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갖은 엄마가 과연 객관적인 성교육을 할 수 있을까?얼마전 오마이뉴스에서 한 중학생 엄마의 글을 읽었다. 글 내용은 우리가 흔히 옆에서 혹은 자신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이다. '안좋은 친구'와 어울리는 우리의 자식, 특히 딸이 무슨 일을 당할까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의 표현들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자식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전까지 성관계를 갖지 않게 하려는 의지도 보인다.난 이제 30대 후반에 들어선, 아직까지는 청년에 속하는 젊은 사람이다. 따라서 중학생, 고등학생 딸을 둔 아버지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본인이 말하는 것들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당사자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개인적 감정을 멀리 떨치고 객관적인 상태에서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기에 나의 생각들을 풀어보기로 결심했다.▶현실에서의 청소년의 성조금 있으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청소년과, 특히 여중생이나 여고생과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학교나 상담단체등의 경우도 매한가지여서 그들의 실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그들만의 공간에 들어가본다거나 청소년임을 가장해 그들과 대화한다면 어렴풋이 그들의 생할을 알 수는 있을 것이다.한 설문조사 기관이 2002년도에 발표한 것을 보면 중고등학생중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남학생이 약 32%, 여학생이 약 13%정도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성경험이 있는 학생의 첫경험 시기는평균 남학생이 15.2세 여학생은 13.7세로 나타났다고 한다. 만 15.2세라고 하면 중3에서 고1때이고 13.7세면 중학교 2학년 정도로 볼 수 있겠다.우선 우리나라의 설문조사의 특성과 청소년의 성경험이라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행동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에 표준편차나 오차는 실제로 발표한 것 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성경험이 없는 학생이 있다고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과를 생각해 보자면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일 수 있겠다.우선 말이 안되는 부분을 생각해보자. 보통 남학생의 경우 자기와 동년배 혹은 연하의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여학생의 성관계 대상의 수가 남학생보다는 여학생 보다는 3배 정도가 많다는 결론이 되는데 이는 여러면에서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1:1 내지는 1:1.2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무려 1:3이라니 말이다.▶당신의 자식에게 왜 성관계를 하면 안된다고 말할 것인가?사회가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건 간에 우리네 아이들이 성에 대해서 굉장히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야동은 부모의 감시 여부를 떠나서 그들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구해서 우리도 구경하지 못한 새로운 야동을 구해볼 수 있다. 그룹섹스나 스와핑 혹은 새디즘이나 메조히즘으로 가득찬 하드코어물까지 말이다. 당신의 자식들에게 '채찍으로 때리면 느낀다'라는 식의 농담을 건네 보라. 그들은 분명 피식 하고 웃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고 사춘기들의 그들도 그렇고 분명 첫사랑은 온다. 세상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사춘기의 첫사랑 말이다. 예전에 우리들은 그러한 성관계에 대해 아주 무지했고 실질적으로 어떻게 관계가 이루어지는지 조차도 모를때의 우리도 첫 경험을 한 친구가 반에는 적지 않았다. 하물며 정보가 바다를 이루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부모는 맞벌이를 해서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고 시내에는 굳이 주민등록증을 꺼내지 않아도 되는 노래방이나 DVD방과 같은 밀폐된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또한 그들은 그러한 장소에 대해서 까지 공유를 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고자 하면 언제든지 성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의 성경험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이다. 지독한 감시와 지속적인 세뇌교육이다. 혼전 섹스는 나쁜 것이라는. 과연 요즘 결혼하는 커플 중 얼마나 많은 자들이, 아니 여러분까지 포함해서 대다수의 사람은 결혼식 첫날밤에 첫경험을 치루는가?시기의 차이는 분명 있다 내 주위에는 30대 중반의 아가씨는 아직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도 있고 나보다 4살 연하의 후배 부부는 중학생 딸을 둔 부부이니 말이다. 하지만 절대 다수는 혼전 경험을 한 상태에서 결혼식을 맞이한다. 첫경험의 상대가 지금의 배우자이냐는 이제 시시콜콜한 옛날 이야기가 된지 이미 오래이다.만약 당신이 이러한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면 우리 아이가 혼전순결을 간직하는 1%에 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첫 경험을 허락할 수 있는 연령은 몇살일까? 형사적 미성년자를 벗어날때일까?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일까?아마도 당신의 딸이 30살을 훌쩍 넘긴 노처녀라 할지라도 다른 남성과의 하룻밤이 예상되는 둘만의 여행을 간다고 하면 당신은 분명 펄쩍 뛸 것이다. 부모 마음이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인정하려 애를 써도 당신의 자식이, 특히 딸이 어떤 이상한놈에게 이끌려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괴롭고 구역질 나는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말이다.어떤 미국 영화에서 나왔던 대사 한마디가 생각난다. 딸아이가 남자 친구와의 진한 스킨쉽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딸아이를 나무랬던 이혼한 엄머가 있었다. 하루는 이 엄마가 남자 친구와 방에서 섹스하는 것을 그만 딸에게 목격당하고 만다. 그리고 벌거 벗은채 있던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이 딸아이는 외친다. '왜 이 좋은 걸 엄마만 하려고 하고 나에게는 못하게 하는거지?'당신이 만약 그러한 상황이라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임신이 위험하기 때문에? 그건 콘돔을 끼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면 신체적으로 미성숙해서? 그들은 이미 신체적으로 당신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건강하다. 아니면 혼전순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할 것인가? 순결은 소중한 것이라 오래 지켜야된다는 동화속 이야기를 해주면 당신의 자식들이 이해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어리게만 보이는 나의 아들 딸들도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하게 되면 스킨쉽을 하고 싶고 키스를 하고 싶고 성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것을 자꾸 나쁜 것이라고, 혹은 하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미 당신은 조언자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포기하라는 뜻과 다를바 없으니 말이다.▶청소년은 성관계를 갖으면 안된다는 논리는 의미가 없다그들의 식욕이 우리와 다르지 않듯이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의 성욕 또한 우리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욕을 이기지 못해서 성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의 행동규범이 있고 지켜야할 룰을 이미 숙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 그것 뿐이다.우리가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막는다면 그들은 그런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눈을 피해 점점 숨어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중3 딸이 당신의 눈을 피해 거짓말을 하면서 남자 친구와 성관계 갖는 것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러한 사실을 표현하는 것을 원하는가? 아마도 반반일 것이다. 딸이 나에게 숨기는 것도 싫을 것이요, 그렇다고 그 사실을 알게 하는 것 또한 반갑지 않을 것이다. 뻔히 바람 핀 남편이 끝까지 거짓말을 해주었으면 하는 그러한 심정처럼 말이다.차라리 그들에게 올바란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는 것, 그리고 성관계를 갖게 될때 지켜야할 서로의 에티켓과 피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첫경험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님들이나 가족들에게 얘기했다는 그녀들의 말을 들으니 확실히 우리나라의 가정이 터부가 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물론 그들이 그러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청소년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갖을 수 있는 권리 정도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는 논리를 만들때 궤변이 되고 그 궤변은 결국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의 곁에서 떠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청소년의성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