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가 나는 천성관내정자의 사퇴 파동

- 새로운 인사청문회의 판을짜자 -

검토 완료

이성민(thewarrior)등록 2009.07.17 10:02

 장마의 기운이 물러나고 뜨거운 햇빛이 멀미를 일으킬 채비를 서두르는 동안 요 몇일 사이에 일어난  신임경찰총장 인선에 관련된 사태를 관조하고 있노라면 나의 심연의 정신과 육신의 내장이 뒤틀리고  구토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안내했던 표적수사의 중추기관의 장이였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사퇴로 인한 후임인사로 MB가 친히 내정한 천성관은 그와 그를 둘러싼 자욱한 비리와 부패의 안개속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두통과 구토를 유발하는 사회적 멀미이다. 이는 단순히 운나쁘게 그러한 인사가 좋지 않은 시기에 청렴과 도덕의 그물에 걸려든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관철하는 온갖 추문과 음지속에서 트러스트로  기생하는 부르주아 공직 사회의 생태학적 발현을 보여주는 일종의 실증적 학술 자료라는 점에서 더욱 멀미가 난다.

 

 

 

애초 MB는 최근 불거진 검찰쇄신에 대한 관성의 답례로 파격적인 '기수파괴'인사를 단행하며 친히

 

천성관을 지목한다. 대한민국의 어느 국가 조직이 '기수와 서열'이라는 조직의 척추를 이루는 근시대의 유물속의 자장밖에 있겠느냐만은, MB의 파격선택은 페쇄성과 특권의 표상이자 시대의 아이콘인 검찰내부에서도 개혁과 쇄신이라는 케케묵은 도도리표로 치부하기에도 분명 파장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자기본능이다. 그러나 쇄신의 직업혁명가가 되어야 할 신임총장내정자는 어떠한 인물이며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곁에 나타났는가? 새벽녂의 검푸른 안개를 뚫고 나타난 그는 제발로 당당하게 걸어온 것이 아니라 비리와 부패의 꽃마차를 타고 그 위엄스런 모습을 체득하며 앞으로의 화려한 구설수의 포문을 열어 제낀다.

 

 

 

수상스러운 지인과의 금전관계,검사의 수입을 초과한 불로소득,아들에 관한 각종 부정의혹 , 법의 수호신이란 간판의 네온싸인 뒤에 은닉해온 탈법과 편법의 보루!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위증은 그 어떤 설날 종합선물세트보다 화려하고 진귀하고 다채롭다. 온갖 위선과 기만과 거짓으로 치장된 그의 꽃마차는 사실은 시체와 구토물과 쓰레기로 꾸며진 '혐오의 수레'였던 것이다. 이는 단지 개인적 치부에 국한시키는 소규모 탈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시대의 '기득권'이라는 빛나는 유물을 소유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 악취의 미세입자가 공기를 오염시킨다. 정의의 여신, 정당한 법치의 제우스가 되어야 할 그의 자취를 해부해 보니 그와 그의 조직 그리고 그를 지목한 그의 정부는 결국 거짓의 시녀, 위선의 종이였던 것이다.

 

 

 

그와 같은 인물이, 지금쯤 각종 위법으로 오히려 조사를 받아야 할 인물이, 신임 검찰총장이라고 청문회에서 온갖 궤변과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절로 탄식의 읍소가 베어나온다.

 

이는 정부인사 비준의 지독한 페쇄성과 정무적 계략의 화학장용의 결과물이다. 인물에 대한 철저한 인사검증을 실시했어야 할 민정수석실은 수권자의 눈치보기에 급급하여 그러한 책무를 방기하였고

 

이것이 표면에 얼굴을 내민 1차적 요인이다. 그러나 1차적 요인을 잉태한것은 본원적인 0차적 요인

 

즉 그 출발점에는 공안검사의 총장기용으로 '공안 파시즘'을 화려하게 재 등장시키려한 불손한 의도의 재천명이 있었던 것 이다. MB정부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공안정국,고소영,강부자만을 위한 내각구성은 자의적 도덕규명에 따른 환원주의를 배태하였고 이것은 곧 MB정부의 궁극적 한계이다. 자신의 독자적 기지에 열심히 두손을 비벼주고 마리오네트가 되줄 수 있는 사상과 배경의 소유자라면 나라의 녹봉을 받는 공직자에게 들이대는 보편적 도덕의 칼날은 얼마든지 무디어도 상관없다는 결론이다. 하긴, 본인 스스로가 전과 14범의 의혹을 가지고 취임한지라 그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욱 소름끼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건 , 천성관 같은 인물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많이 검찰조직 ,더 나아가 공직세계에 편재하여 기생하며 불로소득이 주는 안락함에 기대어 도락을 즐기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원론적으로 생각해보자. 청렴하고 깨끗하게 공직생활을 하여 외풍이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라면 그 내밀의 치욕스러운 검은 부를 침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필시 누군가의 조공을 받고 정의를 엿바꿔먹는 은냄비처럼 취급하려는 그 반동적 기질이 수반된다. 그러한 인물이 정의란 이름과 공안,용공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기소하고 조사하였을까? 이는

 

분명 역사의 슬픔이다. 그 어떤 관용적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슬픔이다.

 

 

 

결국 그는 사퇴했다. 그의 얼굴을 씌여진 철판도 벗겨졌다. 결백을 주장하다 궁지에 몰렸고 '도덕적

 

디폴트'를 선언하며 오욕의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그으름은 여전히 상존한다.

 

개인적 야욕의 좌절이야 다분히 피상적 문제이고 우리의 관심밖이지만 이사건의 외피, 본질적인 문제는 그의 채취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둔 그 그으름의 채취는 한없이 찜찜하고 불쾌하고 씁쓸한 우리사회의 공직문화를 투영하는 자화상의 거울이다. 우리는 그 거울을 깰 수 있을까?

 

 

 

이번 천성관 사태는 한 부패한 공직자의 개인적 비리로 치부하여 튀어나온 못하나만 해머로 내려치는 근시적,일시적 접근으로 천착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번 사태가 함의하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언제까지 인사 청문회 마다 불거진 각종 의혹과 그에 따른 진부하고 고루한 해명과 변명을 들어야 하는가? 가요계에서 유행하는 '후크송'의 반복된 리듬과 달리 그들의 반복된 리듬은 나팔관과 공명을 분쇄시키는 자극적인 소음이다.

 

이번 사태를 발판삼아 새로운 공직문화, 새로운 인사문화의 도야를 계획하여야 하며 우리의 공직사회가 향해야 하는 진정한 나침반의 방향을 새로 설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결국 그나침반은 소수의

 

가진자와 기득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서민과 일반 국민으로 설정되어야 한다.이는 단순 번개

 

불에 콩구워먹는 대증요법이 아니라 공직인사와 내정에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을 수렴한다.

 

물론 새로운 판을 짜다, 해머질을 잘못하여 손을 다칠수도 있고 설계의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을수

 

있겠지만 지금의 멀미로는 우리는 절대 따뜻한 오후의 햇빛으로 나아 갈 수가 없다. 이 멀미 끝에

 

육지가 있을거라 믿는다.

 

2009.07.17 10:01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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