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서 더 아름다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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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주(ojj2)등록 2009.12.08 12:17

며칠 전,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카메라를 비교하던 중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소니 카메라 광고는 캐논으로 찍는다?'(4월 11일자 경향신문)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소니의 '렌즈 교환식 디지털 카메라 알파350과 알파700'광고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가 소니 카메라가 아니라 캐논 카메라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시원하게 웃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사건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사실을 밝혀낸 것은 바로 네티즌들이다. 네티즌들이 사진 파일 안에 숨겨져 있는 속성 정보인 '메타데이터'를 읽어내 소니 광고 사진의 촬영 정보를 밝혀낸 것이다. 네티즌들이 밝혀낸 메타데이터에 따르면 광고 사진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는 소니 카메라사의 카메라가 아니라 캐논 카메라사의 '캐논 EOS 1Ds Mark II'이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소니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들은 억울한 생각이 든다며 소니 카메라사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소니 카메라사는 '소니에는 아직 광고 사진을 찍을만한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캐논 카메라를 이용해서 광고 사진을 촬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어느 네티즌의 클릭 한번으로 치부를 드러낸 소니 카메라사는 마치 천만 네티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발가벗겨진 것은 소니 카메라사 뿐만이 아니다. 소니 카메라 광고 사진 사건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앞에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까지 발가벗겨지고 있다. 우리 둘만 간직하고 싶은 남자친구와의 첫 키스는 현관 앞에 달린 CCTV에 기록되고, 아무도 모르게 나 홀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여행은 핸드폰 위치추적으로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도 비밀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주디는 익명의 한 아저씨의 후원으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 아저씨의 도움이 고마운 주디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사랑스러운 편지를 꾸준히 보낸다. 독자들은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주디와 함께 키다리 아저씨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기술이 발달하여 주디를 후원해준 아저씨가 누구인지 계좌추적을 하여 알 수 있다면, <키다리 아저씨>는 더 이상 소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는 솔직할수록 좋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감추어서 더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익명'이기에 아름다운 익명의 기부, 계좌 이체되는 월급 대신 누런 월급봉투에서 살짝 비상금을 빼는 아빠. 사소하지만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우리들만의 비밀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소한 비밀을 기술에게 폭로당하지 않기 위해, 발전하는 기술을 또 다른 기술로 덮어버리려고 한다면 이를 뛰어넘는 또 다른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로부터 우리들의 사소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들만의 비밀이 사라지는 요즘, 인간의 따뜻한 감성으로 차디찬 기술에게 접근 한다면 아름다운 우리들만의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2009.12.08 12:16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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