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려지면 오히려 더 행복한 세상, <느림보 마음> 북콘서트

문태준 시인, 가수 이은미 등이 함께하는 느림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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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주(questionname)등록 2009.08.17 14:02
느린 이야기를 낭독하고 느릿느릿 노래하고

느림보의 마음으로 교감하는 특별한 북콘서트

 

 

독자와 저자, 서점이 조금 더 친밀하게 만나는 북콘서트가 요즘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출판계에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책을 출간하면 강연회나 사인회 형식으로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을 일관해 왔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저자가 직접 자신의 글을 읽기도 하고 객석의 독자가 저자의 글을 읽는 낭독회를 연다. 독자와 저자가 낭독과 음악이 함께하는 북콘서트를 통해 더 긴밀한 소통을 나누고 있다.

그동안 공지영, 신경숙, 한비야, 차인표, 이병훈 등의 저자들이 약 50명 정도의 독자들과 북콘서트를 열었다. 그런데 최근 기존의 30~50명 정도의 객석에서 이루어지던 소규모 북콘서트와 달리 600명이라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교감하는, 큰 규모의 북콘서트가 열린다고 해서 화제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 서정시인 문태준의 첫 산문집 『느림보 마음』으로 꾸미는 북콘서트다. 교보문고와 노원 문화예술회관, 마음의숲이 함께 진행하며 2009년 8월 26일 저녁 7시, 노원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독자와 저자, 초대 손님들이 함께 어우러진 이번 공연은 인터넷에 길들어진 요즘 세대들에게 새로운 공연문화를 제시하고, 책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해 준다.

 

"책을 읽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해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도록, 책을 많이 읽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만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서 독서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싶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독서 문화라는 면에서 '북콘서트'는 책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즐거운 자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보문고 홍보팀 정길정 대리의 말이다. 그는 앞으로도 책을 통해 좀 더 다양하고 뜻깊은 행사를 만들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가수 이은미, 소설가 김연수, 소설가 천운영, 가수 김현성이 함께하는 이번 북콘서트는 콘서트의 형식을 빌려 저자가 직접 책을 낭송하며 독자들과 대화한다. 또한 가수 이은미의 노래와 그녀가 낭독하는 문태준 시인의 글, 그리고 가수 김현성의 라이브 통키타 연주도 들을 수 있다.

가수 이은미는 자신이 아주 힘들었던 시절, 문태준 시인의 글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 글을 통해 힘든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문태준 시인 역시 가수 이은미의 노래와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에 감동을 받으며 그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 「맨발」의 시인 문태준. 서로의 시와 노래로 힘든 시절을 이겨냈던 둘은 이번 북콘서트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다. 가수 이은미가 무대에 나와 맨발로 열정적인 노래를 부를 때 문태준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문태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맨발」에 실린 시, 「맨발」의 전문이다. 이번 산문집 『느림보 마음』에서도 그는 맨발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모든 삶은 맨발의 삶입니다. 우리의 조건은 다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신발 없는 맨발로 뛰는 것입니다. 맨발은 수식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완전하고도 행복한 삶을 위하여 그 아름다운 맨발로 뛰고 뛰는 것입니다. 인생은 오늘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단 한 번뿐인 오늘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영원답게 살아야 합니다. 증기기관차의 화통 같은 열정이 우리의 내일을 가꿉니다. 있는 힘을 다하는 당신이라면 나는 당신의 맨발을 손수 씻어주고 싶습니다. 

 

그렇다. 모든 삶은 맨발에서 시작한다. 신발 없는 맨발로 뛰는 것. 있는 힘을 다해 뛰는 당신의 맨발을 손수 씻어주고 싶다는 시인.

이날 출연하는 작가, 가수들은 모두 문태준 시인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향 김천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소설가 김연수와 문태준 시인은 데뷔 전부터 함께 책을 읽고 자신들이 쓴 글을 보여 주며 문학의 꿈을 키워 온, 오래된 문우이자 도반이다. 소설가 천운영 역시 김연수, 문태준 시인과 데뷔 초부터 문학적 자극과 공감을 주고받으며 함께해 온 동년배 친구다.

이들 대열에 가수 김현성이 흔쾌히 참여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윤도현의 「가을우체국」을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다. SBS 「책하고 놀자」, KBS 「책마을 산책」, 케이블TV 「시처럼 노래처럼」 등 책과 시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꾸준히 해올 만큼 책을 사랑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2009년 늦은 여름밤, 한갓진 마음으로 독자와 이들이 벌이는 느림 북콘서트에 대해 문태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이 너무 신속합니다. 쉴 겨를과, 나란히 가는 옆과, 늦게 뒤따라온 뒤를 살려냈으면 합니다. 나의 것을 다른 데로 돌릴 줄 알았으면 합니다. 차마 다하지 못하는 말은 남겨 두었으면 합니다. 세상의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느림보 마음이란, 느리게 가자는 의미보다는 조금 배려하고, 나누고, 자연의 보폭에 맞춰 마음의 휴식을 찾자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북콘서트를 엽니다."

 

마음과 삶에 휴식을 주는 이번 느림 북콘서트는 성난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 사회에서 한 걸음 쉬어 가며 진정한 나를 찾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의 느림 북콘서트 ⓒ 문근주

 

 

 

2009.08.17 14:00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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