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국주의는 빗나가지 않았다

재범논란, 탈식민주의론으로 승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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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angello)등록 2009.09.10 10:58
나는 몇 달간 신촌의 한 유명한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회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거기서 느낀 것은 미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돈 벌기 쉽고 대우받으며 살기 좋은 나라일까 하는 점이다.
(미국인들에게 나름의 고충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유치원생도 하는 생각이므로 패스)

요즘 내가 졸업한 서강대에 들어오려면 수능으로 상위 1%에 들어야 한단다.
그러나 재외국민들은 사정이 아주 다르다.
그들에게 특혜가 주어지는 것은 그들이 미국말을 아주 잘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하고 선진문물을 알고 있는 소위 제국주의의 시민권자들에게 속국인 한국에서의 생활은 대우 받으며 손쉽게 돈벌고 잘 살 수 있는 하나의 이상적인 환경이다.

나는 이런 반성 과정에서 내가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캄보디아에서 잠깐 머물던 때가 생각났다. 한국에서는 별 볼일이 없던 내가 그들에게 나는 돈많고 능력 있으며 피부가 하얀 동경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나는 의도하지 않게 그들 위에 군림하는 제국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한국인더러 편협하다고 욕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기들 나라가 소위 제3세계 국가들에게 어떤 짓을 하고 다녔고, 지금도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반성할 줄 아는 서양인이거나,

아니면 (아-제국주의자인) 한국인들에게 온갖 무시와 모멸을 받으며 힘들게 이 땅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남아, 중동 및 아프리카인들이라고 말한다.  

한국인도 동남아인, 중동인, 아프리카인들에게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서구인(중국인, 일본인)들에게는 피해자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미국은 이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오직 가해자인 나라이며,
이것이 한국과 미국이 자국에 대한 비판을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다.

역사에 대해서 우리 문화에 대해서
왜 항상 수세적이고, 소위 "쿨"하지 못하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은
반대로 왜 우리가 우리의 상처 입은 역사에 대해서 "쿨"해야 하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쿨할 수 있느냐는 이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위안부 성노예 할머니들의 아픔을 우리 역사의 아픔이라고 여긴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로 인한 아픔도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나는 이번 사건이 절대로 재범이 개인의 "오래전"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태도는 사실 아주 오래된,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리고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오만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모든 사건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상황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그런 오만함을 가능하게 한 정치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깊게 맞닿아 있다. 이 때문에 한 개인의 철없는 행동이 절대로 개인만의 행동으로 단순환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는 재범의 언행이 낯설지 않다.
그것은 내가 숱하게 보아온 서양인들의 그것을 복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런 언행을 보이는 자들이 가진 전형화된 의식구조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는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은
한국 땅에서 기생하는 수많은 오만한 제국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가 그들(서구인들, 중국일본인들)을 닮아가면서
우리보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 다르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재범의 사태를 겪으면서 느끼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몰지각하고 폭력적이며 오만한 제국주의적 속성이다.
이것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편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국주의자들은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용서는 다른 문제이다.
누군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를 구할 때, 성숙한 사람이라면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나는 아직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한국 네티즌의 문화에 문제가 있다면 관용의 덕이 부족하다는 점일거라는 지적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가 어려운 만큼, 진정한 사과도 어려운 일이다.
상황에 몰려서 타계책으로 성급하게 제시되는 것이 사과인가.
나는 진심의 사과는 반드시 시간을 요청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그런 몰지각한 인간들 중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번 사건이 한국 네티즌의 미성숙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만 환원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나는 오히려 이번 일이 한국에서 편안히 살아가고 있는 제국주의자들과, 그런 그들을 대접하며 우러르고 있는 한국인들의 노예습성과, 우리 자신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똑같은 오만함을 반성하는 보다 발전적인 맥락으로 승화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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