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당신의 사랑이 그립다

용산참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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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미(gracecho)등록 2009.11.18 14:33
찬바람 부는 겨울이 다가오니 한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는 유난히 죽음이 많은 해였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인물들이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소중한 분을 잃은 슬픈 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친구들과의 연말모임이나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궁리하는 자신을 보며, 모든 것들이 이렇게 쉽게 잊혀지는가 싶어 허전한 마음입니다.

오늘 출근길에도 버스는 용산을 지납니다. 신용산역에 버스가 설 때마다 남일당 건물에 여전히 켜진 촛불과 고인들의 영정 사진과 그 앞에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조금 추워보이는 꽃들을 봅니다. 가서 절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300여일이 지나도록 늘 망설이기만 합니다. 올해 초, 역시 겨울에 당신에게 썼던 편지가 있습니다. 쓰기만 하고 당신에게 보내지 않았지요. 다시 꺼내 읽어보니 이 편지는 아직도 현재형이라 이제라도 당신에게 보냅니다.
당신의 따뜻한 겨울을 기원하며......

2009년 2월 21일에 쓴 편지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이 있네. 함께 명복을 빕시다.'
저녁 무렵 당신에게서 이 문자를 받았을 때, 제가 탄 버스는 마침 신용산역에 정차하여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차창을 바라보면 그 곳이 바로 용산참사의 현장입니다. 저는 애도의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회는 도처에 죽음이 만연한걸요…'

제가 출퇴근길에 매일 지나는 용산에는 허물어져가는 남일당 건물을 둘러싸고 여전히 길가를 차지하고 있는 여러대의 전경버스와 죽음에 항의하고 정권에 항의하는 현수막들이 가득합니다.
'살려고 올라갔다가 죽어서 내려왔다'
'살인정권의 핏빛 도심개발을 반대한다.'
'죽음으로서 도심 재개발을 막아내자'

제가 너무 민감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출근길에 보는 이 글귀들은 상쾌한 하루를 보내려고 하는 저의 마음 한구석을 지긋이 내리누릅니다. 용산 참사가 한달이 지났다는데 저는 버스로 지나다가 그곳에 내려서 국화 한송이 꽂아놓거나 하진 못했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거나 울적해지는 기분이 들고 맙니다. 아, 이 잿빛 도시… 무수한 포크레인의 파괴음…

당신께는 죄송합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큰 영적 어른이 돌아가셨다는데, 그 슬픔을 같이 나누고자 문자를 보냈을텐데, 저는 심드렁한 듯한 답만 했군요. 고백하자면 추기경님의 선종 이후, 쏟아져 나오는 신문기사와 방송을 통해서 정말 큰 영적 스승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하여, 그리고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낮은 걸음을 한 것을 세세히 모르고 있었어요.

오히려 과거 몇 년동안 정치권에 조금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아서 섭섭한 마음이 있었답니다. 몇 년 전부터 명동성당은 시위를 하다 쫓겨난 자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고 지난 여름 촛불수배자들도 조계사에서 머물러야 했잖아요. 그러나, 소위 추기경이 보수화가 됬느니 하는 논란도 있었다는 기사를 보며, 모든 계층의 모든 사람들을 아울러야 하는 그분의 깊은 뜻도 이해했습니다.

이제 저도 그분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분이 말하던 사랑과 화해를 그저 표피적으로 '입술로만'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심지어 용산참사의 근원적 책임이라 할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6명의 죽음에 대해 애도는 커녕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병원에 누웠던 사람까지 잡아들이면서, 추기경님이 가시는 길에 그분이 하시던 말씀을 흉내내어 '사랑합시다'라고 했다더군요. 약자들을 몰아세우고 돈없는 것들은 인간도 아닌 사회로 만들면서 '부자되세요'를 외치면서 돈만이 절대선인 양, 돈이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를 만들면서, 그 입술로 사랑과 화해를 말한단 말입니까.

사랑이 뭐란 말입니까. 대기업 광고에 나오는 '사랑해요'도 아니고, 114 전화를 걸면 응대하면서 안내원이 말하는 '사랑합니다 고객님'도 아닐 터이고, 달콤한 초콜릿에 그려진 무수한 하트 모양도 아닐 터인데, 누구나 사랑을 외치고 팔아먹으면서 도대체 이 말이 뭔지 생각이나 할까요.

사랑은 연민입니다. 측은지심입니다. 마음아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 안아주고 싶은 마음, 돌봐주고 싶은 마음, 나누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 흘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추기경님은 그런 연민, 그런 사랑을 가지고 낮은 곳의 사람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기에 사랑합니다. 죽어있는 것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광고들은 '냉장고도 사랑하고 핸드폰도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지요. 살아있기에 삶이 유한하기에, 잠시 다녀가는 '소풍'같은 인생이기에 더욱 우리가 만나는 인연들이 소중합니다. 그러니 부디, 안타까운 죽음들에 대해서도 애도하고 사랑의 대척점에 있는 파괴와 죽음과 싸워야 하는 것이지요. 죽음에 귀천이 따로 있나요. 모든 목숨은 소중하고 애틋합니다.

추기경님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추운 날씨에 몇시간씩 줄을 서서 조문을 다녀온 사람들이나, 집에서 TV를 보면서 장례미사를 본 사람들이나, 혹은 바쁜 일상에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던 사람들도 모두 추기경님의 선종을 계기로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몸도 쉬면서 우리가 돌봐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군요.

추기경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돌아가신 가난해서 쓸쓸했던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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