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갈 곳은 못되더라 내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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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quaynews)등록 2009.07.17 11:57
                   찾아갈 곳은 못되더라 내 고향

                                                                       강   상   모

찾아갈 곳은 못되더라 내 고향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전봇대에 기대서서 울 적에
똑딱선 프로펠라 소리가 이밤도 처량하게 들린다
물 위의 복사꽃 그림자 같이 내 고향 꿈이 어린다

찾아갈 곳은 못되더라 내 고향 첫사랑 버린 고향이길래
초생달 외로이 떠 있는 영도다리 난간 잡고 울적에
술취한 마도로스 담배불 연기가 내가슴에 날린다
연분홍 비단실 꽃구름 같이 내 고향 꿈은 어린다

들을 적마다 가슴에 남는 '고향의 그림자' 가사다.  박철 시인이 통키타를 치며 은은한 목소리를 울릴 때 나는 처음 듣는 이 가사에 조용히 발효되고 있던 고향이 불현듯 떠올랐다. 봄이면 복숭아꽃 살구꽃 속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겨울이면 호랑이와 도깨비 얘기로 밤을 지새우던 내 고향 산천이 감은 눈 속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늦가을 차가운 줄 모르고 바지 둥둥 걷고 앞냇가에서 살진 고기잡아 비늘 벗기고 천렵국을 끓이던 친구들은 지금쯤 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추억의 안타까움이 그리움으로 자리잡는 고향. 적도를 건너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기에 더욱 간절해진다..

그런데 어린 시절 곁에서 보았던 옛날 일까지 떠올리며 부르는 이 가사 첫 구절이 웬 일인지 부를 적마다  어김없이  목에 걸리고 겉돌았다. 고향이라는 것은 다른 유행가 가사처럼 간절히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고향이어야지 찾아갈 곳이 못된다니. 35년 전에 떠나왔어도 꿈을 꾸는 무대는 항상 고향이고 보면 찾아갈 곳이 못된다는 고향의 가사가 아주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어법으로 손로원 작사가가 억지로 떠밀었다는 의구심 마저 들어 슬쩍 '찾아 갈 곳은 잘 되더라 내 고향'으로 바꿔 불렀지만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지난 추석 고향을 35년 만에 다녀오면서 이 첫 구절이 노래에다 맛을 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정다운 추억이 머리 속에 화석으로 자리잡은 고향은오늘도 어린 시절 그 추억을 여기저기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꿈에 아련하게 어리면서 그립고 정답게.

올해 35년 만에 처음 추석을 고향에서 맞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5년이 지난 고향의 변화가 더욱 실감났다.

"형님! 오랬만에 고향에 오셨군요."

유일하게 고향에 남아 선산을 지키는 6촌 동생이 반갑게 맞았다. 눈에 선한 고향에 왔건만  그러나 어릴 적 철 없이 뛰놀던 고샅에는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개 한마리 나와 컹컹 거리지 않았다.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 집이 많고 그것들은 비바람에 쓰러져 폐허로 변해갔다. 75세대가 살며 형님 동생하던 동네가 겨우 15세대가 남았고 그것도 겨우 양노당을 찾아서 노인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지게에 목판을  얹고 파는 엿장사만 와도 달려가 돈 없어 침만 삼키던 꼬마시절  은 기억나는데 그시절의 친구들은 하나도 만날 수 없고 소식마저 감감했다. 선영의 묘가 있던 선산은 형태를 완전히 바꾼 골프장이 되어 어느 팔자 좋은 사람들이 굿 샷을 날렸다. 가재 잡고 버들피리 불던 앞 들에는 산 허리를 자른 포장 도로가 지나갔다.  언제나 풍덩풍덩 미역 감고 고기 잡아 비늘 벗겨 벗들과 천렵 즐기던  맑은 개울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느 하나 옛날의 평화롭고 아름답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 추억 어린 자리는 물론 친구 하나 없는 삭막함에 넋두리가 절로 나왔다. 

이번 추석은 찾아갈 곳 못된다는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세월 속의 고향을 되새겨 보는 좋은 기회였다. 화석된 어릴 적 추억을 눈으로 확인한 고향의 강산 변화는 실망만 안겼다. 나 자신이 고향을 벗어나 이렇게 빠른 변화를 겪는데 고향이 그대로 남아 있길 바라는 욕심은 철 없는 감상일 뿐이다.

'찾아갈 곳은 못되더라 내 고향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35년의 공백을 메꾸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내가 한 잔  걸치고  형언하기 어려운 감회에 젖어 술기운에 혼자 부르기에  얼마나 좋은 가사인가. 인생이라고 하는 것 고향이라고 하는 것, 바로 이런 되새긴 추억의 교차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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