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벨스'에서 '갈릴레오'로 변신한 조갑제

보수에서도 소외되는 조갑제, 더욱 기발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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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kim gabsoo)등록 2009.06.03 09:27
"나는 졸지에 21세기의 갈릴레오가 되었다. 한국의 언론은 아직 지동설(地動說)을 핍박하는 수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표기할 자유를 말살하려는 세력은 김정일을 위원장이라고 부르지 않을 자유도 말살할 수 있는 이들이다. 광주사태를 광주항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대어드는 사람들도 있다.(조갑제의 글, '갑자기 21세기의 갈릴레오가 된 기분을 아시나요?'에서)

최근 조갑제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 '괴벨스'를 꿈꾸었던 그는 이제 '갈릴레오'로 방향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는 조갑제라는 희귀하고 독특한 인물을 잘 알고 있다. 아직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지금 보수 수구 집단에서 힘깨나 쓰는 논객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소외되고 있다. 일찍이 참여정부 시절 <조선일보>조차 '정권 전복'을 선동하고 다니는 그를 부담스러워 했다.

그때 조갑제는 <월간조선>에서 사장직을 박탈당하고 평기자로 물러났다가 방출(?)되었다. 물론 <조선일보>의 생각이 그와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렇긴 하지만 조갑제 식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다가는 또 이회창 짝 날까봐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그때 <조선일보>가 조갑제를 방출한 것은 조갑제의 본색을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 조갑제는 개인적 야망을 따로 품고 있다는 것을 영악한 <조선일보>가 눈치 챘다는 것이다. 조갑제의 개인적 야망이 무엇인지는 이 글의 제목에 암시되어 있다.

그의 '히틀러'는 박정희였다

조갑제는 일면 불행한 사나이이다. 그가 불행하다는 것은 그의 나이가 이제 환갑을 넘었다는 사실과도 다소간의 관련이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나치 정권의 선전상을 지낸 괴벨스가 되어 보고 싶었는데, 주군 즉 히틀러가 출현하지 않아 심각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히틀러는 박정희였는데, 슬프게도 그리고 뜻밖에도, 박정희는 어느 청명한 가을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이처럼 조갑제의 불행은 박정희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조갑제는 처음에 박정희를 그리 좋게 보지 않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금 보호감호소가 있는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수산대학을 중퇴하고 부산과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 박정희에 대해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하자 갑자기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유신헌법을 강행하자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조갑제는 아직 30세도 안 된 평기자였다. 그래서 박정희를 주군으로 섬길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는 이름을 내면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마침 <조선일보>는 그런 그의 야망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불철주야 노력했다. 마침내 그는 말빨이 서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일단 박정희 대신 이회창을 주군으로 섬기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에게 진심으로 간언했다. 다행히 이회창은 그의 간언을 받아들였다.

여기서부터 조갑제의 '괴벨스다움'이 나타난다.

"행정수도를 만들면 수도권 집값이 하락하여 개인부도, 은행파산으로 이어져 국가경제가 파탄난다."

"5,60대를 설득하라. 자식이 노무현 찍으면 등록금 끊겠다고 말하라고 해라."

이회창은 조갑제의 간언을 받아들여 계속 자충수를 둔 끝에 대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당시 노무현의 민주당에서는 대선 공헌의 1인자로 조갑제를 꼽는 사람도 있었다.

노무현이 당선되고 2주쯤 후인 연말에 조갑제는 국군 장교들을 선동한다.

"북한 정권을 주권독립국가로 인정하려는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유일한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규정한 헌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한 자이므로 탄핵해야 한다. 국군 장교들은 이제 그의 명령을 거부해도 된다."

얼마 후 조갑제로서는 가슴 벅찬 일이 일어났다. 자기 예언대로 2004년 노무현이 국회에서 탄핵된 것이다. 조갑제는 <월간조선> 지면을 빌어 "닉슨처럼 당장 대통령이 사임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국회를 예찬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마지막에 달았다.

주군을 찾아 헤매는 조갑제

이제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괴벨스가 되기 위해서는 '히틀러'를 찾아야 했다. 그는 극우 조병옥의 아들 조순형을 점찍었다. 무엇보다 조순형은 노무현 탄핵을 최초로 언급한 정치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조순형을 잘만 길들이면 그의 주군이 되어 줄 수 있을 성 싶었다. 그는 차기 대통령으로 조순형을 공개적으로 내세우기에 이른다.

하지만 조순형에게는 히틀러만한 강기가 없었다. 허탈해진 그는 직장 일도 소홀히 해 가며 체육관으로, 시민공원으로 옮겨 다니며 '좌익정권 타도'를 외쳤다. 사실 그의 이념은 '멸공'이고 멸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친일'이다. 그는 "독도에 집착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말했다. 다시 한 차례 그는 친일 히틀러를 물색했다. 그러나 박정희 같은 위대한 친일파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이명박을 발견했다. 그는 <SBS> 인터뷰에서 이명박밖에 없노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그는 뜬금없이 자기가 '진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영리한 이명박은 그를 경이원지(敬而遠之, 우대하는 척하며 멀리 함)했다. 그는 초조해졌다. 나이는 환갑이 넘어가는데 주군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박근혜가 부상했다. 이제 그는 두 사람 중에 누가 자신의 '히틀러'가 되어 줄 것인지 놓고 사색에 들어갔다.

그는 주군이 확정될 때까지 맡은 바 자기 일을 다 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는 2006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적화저지대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김정일이와 김대중이와 노무현이 세 사람이 대한민국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조갑제는 목소리를 한층 높여,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씨도 모두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특히 그의 마지막 말은 압권이었다.

"국가는 전쟁이 필요하면 해야 합니다. 전쟁을 두려워하면 국가가 아닙니다."

2006년 그는 일본 극우 단체의 초청을 받아 송영선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그는 "작통권을 환수하면 쌀밥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기발한 논리를 폈다. 그는 선동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적 발언은 선동이 아니다. 선동이란 비이성적이면서도 기발해야 결국은 먹힌다.

참여정부 시절 조갑제의 행태는 내란선동 행위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부자들이 <조선>, <동아> 같은 매체와 좋은 책으로 공부하여 먼저 이념 무장을 하자."
"밥벌이가 어려운 택시 기사들을 교육하여 정권 전복 여론을 형성하자."
"못사는 사람들. 젊은이들, 파출부들, 시장 상인들, 비정규노동자들을 포섭해야 한다."

소외 불만 세력을 전사로 이용해야 한다는 조갑제의 선동은 어느덧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론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귀추가 주목되는 그의 앞날

이렇듯이 한국의 괴벨스를 꿈꾸었던 조갑제가 이번에는 갑자기 갈릴레오와 자기를 동일시했다.

괴벨스는 좌파지도자 스트라서의 비서로 들어갔다가 자기의 주군 스트라서가 히틀러와 권력 투쟁을 하자 주군을 히틀러로 바꿔 나치정권의 선전상이 된다. 그는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 날 가족 모두와 함께 자살했다.

한편 갈릴레오는 1642년 바티칸 사제들에 의해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도 잘못이지만 교회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던 것은 하늘의 움직임이 바티칸의 교리와 상충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구, 즉 망원경을 일반인들에게 유행시켰기 때문이다. 1992년 바티칸은 갈릴레오 재판 회부를 사과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조갑제는 과연 괴벨스처럼 될지 아니면 갈릴레오처럼 될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조갑제'로 소외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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