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한 제국주의

타블로의 형 데이브의 무한도전 비난을 읽고

검토 완료

김태현(angello)등록 2009.11.23 12:12
타블로의 형인 데이브가 무한도전 뉴욕편을 강하게 비난하는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단다. 

어떤 부분으로는 확실히 맞는 말이다. 
아무 준비 없이 (특히 영어!) 무작정 미국의 심장인 뉴욕으로 날아가, 한국 음식을 소개한답시고 한국의 일류 개그맨들이 뉴요커들에게 개망신을 당하는 장면이 데이브에게는 (아마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거의 동일한 개무시를 30년 가까이 참고 살아와야 했을 데이브 자신에 대한 공감적 연민에서라도) 너무나 낯뜨거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의 글에서 특히 흥미로워 하는 부분은, 두 주체 사이의 정치적 위상이 전제되는 대목이다. 데이브는 오히려 너무 명확하게 자신의 한국인에 대한 포괄적인 생각을 드러내어 버렸다. 미국 명문대 출신인 그가 실토한 이 관점은 2PM의 재범의 어리광 혹은 치기 어린 생각보다도 훨씬 복잡하기에 더 진솔하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나 개인적으로, 이런 연구대상은 연구자에게는 너무 쉬운 상대이며,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그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가르쳐 준 대목에 집중해보자.

"문제 유출시켜 달달 외운 토플/gre 가까스로 점수 받아 유학은 가서, 한 국애들끼리만 어울리며 매일 32가 가라오케/클럽이나 얼쩡대고, 선배들 페이퍼나 베껴냈다가 교수한테 걸려서 창피당하고, 영어라곤 쥐뿔 그 흔한 프렌즈 대사 한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안 그래도 뉴요커들이 아시아인들, 그리고 그중 특히 한국 사람들 개 무시하는데, mac가 아주 대박으로 한건 올려주시는군.


아예 영어에 관심도 없고 영어를 개똥취급하면 말 도안해. 영어에 쏟아 붓는 교육비 세계1위에, 우리가 후진국 취급하는 필리핀에 영어배우러간다고 가족과 생이별까지 하는 한국 국민들에게 최고로 인정받는 mc들이 뉴욕에 우리나라음식을 홍보한다고 가서 한다는 짓이 저거였어?

저 쓰레기를 기획한 mbc 놈들이나, 저 쪽팔린 추태를 통해 마치 우리의 "자랑스러운 개그"를 뉴욕에, 아니 온 세계에 알려 무슨 국위선양이라도 한듯 떠들어대는 기생충 같은 기자들이나. 어차피 저런 저질개그에 깔깔대는 국민들과 합작으로 만들어낸 기막힌 에피소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굴욕스런 국민들이었나.

친일파사전이니 뭐니, 금방이라도 일본 쳐들어갈듯이 떠들어대더니만. 일본 애들이 만든 저따위 쓰레기나 베껴내고 있는 주제에.
음식 집어치우고 그 mc들 시켜서 떠듬떠듬 영어로 뉴요커들한테 독도가 우리 땅이라 는걸 알리는걸 그따위로 만들어보지 그랬니."

      

이 시선이 전제한 세계 이해를 크게 세 부류의 집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세계 최고의 경제/문화 중심지 뉴욕에 사는 백인 미국인
2) 영어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며 미국 문화와 습관을 익히고 있는 교포 혹은 토종 한국인.
3) 영어를 거의 못하고, 미국적 문화와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토종 한국인.

중심지와 주변부가 명확하게 갈리는 이 세 집단 사이의 관계는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모두 위계성을 띠고 있다. 1)이 가장 선호되는 그룹임인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사는 수 많은 사람들이 저 1)과 최대한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도 1)이 가지는 정치 문화적 권력을 향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2)에 속한 사람이든, 3)에 속한 사람이든 그들은 거의 절대로 1)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인종 차별이 없고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다고 해도 백인 미국인 사회가 아시안들은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시선과 일치한다. 그래서 1)에 가까워지려는 욕구가 강한 2)와 3) 그룹의 사람일수록 자신이 아시안이라는 사실을 희석하고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대신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로서의 "인간 보편"이라는 이념을 채택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3) 그룹보다 1)그룹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을 지닌 2) 그룹 사람들이다. 2) 그룹 사람들은 1) 그룹에 가까워질 수 있는 한 가지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2) 그룹이 이미 1) 그룹의 매력적인 속성을 경험하거나 일부 공유함으로써,  3) 그룹의 저열성을 강화하여 자신들이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아시안으로서의 속성을 약화시키고, 3) 그룹을 2) 그룹과 본질적으로 다른 그룹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데이브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설프게 1)그룹으로 진입하려는 3)그룹은 "이렇게 굴욕스러운 국민"이다.

데이브가 지적하는 "굴욕스런" 3) 그룹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문제 유출시켜 달달 외운 토플/gre 가까스로 점수 받아 유학은 가서"

(2) "한국애들끼리만 어울리며 매일 32가 가라오케/클럽이나 얼쩡대고"

(3) "선배들 페이퍼나 베껴냈다가 교수한테 걸려서 창피당하고"

(4) "영어라곤 쥐뿔 그 흔한 프렌즈 대사 한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안 그래도 뉴요커들이 아시아인들, 그리고 그중 특히 한국 사람들 개 무시"당하며

(5) "영어에 쏟아 붓는 교육비 세계1위에, 우리가 후진국 취급하는 필리핀에 영어배우러간다고 가족과 생이별까지 하는"

(6) "저 쓰레기를 기획한 mbc 놈들이나, 저 쪽팔린 추태를 통해 마치 우리의 "자랑스러운 개그"를 뉴욕에, 아니 온 세계에 알려 무슨 국위선양이라도 한듯 떠들어대는 기생충 같은 기자들이나. 어차피 저런 저질개그에 깔깔대는 국민들과 합작으로 만들어낸 기막힌 에피소드"

(7) "친일파사전이니 뭐니, 금방이라도 일본 쳐들어갈듯이 떠들어대더니만. 일본 애들이 만든 저따위 쓰레기나 베껴내고 있는 주제" 


이 저열한 이미지 속에서 2) 그룹은 자신들을 3) 그룹으로부터 분리하여 2) 그룹의 존재적 위상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를 통해서 "지주"인 1) 그룹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 세계의 질서 속에서, 2) 그룹 사람들은 "마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하고, "소작인"으로서의 3) 그룹을 유형/무형의 수단을 통해 지배하고 착취함으로써 존재 기반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2) 그룹을 대표하는 데이브의 시선에 포착된 3) 그룹의 이미지는 영어라는 하나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는 2) 그룹이 3)그룹에 대해 가지는 관점과 사유에 대한 대표성을 지닌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한국의 광적인 영어 열풍 (심지어 자신의 그 열풍의 직접적인 수혜자임에도)은 물론, "친일파," "독도"와 관련된 3) 그룹인들의 정신적 자존심의 문제까지 정확히 조준한다. 이것은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2) 그룹이 1) 그룹과 자신이 갖는 친화성을 강조하고, 3) 그룹의 저열성을 본질화(essentialize)하는 대목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데이브로 표상되는 2) 그룹은 영어를 통해 구획된 1) 그룹의 세계 질서에서 중간자로서 3) 그룹 위에 위치하고자 시도한다. 


얼마 전 2PM의 박재범이 수년 전 자기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 비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실상 한국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질타가 언론과 인터넷 여론의 집단적 광기에 기초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면으로 그것은 확실히 그런 건강하지 못한 여론 형성의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지금은 재범군에 대한 동정 여론으로 인해 그 발언이 결코 개인 차원의 "실수"가 아닌, 명백히 "정치/문화"적인 발언이었다는 측면에는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소위 진보라고 스스로 표방하는 언론들이 쏟아내고 있는 재범에 대한 동정여론(교포의 정체성에 대한 아량을 주문한다던가, 인터넷 여론의 광기를 염려한다던가 등)이 더욱 한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재범이 한국 생활을 겪으면서 한국에 대해 생각이 어느 정도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자신의 2)그룹으로서의 정치/경제/문화적 지위를 포기하고 3)그룹으로 퇴진할 용기를 내었다거나, 아니면 궁극적으로 1), 2), 3)을 나누는 잘못된 기준과 편견에 맞서 싸울 정도로의 성숙함을 가지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만약 정말로 한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면 그것은 2)그룹의 일원으로서 3) 그룹에 대한 이해의 "아량"이 다소 넓어졌다는 의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기에 학문적으론, 어떤 차원에서도 재범의 발언이나 이번 데이브의 발언이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실수"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명백히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부당하고 억압적인 정치 문화적 현상을 자각하고 수정하려는 계기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반드시 우리 사회에 하나의 구분 계층이 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4) 그룹의 존재이다. 그들은 한국보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저열하다고 3) 그룹 사람들이 믿고 있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 집단이다. 

3) 그룹 집단이 존재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4) 그룹을 지배하는 메카니즘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1) 그룹이 2)그룹에 대해서, 또 2) 그룹이 3) 그룹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고 자신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 그룹이 아닌 이상, 이 불공정한 세계 질서 속에서 2), 3), 4) 그룹은 모두가 피해자이다. 물론 2) 그룹이 이 셋 중에서는 가장 수혜자이며, 4) 그룹이 가장 피해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부당한 게임의 룰 속에서 모두 열등감과 굴욕감을 강요당하는 집단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데이브의 글을 읽으며 든 마지막 생각은 "그가 참 불쌍하다"라는 것이다. 나는 그 글 속에서 자신은 죽어도 저 저열한 그룹과 같지 않다고 발버둥치는 한 인간을 보았다. 그러나 그 글의 상당 부분은 자신이 이 1) 그룹이 만들어 놓은 게임에서 30년 넘게 당해 온 부당한 피해를 3) 그룹에 동일하게 투사하고 있을 뿐이다. 즉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평생 "한국어"를 모국어로 안고 사는 이 원죄를 짊어진 우리 모두가 이 질서 속의 억울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아침 내가 데이브의 글을 읽으며 느낀 생각이다. 
2009.11.23 12:06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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