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흥미로운 국왕의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조선 국왕의 일생』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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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순(kks35679)등록 2009.10.21 18:50
대상 도서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엮음,『조선 국왕의 일생』, 글항아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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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조선왕릉(朝鮮王陵)이 세계문화유산에,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면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다시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궁중문화이다. 조선왕릉과 동의보감을 포함하여 이제껏 세계문화유산, 기록유산,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들 가운데 대부분이 궁중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은 바야흐로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바람을 일으켰는데, 그 바탕에 궁중문화가 있었다. 우리의 궁중문화가 지닌 진면목과 매력이 전세계에 어필된 것이다.

우리는 궁궐과 궁중문화에 대해서 그다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일본에 의해 철저히 파괴, 변형, 왜곡된 탓이기도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황실과 황실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간 문화에 대한 오해, 무지, 편견이 크게 작용을 한 탓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내는 한편, 역사 연구가 다양화되고 심화되면서, 그리고 경복궁을 비롯한 각 궁궐들의 활발한 복원 정비와 더불어 거기에서 재현되는 각종 의례, 행사가 화제가 되면서, 무엇보다 문화사와 생활사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에서 궁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다. 궁중문화와 관련된 자료의 양질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음양에서 궁중문화를 전수하기 위해 노력해온 분들의 활발한 활동과 더불어 학자들의 궁중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 비록 그 일부만이 우리에게 드러나 있음에도 그 무서운 역량은 가히 엄청나다.

궁중문화(宮中文化)는 한 나라 문화의 종합이자 정수이다. 궁중문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길이다. 민중들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지배층의 역사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궁궐은 왕조의 정점인 국왕으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양한 계층이 한데 어울려 살고 일하던 곳이었다. 역사는 대립과 갈등적인 측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화합과 조화의 측면으로도 이해를 해야 한다. 바로 그 속에서 자부심이나 사명감이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궐은 참 답답한 곳이다. 감옥 같은 곳, 그래서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만을 한다면 역사에는 발전이 없다. 역사의 진정한 발전은 긍정과 부정의 균형적인 인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궁중은 답답하고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한 나라 문화의 종합이자 정수인 궁중문화의 주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진 이들의 활발하고 역동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으로서의 궁중문화의 이해는 궁중문화, 나아가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드라마 <대장금>이, 등록된 여러 세계유산들이, 궁중문화가 관광산업에 끼치는 영향력 등등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궁중문화의 주체는 바로 궁중에서 살고 일했던 저 수많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모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정점에 있는 이는 바로 국왕(國王)이다. 국왕의 올바른 이해가 바로 궁궐과 궁중문화의 올바른 이해의 시작이자 마침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왕에 대해서 심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사극이나 역사소설이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국왕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그들의 업적이나 정책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그들의 삶과 죽음, 활동에 관해 알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역사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준다고 여겨지는 사극이나 역사소설이 큰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사극이나 각종 역사 관련 프로그램의 방영은 물론 환영할만한 일이다. 문제는 잘못된 내용을 전하는, 사극의 벗어날 수 없는 기본적인 한계에 있다.

사극을 보면 국왕은 거의 매일 술에 쩔어 있다. 궁녀도 자기 마음대로 불러서 밤을 지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국왕과 신료들과의 연회는 그야말로 술파티에 다름 아니다. 국왕의 옷은 매일 화려하다. 왕비와 후궁은 국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밤낮 질투하고 궁리하는 것밖에 하지 않는 듯하다. 궁녀는 마치 왕비와 후궁의 첩자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과연 국왕의 제대로 된 모습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흥미롭고 명쾌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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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즉위년(1776) 정조는 동궐(東闕, 창덕궁과 창덕궁)의 후원 초입 부용지의 북쪽에 2층의 건물을 짓는다. 2층은 주합루(宙合樓), 1층은 규장각(奎章閣)이었다. 규장각. 바로 정조의 탕평정치의 산실이었다. 이후 규장각은 200여 년 간 파란만장한 역정을 겪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규장각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최대의 국학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곳에는 26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왕실에 관련된 자료도 수만 점이 넘는다. 하나같이 국보이거나 국보급 자료들이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러한 왕실 관련 자료들에는 왕실 사람들은 삶은 물론 그들의 삶과 죽음, 의례의 공간들, 그들이 만들어간 궁중문화에 관한 내용들이 무수히 실려 있다. 이러한 방대한 자료들에 대한 연구는 최근에야 시작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우리는 지금껏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국왕이, 왕비가, 왕세자가 어찌 살았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왔던 것이다. 수많은 오해, 편견, 무지에 우리는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그러한 오해, 편견, 무지를 바로잡아줄 자료들에 대한 연구는 지금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은 대부분 한문이나 한글로 쓰여 있더라도 고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접근하기가 어렵다. 대중들을 위한 사회 봉사를 자임하고 있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규장각 자료들을 전시하는 박물관 기능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규장각 자료들을 활용한 흥미롭고 새로운 대중들을 위한 강좌를 열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열린 '규장각 금요시민강좌'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작년 2008년 하반기에 열렸던 제1기 강좌의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방대한 왕실 자료들을 바탕으로 국왕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습, 정치, 학문, 문예, 음식, 혼례(가례)에 관한, 사실상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국왕의 거의 모든 면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아울러 국왕과 관련하여 왕비를 비롯한 왕실 여인들의 삶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강좌에 강사로 나섰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좌에서 다뤘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이 책에 담고 있다.

이 책이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은 국왕이 지닌 상징과 그 본연의 모습이라는 전제 속에서 국왕에 관해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국왕이 술마시는 모습, 궁녀와 지내는 모습 등등 앞에서 이야기한 우리의 편견, 오해, 무지는 국왕이 어떤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개념 및 상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왕은 왕조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지도자이자 정치가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데서 그러한 편견, 오해, 무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 나라를 지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바로 연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의 대통령보다도 훨씬 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국왕이라는 저 평범한 사실을 잊어버림으로써 우리는 국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대한제국을 불법으로 강점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그들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왜곡, 조작했다. 그 일차적인 대상이 바로 대한제국 황실 사람들과 그들이 활동했던 궁궐을 비롯한 수많은 공간들이었다. 우리의 국왕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출발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국왕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곧 우리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한 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국왕이 왕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상상해보라. 이것은 어찌보면 참으로 무섭고 소름끼치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국왕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곳곳에서 보이는 재미있는 서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왕실 관련 유물들을 촬영한 사진 및 그림 자료들을 풍부하게 제시한 점 등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때문에 어디서 이름 없는 궁녀의 처소에 군주가 갑자기 방문을 한다거나, 거기서 무언가 썸싱이 발생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낭만적일지는 모르지만, 가능하지는 않다는 이야기이다. ……. (장지연,「임금이 사는 집, 궁궐」,『조선 국왕의 일생』, 글항아리, 2009, 154쪽.)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두 가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첫째는 국왕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국왕이 시문을 활용한 문예정치를 펼치는 모습이라든지 국왕의 행차에 담긴 정치적인 의미, 그들이 공식적으로 임어하는 궁궐 전각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 등등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그의 은밀한 삶조차 국왕은 정치라는 테두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둘째는 매우 힘겨운 삶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은 문치(文治)의 나라였다. 국왕에게조차 강도 높은 수양과 학문의 연마가 요구되었다. 이것은 국왕의 권한을 견제하는 역할도 띠고 있었다. 아무튼 국왕은 한 나라를 이끌 만한 자질을 갖추는 것은 물론 학문 또한 뛰어나야 했다. 그리고 이 학문 수준이 신하들에 버금가거나 이를 능가할 때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거나 주도할 수 있었다. 세종과 영조, 정조가 바로 그러한 국왕들이었고, 이들의 시대를 태평성대, 중흥기, 문예부흥기 등으로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다른 국왕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면을 겸비하기 위해서 국왕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지는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왕은 각종 국가적인 의례와 행사들에 참여해야 했다. 그야말로 그들에게는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런 상황에서 매일 술을 마신다든지 궁녀와 노닥거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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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아쉬움도 발견된다. 우선 윤문의 실수와 같은 사소한 실수가 몇몇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창덕궁의 희정당(熙政堂)을 희정전(熙政殿)으로(21쪽), 연산군에게 탄압받은 덕종의 비 소혜왕후를 세조의 비 정희왕후로 잘못 쓴 것(47쪽)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연구 성과에 비추어서 보이는 문제도 있다. 방금 소개한 희정당의 경우가 그것인데, 희정당은 최근에 편전으로 보아야 한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그것은 희정당의 가운데에 '정'자가 들어간다든지 편전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기록들, 건축 구조 등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용마루에 관한 서술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왕비의 침전에 용마루가 없다 했지만, 경복궁의 경우에는 국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에도 용마루가 없다. 만약 희정당이 국왕의 침전이었다면 왜 여기는 용마루가 있는 의문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여전히 왕비나 왕실 여인들의 삶을 다룬 부분에서 오해를 지닐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병설,「"다시는 궁궐에 살지 않게 하소서."」) 글에서는 분명히 왕비가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서술하고 있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연구라든지『한중록』(閑中錄) 등의 궁중문학작품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함으로써 왕비나 궁중 여인들이 가련한 존재라는 인식을 주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궁중 여인들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주의를 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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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 같은 단점들은 단지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국왕의 다양한 모습을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고 치밀하게, 그러면서도 대중들을 위해 쉽고 흥미있게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동안 국왕에 대한 오해, 편견, 무지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21세기는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왔고, 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통문화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함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전통문화라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한국적이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이는 과거 우리 선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왔는가를 현재의 우리 눈과 과거 그들의 눈 양자를 통해 동시에 바라보는 노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눈으로만 과거를 바라봐왔다. 균형있는 바라보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균형있는 바라보기의 출발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과거에 신분이 있었고 왕조가 있었다는 그 지극히 평범한 사실에 있다. 왕조의 정점인 국왕의 이해는 궁궐과 궁중문화의 문화콘텐츠로서의 현대적 활용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균형있는 바라보기, 나아가 우리 역사와 문화의 올바른 이해의 토대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대중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준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크다 할 것이다.

세종이 다스리는 30년 동안 백성들은 그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기뻐했다. (김문식,「왕은 어떻게 교육을 받았을까」,『조선 국왕의 일생』, 글항아리,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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