 현실과 우리의 나아갈 길-[부제]참여정부의 과오와 한계'라는 글에서 신자유주의와 자유경제체제의 기치를 업고 등장한 노무현 호가 진보적 색채로 무장한 분배 정책과 전반적인 사회불안을 양산한 채, 경제를 등에 업고 진군한 우파 실용정부에게 힘없이 자리를 내주는 광경을 우려했었습니다. 또한 참여정권의 소수 수혜자들이 신기득권자로 물러나 또다시 새로운 기득권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우려하였습니다.

좌익이나 우익이니 라고 하는 인위적인 형태보다는 보수와 진보라는 원래의 상식으로 논리를 전개할 때, 보수주의의 이기적이고 고정화된 틀에서 탈출하여 진보적인 이상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안착을 갈구하던 지난 10년은 분명 민주주의의 황금기였습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심은 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왕적 대통령상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왕가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도 미국적인 민주주의의 신봉자로서 비록 반쪽이었지만, 대한민국의 탄생의 지렛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뿌리내릴 줄만 알았지 실천에는 미흡하여 급기야는 자신이 심어놓은 그 민주주의의 덫에 의하여 대통령직을 하야하고 고국을 떠나 하와이로 가서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의 서광을 엽니다. 그 민주주의가 1987년까지 독재 세력들과의 항쟁기를 거쳐 6.29선언 이후 참된 민주주의의 법통을 세울 때, 한반도의 절반이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물론, 일제강점기 이후 500년을 이어온 조선을 이어 새롭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되어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나라는 고요했지요. 조선은 망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불법 강점으로 잠시 법통이 끊어졌다가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왕조는 李씨에서 金씨로 바뀌었지만 말입니다.

2,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이명박님은 제17대입니다만, 역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하신 분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스스로 서거한 노무현 까지 총 9명입니다. 그 사이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사이 과도 내각을 허정이 이끌었고, 제2공화국의 실세는 장면 총리였으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국무총리이던 고건씨가 잠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었으므로 3분 정도 더 있었던 셈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 서민 대통령이라 합니다. 맞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박사님이나 아버지로 불리길 원했던 노인으로 조선 4대왕인 세종대왕의 형 양녕대군의 아드님의 후예인 왕가입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타의로 물러났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인물이었으나 너무 오래하다가 부하의 총에 맞았습니다. 1974년에 문세광의 총탄에 가신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에서 백주대낮에 광화문 한복판에서 왕비를 잃은 설움에 오열하던 백성들이 들끓었듯, 그 또한 가장 긴 장의인 국장國葬으로 9일간의 애도기간동안 전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었습니다. 그 후에는 천문학적인 통치자금(?)을 떡주무르듯이 하다가 결국에는 자식들 좋은 일만 만들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던 대통령(전두환, 노태우)들을 보게 됩니다. 물론 비극의 시대를 살다가는 바람에 비교적 덜 때가 묻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2006년에 치르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우리는 2009년 초여름, 생각하지도 않은 국민장에 온 국민이 몸살을 앓고야 말았습니다.

자신 스스로가 바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안 것은 1988년 5공 청문회에서였습니다. 당시의 청문회 스타(장석화, 김동주, 노무현 등)들 중 한사람이었던 그 젊은 국회의원은 모두가 쩔쩔매던 정주영 현대회장에게도 대들더니 급기야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던 것입니다. 한창 혈기방자한 젊음일 때의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통쾌했었습니다. 그 후 총선에서 소수여당으로 밀려난 민주정의당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민주공화당을 합쳐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으로 탄생했을 때, 자신을 공천했던 김영삼에 반기를 들고 이기택, 김정길과 더불어 꼬마민주당에 남아 있던 사람이 노무현이었습니다. 1991년에 대선에서 3등을 한 김대중호의 평화민주당이 어떤 일인지 흡수하당을 하지 않고 꼬마민주당과 당 대 당 통합이라는 카드로 악수하여 민주당을 탄생시킵니다. 그 후 1992년에 새로이 짜여진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되면서 노무현의 정치적 야심은 불타오르고, 그 무렵인 1994년에 낸 자서전이 지금 회자되는 '여보 나 좀 도와 줘'입니다. 그 에세이에서 부자가 되고 싶어 변호사가 된 인간 노무현과 요트까지 타 봤던 경험으로 정치하지 말라던 아내 권양숙 여사, 처가가 좌익집안이어서 겪은 얘기 등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의 깊게 본 것은 당시에는 원외의 그저 주목받는 정치인의 하나에 불과했던 노무현에게서 보았던 대권에의 도전의지였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당시 그의 에세이집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고, 국민의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면서 당시의 실권자인 이인제와 한화갑을 물리치고 대통령 후보로 낙점되자 당시의 대세론을 뿌리치고 어쩌면 그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긴대업과 정몽준이라는 조연과 노사모라는 열성팬들, 그리고 거대 야당 총재 아들들의 병역비리 문제가 유권자들의 뇌리에서 정리되지 않으면서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집권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가진 것(기득권)을 내던지면서 성장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그 좋은 금배지를 초선 때 내던지고 잠적했었으며, 종로에서 출마하면 될 것을 굳이 부산을 고집하여 연거푸 낙선, 바보 노무현이 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바보 노무현과 우리 사회에서 일제강점기에서 얻은 혜택으로 기득권으로 자란 1%가 좋아하지 않은 덕에 대다수 없는 사람들과 바보(바보란 곳 우리 사회의 소수 정치엘리트, 즉 사회지도층이 나인 80~90%정도의 시민과 도시빈민, 농어촌 서민층을 말한다.)들 덕택에 대통령이 되었고, 또 그 바보들 덕택에 탄핵을 받고서도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 5년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탄핵을 자초한 덕분에 당시의 열린우리당을 원내 제1당으로 만들었고, 메스미디어인 방송의 위력을 알고 있었기에 거대 언론들인 조중동과의 싸움에서도 그토록 침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서거 이후 모든 방송들이 앞 다투어 그에 대한 지극할 정도의 애도를 보내 방송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유는 있습니다.

3,

그 바보 노무현이 이번에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참여정부의 지상과제이자 화두였던 도덕성과 가족, 못다 이룬 우리 사회의 그늘에 가려진 민주주의를 위해 바꾸었습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던 그의 의지도, 대통령도 실정법을 무시하고 통치행위라는 미명 아래 국가의 주적인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는 마당에 이제 낡은 제도인 국가보안법은 폐기하여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대통령으로서의 자못 위험스런 목소리도, 평검사들과의 격의 없는 자리를 마련하여 공격을 받는 막가는 자리에서도 웃으며 권위주의의 탈을 스스로 벗어버리려던 그 지극히 민주적인 발상도 이제는 한 줌 재로 화하여 봉화산에 뿌려집니다. 잘 했던 못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기에, 또한 전직 대통령들이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수천 억, 수조 원을 수뢰하는 마당에 640만 달러(?)로 양형을 받고 전직 국가원수의 예우를 박탈당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는데 현 정부가 강행했기에 그를 보내는 국민들의 슬픔은 더한 듯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는 분명 짚고 넘어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참 기득권은 300년을 이어 온 경주최씨 가문이 스스로 해체한 1960년대 이후, 사라졌습니다. 기득권이란 오랜 동안 존경받는 집안을 의미한다면, 그런 집안은 이제 이 땅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일제강점기에 혜택을 입고 이승만 정권의 무능으로 숙청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부와 권력, 그리고 언로言路를 열어 간 일부의 세력들을 우리는 기득권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신기득권자들이 생깁니다. 이들은 새로운 정권이 생기면 그 지도자의 주위에서 지도자의 집권 기간 동안 혜택을 받는 정치엘리트들 , 즉 엽관주의의 보은 인사들입니다. 대우를 일으킨 김우중씨가 수조원의 분식회계로 외국에서 도망 다닐 때, 그와 같이 회사를 일으키고 그와 비슷한 부와 명성을 챙겼던 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이 챙긴 그 천문학적인 비자금은 지금 다 어디 있습니까? 하와이에서 고요히 영면한 이승만 대통령을 제외하고 경제산업화의 아버지와 독재자로 극명히 삶이 갈린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깨끗했지만, 그 자식들 중 어떤 분은 지금도 육영재단 일로 말이 많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9만원 밖에 안 남기고 그 엄청난 통치자금을 자식들과 부하들에게 다 나눠줬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새롭게 기득을 쌓아가고 있겠습니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전과 재임 중 북방외교 외에 제대로 한 일이라고는 한국통신이 만든 이동통신 회사를 사돈 기업인 선경에 주어 거대 통신회사로 성장시킨 공적(?)과 그 전에 대한석유공사를 줘서 지금의 SK주식회사라는 거대기업을 만든 일, 그리고 그의 수족이던 박철언을 지금까지도 자기의 여자들이나 사람들과 법적인 분쟁이나 나누게 한 일밖에 없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친 김홍조 옹 덕택에 정치 생활 편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집권 기간 동안 그의 아들과 수하들의 수뢰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찬반이 너무 극명하게 갈려 있어 의견을 내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대통령이 되기 전의 금전적 과정과 대통령이 된 후, 대북 친선으로 결실을 본 노벨상 문제가 선명하지 않고, 그의 아들들의 수뢰 문제와 그 많은 참모들이 저지른 과오는 알고는 있으나 발성하기에는 무언가 개운치 않은 일일 뿐입니다.

4,

노무현 정부인 참여정부의 모토는 도덕성이었습니다. 그들은 노사모가 마련한 돼지저금통을 깨서 선거에 보탰고, 십시일반으로 노력하여 바보 노무현을 '큰 부자와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는 그 어려운 자리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앉혔습니다. 그러자 기존의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사람들이 마구 등장했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무혈입성했던 386들은 한 자리씩을 꿰차고 앉았고, 40대 초반의 미모(?)의 변호사가 법무장관이 되었으며, 이장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행정자치부 장관에 기용되었습니다. 어느 법무장관은 초유의 법무장관 거부권을 행사하여 오랫동안 국내에 오지 못하던 송두율을 사면하기도 했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진보적인 색채의 정당에서 의원들이 양산되고 방송은 남과 북이 남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북한과의 연합방송을 자주 양산했습니다. 그들이 과감하게 진보적인 색채의 일들을 추진해도 국민들은 그들의 도덕성을 믿어주었고, 경제정책의 실책도, 낙제점의 국가경영능력도, 국제경제외교에서의 난맥도, 분재를 추구하다가 생긴 양극화의 심화도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끝난 후, 실용정부가 행하는 전 정권에 대한 복수극이라도 백번 양보해도 그들 또한 다른 정부의 정치엘리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서로 피를 나누던 동지애로 서로 주고받은 자금도, 분명 정치자금이요, 댓가성이라는 명패가 들어갑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결국은 대법원에서 예정된 수순처럼 불과 61억 원을 종자돈으로 수조 원으로 불려 경영권을 승계 받은 엄청난 사건에 '무죄' 판결을 받는 삼성의 경우처럼, 전방위적인 로비의 댓가는 달콤한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당선 축하금(?)을 건네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얼마인지는 당연히 모릅니다. 그러나 어림짐작하기로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이겠지요. 승자독식이라고 한 사람이 다 가질리는 만무하므로 공평한 분배는 이뤄질 것입니다. 공과의 양과 질에 따른 보상은 즐거운 일입니다.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유난히 똘똘 뭉친 것이 심하게 표현하면 마치 그들(?) 조직 같았습니다. 의형제들은 끈끈했고, 혈기왕성한 386참모들의 의욕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지식과 결합될 때 나오는 혼란의 도는 심했고, 곳곳에서 아마츄어리즘에 대한 비판은 거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제애로 이를 이겨냈고, 무난하지는 않았지만 5년을 보냈습니다.

5,

실용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의 성장과정을 건국화 - 민주화 - 산업화 - 선진화의 4단계로 바라보는 개발 지향적 정부입니다. 과거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고, 일본고과 굴욕외교를 통해 유,무상 5억 달러를 들여왔으며,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수출하고,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하여 달러를 벌던 시대에 근면과 성실 하나로 입지전적인 자서전을 써내려 간 개발 산업 시대의 우량아입니다. 진보는 이상이므로 복잡한 이론과 철학이 필요하지만, 개발 산업화에 따른 선진주의는 근면과 노력과 실천이 주 모티브가 되므로 진보처럼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에게는 우직할 정도의 신념, 즉 '하면된다'라고 하는 행동 우선주의의 폭발력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의 진보정부와 새롭게 들어서서 갈등을 겪는 보수정부의 딜레마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경제입니다. 만약에 지난 10년간의 진보정권의 실험에서 경제가 플러스 상태로 계속 굴러갔다면 정권이 다시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갈등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경제의 실정은 정권을 도로 보수판으로 기울게 했고, 전반적으로 사회가 죄경화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보수판 사람들이 시계추를 우측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추세에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은 좋은 약재입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보는 도처에 있는 것이고, 측근 참모들의 비리부터 조사하여 수뢰 혐의로 집어넣고 권력의 중심부를 향하는 것은 검찰이 꾸준히 즐겨 쓰던 칼날이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에 보내고 수 천 억의 추징금을 부여했지만 정작 자신은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깨끗해서였다고는 절대 보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 정권과의 밀약이 있었거나 아들들이 대신 가 준(?) 덕택이었겠지요. 차기 대권 주자는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은 작금의 최고지도자의 의중이 중요하니까요. 검찰이 즐겨 쓰는 단어 중에 '자신 한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뜻은 감옥에 보낼 것을 자신한다. 라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자유롭지 못한 사방 1평의 감옥에서 몇 개월, 몇 년을 살고 나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대부분의 정치범들은 독방에 있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견딜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미칠 노릇이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 수뢰범들이 구형된 형기를 다 채우고 나오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답니다. 대부분 몇 개월 안 되어 형 집행정지로 나와 그 후로는 조용해질 때까지 축적해 둔 정치 자금으로 골프나 등산, 또는 독서나 해외여행을 하면서 시간을 죽인다고 합니다. 하여튼, 측근들 구속되고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구속되면 현재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박탈되고 도덕성과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당신의 이상주의에 타격은 심대한 것, 그의 최후의 선택은 누군가의 말처럼 숭고한 것이든, 또 누군가의 말처럼 종국에는 몸을 버려 정권에 항거한 것이든 평범한 인간으로서 감히 행하기 힘든 행위를 통해 당신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무려 500만이 넘는 조문과 전 국민적인 애도는 물론, 현 정부에 대한 심판론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론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또한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이 조문하는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악법도 법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엄연하게 대한민국의 지도자로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얼굴이니까요. 봉하마을에 100만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고, 지금도 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도 그 분은 분명 헌법 제1조에 쓰여 있는 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민주주의 나라의 대통령이지 입헌군주국의 절대군주가 아니었습니다.

6,

아무리 억울한 죽음이라 느꼈다고 해도 물론 다는 아니지만 일 년에 자신들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 묘소에는 한두 번 갈까말까 하는 상태의 사람들이 그 먼 김해의 봉하마을까지 문상을 가 하루를 보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위에 많이 설치된 분양소에서 정성스레 고인을 애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전직 대통령님의 서거는 분명 놀라운 일이고 마음 아픈 애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의 철학의 기초 하에 정상을 벗어난 행위는 위험한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가신들이었다고는 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야 상주이니까 당연하지만, 몇 억, 몇 십 억 수뢰혐의로 감옥에 있는 죄인들을 국민장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풀어준 법원의 입장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정치 잘하라고 아는 사람에게 생각 없이 받아 쓴 돈에 수뢰라는 단어를 적용해 구속한 검찰과 현 정부가 야속하겠지만, 일반 서민들은 평생을 벌어도 벌 수 없는 거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쓴 행위는 분명 옳은 일은 아니지 읺습니까? 그리고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몇 십만 달러, 몇 백만 달러의 큰 돈(우리 돈으로 80억이다.)을 자식들의 유학 경비로 마구 보내도 괜찮은 건지 필자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슬픔에 고인의 넋을 달래며 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의 눈에서도 하염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사실 역대 대통령 중에 그토록 순수하고 여린 분도 없었으니까요. 또한 정녕 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과 같이 더불어 살려하던 그분의 그 숭고한 정신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하는 이태백이 태산泰山이고, 살아보겠다고 사업에 장사에 불철주야하다가 망해서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직도 못하고 가정도 붕괴되어 버린 사람들이 수 백 만이며,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인 이 나라, 늘어난 공무원들을 뼈대로 소수의 잘 나가는 기업인들만이 이 나라의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기형적인 이 체제에서 그래도 '가장 편리하게 사람들을 옥죄는 도구'인 정부이지만 믿을 것도 정부 밖에는 없으므로 믿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님은 그렇게 스스로를 던졌고, 용기 없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겼고 생각과 성격도 다르듯이 우리는 다르게 살아남아 새로운 역사를 또 써 갈 것입니다. 님의 얘기처럼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운명처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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