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벌어진 어느 여중생의 죽음

청소년의 자살, 이런 사건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묻히는 상황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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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영(hjy7565)등록 2009.11.30 11:16

여중생이 투신자살한 아파트 아파트 12층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 ⓒ 황주영


지난 11월 6일 저녁 8시~8시30분 사이 경기도 화성시 능동(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중3 여학생이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것도 내가 사는 1층 복도 바로 앞 화단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여학생이 발견된 건 떨어지고 나서 30~40분 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경찰이 이 사실을 신고 받고 우리집 초인종을 누른 것이 9시15분경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무언가 "꽝"하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분명 8시~8시30분 사이 무언가 "꽝"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부부싸움 등으로 문을 세차게 닫아서 난 소리라 생각하고 지나쳐버렸다. 또한 날씨가 쌀쌀하여 모든 문을 닫아놓은 상태였고, 저녁식사 후라 설거지를 하는 등 여느 때와 같이 어수선한 저녁시간이었다. 그런데 9시 저녁뉴스를 보던 중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뜻밖에도 경찰이었다. 순간 "정말 부부싸움을 했나보다, 그것도 심하게 해서 누군가 신고했나보다"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경찰 또한 "무슨 소리 못 들었느냐, 심하게 싸우거나 하는 소리 못 들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싸우거나 하는 소리는 못 들었고, 30분~1시간 전 쯤 무언가 "꽝"하면서 세차게 문 닫히는 소리 같은 걸 들었다고 했다. 경찰에게 왜 그러시냐고 묻자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경찰은 갔고, 그래서 부부싸움이라고 확신했다.

아파트 12층에서 12살 여자아이가 떨어졌다??
그런데 얼마 후 밖에서 무언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나가보았고, 허겁지겁 들어오더니 놀랍고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사람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이인 것 같다는 것이다. 순간 정말 소름이 끼쳤다.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나가보니 경찰과 과학수사대에서 무언가 조사하는 중이었고, 주민 3~4명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떨어져 (벌써)죽은듯한 아이는 흰 천에 덮여 있는 상태였다. 지켜보고 있던 다른 주민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12살 여자아인데 12층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에 더욱 경악했다. 12살이면 초등학생 아닌가?

죽은 아이 엄마의 통곡소리
밤 10시가 넘어서야 아이의 엄마가 찾아와 아이인 걸 확인하고는 통곡하기 시작했다. 덮힌 천을 걷어 아이를 안기도 하고, 싸늘해진 팔을 만져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다른 곳에서 온 걸 보니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아니란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면서, "네가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는 줄 몰랐다"면서, 미안해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또 "엄마한텐 오래 살라고 하더니 네가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너 없이 엄마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면서, 원망하는 마음도 드러냈다. 또 "우리 애 '왕따'시킨 나쁜 것들"이라면서, "왜 우리 애를 '왕따'시켜서 죽이냐"면서, 분노하는 마음도 드러냈다.

투신자살한 여중생이 남기고 간 흔적 여중생의 시신이 누워있었던 자리다 ⓒ 황주영


청소년의 자살, 이런 사건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묻히는 상황이 두렵다
끔찍하다. 왕따나 따돌림, 자살 등이 뉴스에서나 나오는 일이 아니었다. 죽은 아이의 엄마는 계속 통곡하고, 뒤늦게 죽은 아이와 관계가 있어 보이는 남자 한 분이 더 오셨다. 경찰이 어떤 관계냐고 묻자 아이가 조카라고 한다. 그리고 끝내 아이의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1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몇몇의 주민들은 모두 들어갔고, 나또한 한기가 느껴져 잠깐 집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자 경찰과 과학수사대에서는 죽은 아이의 엄마에게 재촉하기 시작했다. 실신상태가 될 지경인 아이의 엄마에게 사람들도 있고, (죽은)아이한테도 안 좋으니 빨리 병원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왠지 너무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지켜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아파트라는 괴물만이 어두운 그림자로 더욱 짓누르는 듯 이상한 기분이었다.

적어도 죽은 아이의 엄마가 '아주 조금이라도'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면 안 되는 것일까? 또 아이가 이 아파트에서 떨어지려고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처음 경찰이 우리 집에 방문했을 때 '왜' 이 사건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것도 바로 집 앞에서 벌어진 일을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골치 아파지는 일로 확산될까 우려해서였을까? 어쨌든 죽은 아이는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그리고 남은 건 아이가 떨어졌을 때 생겼던 혈흔을 지운 흔적 뿐 이었다.

그땐 이미 자정이 되가는 시각이라 어둠과 침묵만이 드리워진 상태.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상황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떠벌리지 않으면 아무 일 없었던 듯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아파트에선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가깝게 모여살고 있지만, 오히려 더욱더 두껍고 높은 벽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런 삭막한 일상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여지없이 그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상황이 더욱 두렵다.

제보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리고 보도되다
삭막한 현실에 마주하기 두려워 제보하기로 마음먹었다. MBC를 비롯하여 모두 세 곳에 제보를 하였고,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준 MBC의 한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MBC기자가 사건의 현장에 도착한 것이 사건발생 다음날인 11월 7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보도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어제 오후 9시 쯤 경기도 화성시 능동의 한 아파트 12층에서 중학생 14살 고 모양이 떨어져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인근주민은 "뭔가 쿵하는 소리가 들려서.. 몰랐는데 나와 보니 사람이 누워 있었다." 경찰은 아파트 입구와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폐쇄회로 화면을 통해, 고 양이 사고 당시 차림으로 혼자 12층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확인했으며, 이를 토대로 고 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고 양이 자살할 만한 동기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양효걸 기자)』 기사내용을 보니 12살 초등학생은 아니었다. 14살 중학생(고 양)이란다. 만 나이를 따지는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널뛰기 하는 순간이다. 중학교 1학년이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후속보도(연합뉴스)에서『경찰 조사결과 이 학생은 사고 전날인 5일 집에서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어머니에게 발견돼 꾸지람을 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전날인 11월 5일에도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청소년자살의 특징, 그리고 대책 없는 현실
첫째, 분명한 동기가 있다고 한다. 즉, 오래전부터 자살준비를 해 오면서 직접적인 동기가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 충동성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성인의 경우는 우울상태가 자살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인데 반해, 청소년의 경우는 충동성이 매우 큰 결정인자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 피암시성이 강하여 '동반자살'이나 '모방자살'이 흔히 일어난다. 같은 처지에 있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동반자살이 흔히 일어나며, 특히 청소년들 특유의 현상은 '모방자살'이다. 즉, 청소년의 경우 자살역시 친구와 TV, 인터넷 등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는 것이다. 넷째, 치사도가 높은 자살수단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등 청소년 자신도 죽을 의도가 심각하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방법이 치명적이어서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27일에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여중생 두 명이 함께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두 여학생은 다른 학생들로부터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해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요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자살원인을 보면 앞에서 제시한 특징에 일리가 있다. 청소년들이 '왜' 자살이라는 끔찍한 죽음을 선택하는지 어느 정도의 원인과 특징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책방안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삭막한 아파트 문화, 경쟁위주의 이기적인 교육방식, 입시위주로 종이 감옥 속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아이들, 학원과 과외 등에 의존하는 아이들... 이렇듯 너무도 피곤한 하루를 다람쥐 쳇바퀴 돌리 듯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탈출구가 없는 것이다. 어떠한 여유도, 넘치는 에너지를 건전하게 표출할 수 있는 대상과 공간도 없는 것이다.

같은 학교 후배들이 사건현장에 등장, 자살원인은 가정불화??
11월 7일 아침에 보도된 뉴스내용 외, 지금까지 추가된 내용은 없었다. 그리곤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심때쯤 여학생 몇 명이서 사건현장에 찾아왔다. 여중생들이었으며, 자살한 고 양의 후배들이라고 하였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중2이며, 자살한 고 양은 중3이라고 한다. 또 한 번 나이가 널뛰기 하는 순간이다. 후배들을 통해서 확실해진 건 투신자살한 여학생은 중3이며, 인근 중학교 학생이며, 인근 다른 아파트에 사는 학생이며, 학교가 발칵 뒤집혔으며, 단짝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따'라든가 그런 학교문제는 없었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가정불화'였던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반문한다. 그런데 사건현장이 왜 이렇게 조용하냐면서, 너무 조용하니깐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리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심상치 않다. "죽을 용기로 더 열심히 살지 왜 그랬을까?", "근데 이 아파트에 남자친구 사는 거 아냐?" 그렇다.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중3'이라고 최종적으로 밝혀진 '고 양'은 그 전날에도 자살을 시도 했었으며, 단짝친구도 있었으며, 또한 남자친구도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투신자살을 위해 복도식 아파트를 선택 했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선택했던 거라면 분명히 가정불화 이외의 요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가정 내의 문제보다 더 큰 요인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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