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사건이 던져주는 본질적인 문제들

사상검증과 인종주의적 편견의 충돌 사이에서 궁리하다

검토 완료

곽종우(zagnbyul)등록 2009.09.10 18:54

처음 투피엠의 멤버 박재범(이하 재범)이라는 청년에 관한 논란으로 인터넷 세상이 들썩인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나는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절 파동이 홍보효과로만 작용하는 이상하고 불쾌한 현상이 조금 더 관심을 끌었을 뿐 특별히 이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점점 커져 가수의 실언과 비우호적인 사람들의 비난공세와 팬들의 방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음을 알았다. 뭐 그때까지도 그러려니 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했길래 저 난리가 벌어지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다. 여기서 그쳤더라면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은 훨씬 거대한 눈덩이가 되고 말았다. 그때 나도 대강 그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듣기에도 참 기분이 나빴다. 한국이라는 사회에 절망하고 넌더리가 난다고 공언하고 다니던 나였지만, 뭔가 이상 야릇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물론 아주 기분나쁜 느낌.

 

그러는 사이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져 급기야 팀에서 탈퇴하고 비난을 피해 미국으로 돌아가는 지경까지 갔고, 한 연예인의 철없음에 대한 단순한 논란에서 전사회적인 이슈로까지 커져버리게 되었다. 일종의 추방에 가깝다고 판단한 몇몇 사람들이 '파시즘'을 운위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했으니 이제 애써 무관심하려던 종전의 태도에서 벗어나 무언가 발언을 하고 싶어졌다.

 

더이상 무시해도 좋을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고, 무관심 속에 바라보던 내 눈에도 여러가지 본질적인 문제들이 얽혀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해서,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고, 파시즘이라는 식의 단순하고 격한 비난을 퍼붓는 방식도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부끄럽게 밝혀두자면 오마이뉴스의 김갑수씨 글에 두가지 반박 댓글을 달았다 지운바 있다. 너무 일차원적인 댓글에 그쳤던 성찰 부재의 반응에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아무도 잘 던지지 않는 문제들만 건져 냈을 뿐, 아직 답은 마련하지 못했다. 함께 궁리해 보기를 바라면서 건져올린 문제들을 펼쳐보려고 한다.

 

 

1. 재범의 글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철없는 한국계 미국인 청소년(당시의 나이로 볼 때)의 불평으로 보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 인종주의적 편견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어떤 신문의 기사에는 '한국이 싫다는게 뭐가 어때서?'라는 제목으로 비난 여론에 다소 격하게 반발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는데, 비난을 퍼부어 댄 사람들이 그저 '애국주의'에 사로잡혀 '비애국자', 또는 '매국노'를 처단하자는 식의 여론몰이를 했다고 역으로 비난할만큼 간단한 문제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 재범의 글에 흐르는 인종주의의 냄새를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류 미국인이 바라보는 이류 한국인'종'의 우월의식에 기반을 둔 비웃음'을 본 것이고, 이를 견디기 어려웠던게 아닐까. 그것도 다름아닌 '한국계 미국인'이 보여주는 인종적 편견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과 끓어오르는 분노심을 저급한 애국주의나 '파시즘'으로 매도하는 태도는 온당치 않아 보인다. 결을 세심하게 따라가며 문제를 파악하려 들지 않고 자기의 기준에 따라 무 자르듯 재단하려는 이런 식의 나쁜 이해방식이야말로 파시즘에 가까워 보인다. 이렇게 몰아간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읽고 나서라도 대중에 대한 몰이해와 우월의식의 반영이 아닌지 스스로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리 좋은 말도 남용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파시즘이나 애국주의 같은 과격한 용어라면 더욱 더.

 

 

2. 미국계 유태인 청년이 이스라엘 연예계 데뷔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못말리는 유태인들'이라고 했다면? 재일교포가 한국에 와서 미래를 설계하면서 '냄새나는 조센징'이라고 했다면?

 

과연 위에 든 극단적인 예와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럴 때 적절한 반응은 도대체 무엇일까?

 

인종주의자는 추방되어야 하는가?(물론 아무도 떠나가 등을 떠민 사람은 없다. 이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3. 그러나 '사상검증'은 바람직한가?

 

모든 인종주의는 악이다.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혼자 조용히, 또는 또래 몇사람이랑 노닥거리는 가운데 읊은 인종주의라면 어떻게 대응하는게 옳을까? 일기장에 쓴 글이라면 또 무시무시한 사상검증과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막걸리 보안법과의 거리는?

 

이점에서 자신이 없다. 사실 처음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낸 발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김갑수씨 글에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반박 댓글을 썼었지만, 이 지점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없어졌다.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은 '생각'은 어디까지가 징치의 대상일까? 저것을 행동으로 볼 것인가, 단순히 품은 생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일기에 쓴 '그'의 생각을 '내'가 단죄할 자격이 있는가?

 

 

4. 인터넷 개인매체는 일기인가, 공적 언행인가?

 

사실 이 또한 답을 찾기 어려울만큼 미묘한 문제다. 또한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쓰는 일기 대신 인터넷에서 일기를 쓰고, 이를 블로그 따위의 개인매체에 저장한다. 일부러 비공개를 해 두지 않는 이상 인터넷망에 연결되어 있는 누구도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다.

 

이것은 사물인가 공물인가? '생각'인가, '행동'인가?

 

 

5. 한국인, 한국계 외국인, 외국인?

 

한국사람들도 자주 이런다. '하여간 한국놈들은 안돼.'라고. 어쩌면 나도 그런 적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길 바라지만. 이건 분명 한국을 절망하는 차원과는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하지만 인종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같은 말을 외국인이 하면? 더 복잡하기로는 한국계 외국인이 한다면? 그것은 인종주의인가, 아닌가?

 

도대체 '재외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어떤 지위인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에 적지는 않지만 쏟아지는 질문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단순한 듯 보였던 문제가 온갖 본질적인 요소를 다 포함하는 복잡다단한 문제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일면적 인식은 부적절하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다른 시각에 대한 배척과 비난은 온당치 않다. 제가끔 이유들이 있다.

 

재범을 비난한 사람들,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애국주의'에 사라잡혔다고 매도하기는 쉽다. '파시스트들'이라고 조롱하기도 쉽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온당치 않다. 너무 평면적이고 단편적이고, 공격적이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반하는 비난은 오히려 파시즘에 가깝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매도가 바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도대체 어디까지 재단할 수 있는지 기준조차 세우기 어렵지 않은가? 막걸리 보안법을 비웃던 우리라면 더 오래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나?

 

 

아. 이 일을 어떻게 할까? 재범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허우적거린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2009.09.10 18:5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