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물 가지고 수사를 의뢰해?

[주장]지드레곤 외설 논란, 이젠 좀 너그러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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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kth1228)등록 2009.12.11 15:00

요즘 인터넷에 빅뱅의 지드레곤 콘서트 이야기가 많이들 올라오네요. 지드레곤이 콘서트에서 좀(혹은 상당히)자극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나 봅니다.

 

주로 언급되는 부분은 <브리드>라는 곡을 연주할 때 침대소품이 등장했고, 쇠사슬에 묶여 있는(정확하게는 잡고 있는) 댄서와 성행위를 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장면에서는 도망치는 여성을 칼로 살해하는 듯한 퍼포먼스도 있었다네요. 저도 문제의 그 동영상을 보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제 딸이 지드레곤 콘서트에 쫓아가서 저런 퍼포먼스를 본다고 생각하면, 웬만하면 설득해서 가지 못하게 하고 싶은 맘도 솔직히 듭니다.

 

근데 말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드레곤과 소속사를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수사를 의뢰한 것은 정말 '오바'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콘서트란 건 방송과 달라서 자기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안 볼 수 있고, 못 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영 내용적으로 아니었다면, 지금의 분위기처럼 '아니다'란 여론과 '괜찮다'란 여론이 맞부딪혀 겨뤄볼 수도 있는 겁니다.

 

근데 그걸 굳이 공공의 광장으로 끄집어내 심판에 회부해야 하는 걸까요? 그것도 청소년보호법이란 걸 내세워 위법성을 따져야 할까요?

 

지난 30~40년 동안 우리 문화는 '검열'이란 걸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장면은 청소년에게 유해하고, 저 장면은 어린이에게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이슈가 됐을 때도 대단했죠. 그땐 청소년보호법이 없을 때라서 형법으로 문제를 삼았더랬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나요? 최종심에선 무죄 판결이 났고, 작품은 걸레조각이 됐습니다. 그 지루한 논쟁 덕분에 우리 청소년들이 좀 건전해졌을까요?

 

저는 지드레곤의 공연을 본 적이 없기에, 그게 작품성이 있는지, 완성도가 높은지, 진짜 문제가 많은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게 또 크게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다만 청소년과 어린이들에 대해서 '성(SEX)'의 시옷자만 나와도 온갖 호들갑을 떨며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분들의 정신 건강 상태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거짓말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해로운지는 생각해보셨는지?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부 과다한 퍼포먼스가 그렇게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한다면, 공개된 공간에서, 그것도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버젓이 거짓말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분노들을 하시는지...

 

"선거에서 표 좀 얻으려고 거짓말 좀 했습니다"며 안면 색 하나 안바꾸고 연설하는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인지하고, 또 분노해 봤는지... 그런 거에는 전혀 무감각하다가, 조금만 성적인 표현만 나오면 마치 마녀사냥하듯이 하이에나들처럼 동원들이 되시는지... 정말 보기에도 딱할 지경입니다.

 

성이 그렇게 해로운 거면 어른들은 왜 성생활 하나?

제가 대학 다닐 때 읽은 도서 중에 네덜란드 문화철학자인 반퍼슨이란 분의 <급변하는 흐름 속의 문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분의 글 중에 정말 충격적인 표현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사람들은 먹고, 자고, 어쩌고, 저쩌고, '섹스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성이라면 수도승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정말 쇼킹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섹스라는 표현을 안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내용인데 왜 굳이 섹스를 집어넣었을까? 그 철학자의 제자분들이 국내에서도 청렴, 윤리, 이런 걸로 상징적인 분들인 걸 감안하면, 매우 점잖으신 분일 텐데, 왜 굳이 저런 노골적인 표현을 썼을까?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게 매우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일부 수도승가 성직자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섹스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섹스는 일탈이 아니라 일상입니다. 다만 본능적인 욕심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과다해질 위험이 있고, 그것 때문에 사람사이 관계도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건전한 성생활이라는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이지, 그것 자체가 마치 해로운 것인양 몰아붙인다면, 그건 정말 자기 기만 아닌가요? 그렇게 해로운 거면, 어른들도 성생활을 하지 말아야지요.

 

청소년들을 성표현에서 격리시킬 수 있나?

이처럼 성이 일상인 이상 문화적, 예술적 표현에 성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카라의 엉덩이춤, 브아걸의 시건방춤, 박진영의 웃통 벗어던진 CF, 딥키스를 떠오르게 하는 커피 CF, 이 모든 게 성적인 표현 아닌가요? 어떤 분은 그런 게 좋다고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애들 보기 창피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고, 또 일정한 수준의 규범을 만들어가는 데 대해서는 저도 백번 동의합니다.

 

그러나 마치 청소년과 어린이들한테 성적인 표현이 '마마와 호환' 만큼이나 해롭고, 그래서 무조건 차단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에는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가린다고 가려질 것도 아니고, 만에 하나 기성세대 뜻대로 나이 스물 되도록까지 성과 관련된 문화가 뭔지도 모른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청소년과 아이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도 좀 그만뒀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장면 하나 보면 아이들 정신이 헷가닥 돌아버릴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들도 맥락을 파악할 줄 알고, 뭐가 과하고, 뭐가 부족한지를 판단할 줄 아는 인격체로 제발 좀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만에 하나 공연장을 찾은 청소년들 대부분이 '그 정도 표현은 공연 컨셉상 충분히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소위 어른이란 사람들이 몇 가지 표현을 문제 삼아서 수사를 의뢰하고, 제제조치를 가한다면, 이 얼마나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고, 또 어른 전체에 대해 불신을 부르는 졸렬한 처사입니까.

 

제발 좀 호들갑 좀 떨지 말고, 공연은 공연으로 봐주고, 그 맥락에서 문제될 게 없는지를 토론하는 분위기부터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제발 사진 몇 커트, 동영상 몇초만 가지고 와서 "이것 봐라~"는 식의 선동질은 어른들부터 좀 관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timshel.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2.11 14:4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timshel.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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